[연재] 임동윤 선생의 ‘부평의 지명 이해’<9> - 청천동


「신증동국여지승람」부평도호부 방면에 “마장(馬場)은 남쪽으로 처음이 5리, 끝이 10리이다”라고 기록돼있다. 이 기록과 1918년 지형도상으로 짐작할 때 마장으로 이용됐던 곳은 청천동을 중심으로 효성동에서 산곡동으로 이어지는 넓은 지역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인천지명고>에는 고려시대 이후 말을 사육한 국영목장이 있었다고 하고, <한국지명총람18>에는 “조선시대 말을 키우던 곳이라 마장, 백마장이다”라고 했다. 백마정(白馬町)은 1940년 제2차 부역확장으로 인천부에 편입되면서 붙여진 지명이고, 1946년 우리 동명으로 바뀌면서 ‘白馬町’이 ‘白馬場(백마장)’으로 돼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인천지명고>에서는 “일제 때 일본군이 이곳에서 백마(白馬)를 타고 군사훈련을 했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다”라고 했으나, 여러 문헌상의 기록으로 보아 ‘白馬場’은 ‘馬場’이 잘못 표기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백마장’은 부평에서 가장 잘못 알려진 지명이다.

산곡동 토박이인 조원휘(78)옹은 “1960년대에 서울에서 부평까지 연결되는 유일한 버스가 백마장까지 직행버스였기 때문에 타지 사람들이 ‘부평’하면 ‘백마장’으로 기억하고 있다”라고 회고하고 있다.

청천동은 마제이[마장뜰, 청천리(淸川里)]라고 했다. <한국지명총람18>에는 “맑은 시내가 있어서 말을 먹였으므로 맑은내 또는 청천이라고 하였다. 또한 ‘마제이’는 마장면 사무소가 있었던 곳이어서 불러왔다”라고 돼있다. 마제이와 청천리는 같은 마을인 현재의 청천동에 해당된다.

천마산은 서구 가정동과 계양구 효성동 사이에 있는 해발고도 226m의 산으로 철마산으로 불리는 세 곳 중 가장 높은 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부평부읍지」등에는 천마산은 기록돼있지 않고, <지명유래지-부평의 땅이름>에는 “1916년 조선총독부의 세부측량 때 철마산(鐵馬山)으로 도면에 표기됨으로써 ‘천마산’이 ‘철마산’으로 둔갑된 것이다”로 기록돼있다. 현재는 天馬山[천마산]으로 많이 알고 있으나 주민들은 아직 鐵馬山[철마산]으로 부르고 있다.

맑은내(淸川[청천])는 천마산(天馬山) 골짜기인 도둑골에서 발원한 하천이다. 골짜기에서 발원한 물이 맑은 물이므로 붙여진 지명이다. 1960년대 지형도에서는 서부간선수로로 합류되는 것을 알 수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복개돼 하천의 흔적을 알 수가 없다.
「부평부읍지」지도에 보면 ‘청천’이 마장뜰로 흐르고 있고, 대교(大橋)와 황교(黃橋) 두 개의 다리가 표시돼있다. 그 중 大橋가 있는 다리가 대교천이고, 黃橋(누런 다리)가 있는 하천이 ‘누런다리 개’이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눈다리개와 눈다리개쳔으로 돼있다. 1960년대 지형도에서 황어천(黃魚川)은 현 GM대우 부평공장을 지나 사근다리 부근에서 원통천과 합류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하천은 黃魚(잉어)가 많이 있는 하천이라는 뜻이다. 현재, ‘청천’은 청천동 주민은 대부분 알고 있는 지명이지만, ‘黃橋’, ‘黃魚川’은 전혀 알지 못하는 지명에 해당한다.

GM대우 부평공장 일대가 <조선지지자료>에 나오는 ‘신노개들’이다. 이곳은 비가 오지 않으면 토지이용을 할 수 없는 천수답이었고, 그 이유는 신이 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깎은산(까까산)은 청천초등학교 뒷산을 말한다. 일제강점기 때 헬기장을 만들기 위해 산을 깎았기 때문에 붙은 지명이다. 최근 주민들이 등산을 하면서 ‘장수산’으로 부르고 있으며, 환경부에서 발행한 식생도에도 ‘장수산’이라 표기돼있다.

청천시장 주변 집들을 검정사택이라고 한다. 일본인들의 사택이었는데 광복이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검은 기름종이를 벽지로 사용했고, 전국에서 부평으로 이주하면서 집이 없는 사람들이 거주했다고 한다.

또한 이곳 주변에 광복 후 시장이 형성됐는데, 주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물건들이 거래됐다고 한다. 또한 불법으로 흘러나온 물건들을 조사하러 오기 때문에 이곳을 도깨비시장이라 불렀다고 산곡동 토박이인 조원휘(78)옹은 기억하고 있다.

金山(금산, 김산)은 1918년에 발행된 지형도와 1960년대 지형도까지 표기돼있다. 이곳은 김해 김씨 종산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부평공단(1967)을 조성하면서 평탄화 작업이 됐고, 산의 형태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최근까지 진도모피공장이 있었으나, 현재는 아파트형 공장(남광센트렉스)이 건설돼있다. 그러나 이 산은 바로 앞의 갈산과 갈산 옆의 영(염)성산과 같이 부평의 토박이들이 거주했던 중요한 장소다.

천상교(川上橋)는 아나지고개를 지나는 청천에 놓인 다리이고, 청천동의 일본식 지명(1940)인 ‘川上町[천상정]’에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생각된다. 현재도 천상2교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잔재인 천상2교의 지명이 빨리 교체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임동윤·세일고등학교 지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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