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 철학자 등 시대의 멘토라는 이들은 한결같이 ‘지금, 여기’를 살라고 말한다. 나는 내 친구만큼 이 주문을 열심히 실천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직장 동기로 만난 친구는 유행을 따르는 데 대단한 열정을 지녔다. 그는 그 즈음 인기를 달리는 드라마의 주인공과 똑같은 머리 모양을 했고, 인기가요 1위를 차지한 곡을 노래방에서 불렀다. 지하철에선 베스트셀러 책도 읽었다.

이 친구의 진가는 하루하루를 기념일처럼 보낸다는 데 있다. 비가 오는 날엔 칼국수나 부대찌개를 먹었고, 춥고 바람이 부는 날엔 웨스턴 부츠를 신었다. 가을 하늘이 높던 날, ‘이런 날엔 편지를 쓰고 싶다’며 엽서와 편지지를 고르던 친구 모습이 아직도 또렷하다.

산만한 듯하면서도 뭔가 강직한 성품을 지닌 친구에게 이끌린 난 친구와 자주 어울렸다. 그러나 가까이 지내면서 맘에 안 드는 부분도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친구는 마음먹은 것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비 오는 날, 자주 가던 칼국수집이 문을 닫으면 신발과 가방이 다 젖도록 다른 칼국수 집을 찾아다녔다. 끝내 먹지 못하면 실패를 두고두고 되새겼다. 포기가 빠른 나와는 아무래도 성격이 잘 맞지 않았다.

어느 해 2월, 지방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이던 남동생이 시험을 보기 위해 인천에 올라왔다. 시험 전날, 나는 그 친구와 약속이 있었다. 무심결에 동생이 내일 시험을 본다는 말을 친구에게 했다. 순간 그 친구의 눈빛이 반짝였다. “시험 볼 땐 엿을 먹어야지! 엿 사러 가자.” 동생까지 챙기려는 마음이 일단은 고마웠다.

ⓒ심혜진.

복잡한 번화가에서 엿을 팔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은 빵집이었다. 빵집 문을 닫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바야흐로 밸런타인데이 시즌을 맞아 빵집엔 초콜릿들만 무덤처럼 쌓여있었다. 엿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친구가 빵집 문을 열며 “엿 같은 거 없어요? 엿 같은 거 안 팔아요?” 하고 큰 소리로 물을 때마다 나는 친구가 상스런 욕이라도 내뱉은 듯,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

네 번째 들어선 빵집에서 하얀 찹쌀떡을 발견했다. 여전히 “엿 같은 것”을 찾는 친구의 소매를 다급하게 붙잡았다. “찹쌀떡 좋다, 나 이거 사줘.” 친구는 고개를 강하게 가로저었다. “안 되지, 시험엔 엿이라고. 다른 데 더 가보자.” 나는 차마 화도 낼 수 없었다.

빵집을 찾느라 세 정거장을 걸었다. 구두를 신은 발은 아프고, 손은 시리고, 배도 고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친구는 여전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아까부터 쭉 참고 있던 말, 대체 누구를 위한 엿을 찾고 있느냐는 말을 해볼 작정이었다. 긴장된 그 순간, 친구 눈이 다시 한 번 반짝였다. 편의점 입구에 놓인 호빵 광고판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 겨울에 아직 호빵을 안 먹었네. 붕어빵이랑 호떡만 먹고 말이야. 큰일 날 뻔했다. 우리 호빵 먹자!”

시험엔 엿이라더니 이젠 겨울엔 호빵이란다. 끝까지 자기 욕망에 충실한 친구. 얄밉지만 왠지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줘야 할 것 같다. 첫 호빵은 무조건 팥이라는 친구의 우격다짐에 집어 들었던 야채호빵을 내려놓았다. 팥 호빵은 따뜻하고 달달했다. 추위에 떨다 뜨거운 호빵을 먹으니 콧물이 주룩 흘렀다. 손가락으로 서로 가리키며 깔깔대고 웃었다. 호빵이 팽팽한 긴장을 끊어준 덕분에 결국 그날 엿 대신 찹쌀떡을 살 수 있었다.

정말 시험엔 엿이었을까? 다음날 치룬 시험에서 동생은 떨어졌고, 몇 달 후 합격했다. 그 친구와 연락은 끊겼지만 아마 지금쯤 추암 해수욕장 촛대바위 위로 떠오르는 새해 첫 일출을 보러갈 준비를 하고 있을 것 같다. 아무렴,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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