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쉬움 없이 2018년이 지났고, 특별한 반가움 없이 2019년이 왔다.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도 시간이 가고, 왔다. 흔히 시간을 흐르는 물에 비유한다. 흐르는 물처럼 시간도 멈출 수 없고, 둘 다 한 번 지나가면 되돌아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물리학자들은 시간은 그렇게 물처럼 흐르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흘러가는 모든 것에는 방향이 있다. 물리학에선 시간의 방향을 나타내기 위해 ‘시간의 화살’이란 개념을 사용한다. 시간이 지났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는 건 뭔가 변했을 때다. 유리컵이 깨지고, 나뭇잎이 떨어지고, 피부에 주름이 생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거꾸로 일어나는 법은 없다. 깨진 컵을 원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면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혼나는 일이 훨씬 적었을 테지만 현실에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시간의 화살은 미래를 향해 있다. 역방향으로 향하는 건 비디오테이프를 거꾸로 돌려볼 때에나 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시간이 미래를 향해 움직인다는 뜻은 아니다. 애리조나대학의 폴 데이비스 교수는 “나침반 바늘이 북쪽을 향한다고 해서 나침반이 북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듯, 시간의 화살이란 말 역시 시간이 미래를 향해 움직인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과거와 미래는 공간의 위와 아래처럼 일시적 방향을 뜻하는 표식일 뿐, 과거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위와 아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가 없다면 시간이란 대체 뭘까. 많은 과학자들이 이를 밝히기 위해 애썼지만 아직은 그 누구도 시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시간을 측정할 뿐이다. 시간은 질량이나 부피, 힘, 속력, 자기장 등 많은 물리량 가운데 가장 정밀하게 측정되는 것 중 하나다. 현재 1초는 ‘세슘 133’ 원자에 특정 주파수의 전파를 비췄을 때 전파가 91억9263만1770회 진동하는 시간이다.

시간을 말할 때 빼놓아선 안 되는 이름이 있다. 아인슈타인이다. 그의 특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은 공간을 휘어지게 만들기 때문에 공간에 따라 1초가 다 같은 시간이 아니게 된다. 2014년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에는 중력에 의한 시간 지연 효과가 등장한다. 주인공들이 중력이 강한 지구 밖 행성에서 단 몇 시간을 보내는 사이 지구에선 수십 년이 지나버린다. 중력이 강할수록 시간은 느리게 흐르기 때문이다.

우주 공간으로 나갈 것도 없이 실제 우리 일상에서도 시간 지연 효과가 존재한다. 2010년 미국표준기술연구소에서 지표면에서 33센티미터 높은 곳에 있는 시계와 지표면의 시계를 서로 비교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 결과, 높이 있는 시계가 지표면의 시계보다 ‘10경분의 4’ 정도 빨랐다. 높은 곳에 살수록 시간이 빠르게 흘러 일찍 죽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래봐야 1초도 안 되는 시간이긴 하지만 말이다.

한 해가 지나고 새로운 1년이 주어졌다는 말도 물리학 입장에선 틀린 말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흐르는 것이 아니고, 동시에 존재하지만 우리 인간의 인지 체계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오직 현재 일어나는 상황뿐인데, 과거와 미래는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걸까.

며칠 전 꿈이 떠오른다. 3년 전 세상을 뜬 강아지가 꿈에 나왔다. 너무 생생해 정말 살아 돌아온 줄 알았다. 그러나 물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강아지는 과거의 시간 속 어딘가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다만 내가 볼 수 없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꿈으로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작은 소망으로 새해 첫 글을 마쳐도 될까. 시간이 무엇인지 모를지라도, 각자에게 다른 속도의 시간이 주어질지라도, 그 시간 속에서 모두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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