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기해년, 죽산 탄생 120년ㆍ서거 60년
올해 3.1운동 100주년…독립 훈장 추서 과제

죽산 조봉암 영정. 2018년 7월 59주기 추모제 때 그의 영정 앞에는 숱한 조화가 놓였다. 하지만 그의 독립운동 유공과 건국 기여에 대한 훈장 추서는 무산됐다.

‘우리가 독립을 할 때 돈이 준비가 되어서 한 것이 아니고 가능성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다.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하고서는 안 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지 아니한가.’

죽산 조봉암 선생이 생전에 남긴 말이다. 2019년 기해년은 3ㆍ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자, 죽산 선생이 태어난 지 120년, 서거한 지 60년 되는 해다. 죽산은 1899년 기해년에 태어나 환갑을 맞이한 1959년 기해년에 서거했다.

죽산은 1959년 7월 31일 오전 11시 서대문형무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죽산 조봉암 선생 기념사업회와 유족은 매해 이날 오전 11시에 서울 망우리 묘역에서 추모제를 지낸다.

죽산은 인천 강화도에서 태어났다. 1919년 3ㆍ1운동에 참여했고, 일제강점기에 조선공산당을 창당해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이 일로 1933년 중국 상하이에서 체포돼 신의주에서 7년을 복역했다.

해방 후 조선공산당을 탈당하고, 1948년 제헌의회 민의원선거 인천을구(현재 부평ㆍ계양ㆍ서구 일대)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냈고, 2대 민의원선거(1950년)에서도 당선돼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초대 농림부장관을 맡아 ‘유상몰수 유상분배’ 원칙의 토지개혁을 이끌었다. 지주에겐 현금 대신 정부 농지채권을 줬다. 당시 지주가 이 채권으로 농지를 매입하면 가격의 30%만 인정했고, 적산(일본 자산) 매입 시 100% 인정함으로써 지주가 산업자본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죽산은 또, 정부가 양곡을 매입하고 배급하는 방안을 마련했고, 농촌개혁을 이끌 농민조직 결성을 주도했다. 그 뒤 이승만 독재정권에 맞서 대중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며 1952년 2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1954년 3대 민의원선거 때는 이승만 정권의 방해공작으로 후보 등록조차 못했다.

죽산은 1956년 진보정당을 창당했다. ‘평화통일과 사회민주주의’를 주요 노선으로 내걸고 1956년 3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30% 넘는 지지율(=216만표)을 기록했다. 그가 주창한 노선은 오늘날 한반도 평화와 통일,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와 다름없다.

죽산은 독재자 이승만의 최대 정치적 라이벌로 등장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게 1959년 사법살인의 발단이 되고 말았다.

이승만 정권은 죽산에게 ‘북한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이른바 진보당 사건을 조작해 1959년 사형을 집행했다. 2011년 대법원이 재심을 수용해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누명을 벗었다.

대법원은 죽산을 ‘일제강점기에서 독립운동가로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고, 광복 이후 조선공산당을 탈당하고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한 인물로 평가했다. 죽산의 공산당 활동과 관련, 국가기록원은 일제강점기 공산주의운동의 성격을 ‘독립운동 일환으로 전개된 공산주의운동’이라고 평가했다.

대법원의 무죄를 판결로 누명을 벗었지만 온전한 명예회복은 아직 과제로 남아있다. 죽산기념사업회와 유족이 바라는 명예회복의 완결은 독립운동과 건국 훈장 추서다.

2007년 대통령 직속 진실화해위원회는 “조봉암이 일제에 항거하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복역한 사실이 있으므로 독립유공자로 인정하는 것이 상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국가보훈처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의 단신 기사를 문제 삼아 훈장 추서를 머뭇거리고 있다. 1941년 12월 23일자에 ‘인천 서경정(현 중구 내동)에 사는 조봉암씨가 국방헌금 150원을 냈다'는 기사다. 당시 죽산의 주소는 부평이었고, 성금을 낼만한 형편이 아니었다는 증언에도, 국가보훈처는 2017년 유족에게 서훈에 필요한 보완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죽산기념사업회는 “당시 죽산의 사회적 위상을 고려했을 때 죽산이 그만한 돈을 냈으면 아마도 일제가 이를 이용하기 위해 대서특필해야 했다. 그런데 보이지도 않는 단신 기사로 처리했다. 기사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라고 반박했다.

2019년 기해년은 죽산이 태어난 지 120년, 서거한 지 60년 되는 해다. 죽산의 명예회복에 앞장선 기념사업회와 유족, 새얼문화재단은 올해가 독립유공 훈장 추서의 적기라고 했다.

이들은 죽산의 온전한 명예회복과 더불어 죽산의 뜻을 기리기 위해 인천에 죽산 선생 석상을 건립할 계획이다. 석상 건립 모금 운동에는 인천시민들이 대거 참여했다. 12월 현재 5294명이 7억 3861만 원을 모금했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과 죽산, 죽산의 명예회복은 독립운동 정신 계승과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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