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 낯선 것을 수용하지 못하는 집단이야말로 썩은 잎이다

마르케스의 작품을 다시 읽고 있다. 다시 읽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가 노벨 문학상을 받자 여러 작품이 번역돼 나왔지만, 영어를 중역한 판본이었다. 그런데 최근 서점가에는 스페인어를 저본어로 한 작품이 나와 있다. 원어로 읽는 게 제일 낫겠지만, 그럴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스페인 문학 전공자들의 노고를 독자로서 격려하고 싶기도 했다. 원어로 번역했다는 것 자체가 어떤 발전을 상징하는 법이니까. 그 다음으로는 재미다. ‘백년의 고독’이나 ‘콜레라 시대의 사랑’으로 이미 확인됐듯이 그의 소설은 엄청 재미있다. 이른바 마술적 리얼리즘의 진수를 보여주는 흡인력 강한 이야기는 한번 책을 펼치면 손을 놓지 못하게 한다.

먼저 ‘백년의 고독’을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 아차, 했다. 소설이라는 게 꼭 제목의 상징성을 살펴봐야하는 것만은 아니지만, 이 작품은 7대에 걸친 한 가족사가 겪은 고독의 정체는 무엇인지 이해해야한다. 그런데 너무 재미있게만 읽다보니, 그 점을 놓친 것. 다시 읽을까 하다, ‘썩은 잎’을 읽기로 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썩은 잎’과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는 ‘백년의 고독’을 예고한 작품이다. 특히 뒤 작품은 최근에 스페인어 번역본이 나온지라 마침 참고하기 좋았다. ‘썩은 잎’을 보면, 마르케스가 남미적 전통뿐만 아니라 서구적 교양에도 얼마나 조예가 깊었는지 알 수 있다. 이 작품의 제사(題詞)는 ‘안티고네’에서 인용했다. 지극히 남미적 어법과 상황임에도 고대 그리스 비극의 주제가 반복되고 있음을 넌지시 알린 셈이다.

대령의 집에 의사가 찾아온다. 그 유명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추천해줬다. 어떤 과거사가 있는지 도통 알 수 없다. 여러모로 오리무중인 인물이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로 봤을 때 유럽의 혁명과 관련 있는 듯싶다. 그의 의술은 빼어났다. 4년 동안 평생 먹고살만한 돈을 벌었다. 그런데 바나나 회사가 들어오면서 진료소를 세우자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외면당한다. 그리고 있지도 않은 연애사건을 만들어 그를 조롱한다. 이런 일이 지속하자 그는 아예 병원 문을 닫고 은둔한다. 고독이 슬며시 머리를 든 셈이다. ‘백년의 고독’에서도 보면 등장인물이 개인적 가치를 지키려는 투쟁에 나섰다 실패하면 지독한 은둔생활에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의 사건이 터진다. ‘백년의 고독’에 나온 대학살 사건이 벌어진 밤, 마을 사람들이 부상자를 치료해 달라 하지만, 거절한다. 알고 있는 의학지식을 다 잊어버렸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이때 의사는 마을 사람들에게 린치를 당할 뻔했다. 그를 구제해준 것은 같은 날 마을에 들어왔고, 생김새도 형제 같은 풋내기 신부였다. 대신 마을 사람들은 이 의사가 죽으면 절대 시신을 매장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선언한다.

대령의 수양딸 격인 메메와 사실혼 관계로 살다 그녀가 사라지자 의사가 죽였을 거라면서 가택을 수색하기도 한다. 이때도 풋내기 신부가 도와준다. 마을의 희생양이 될 번할 적마다 형제애적 연대로 비극을 막았다. 마르케스는 이 점을 말하고 싶었던 듯하다. 결국 고독은 연대하지 않을 때 발생하고, 그 지독한 고독의 병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연대라는 것을.

대령이 큰 병을 얻었을 때 의사가 살려준다. 그 때 약조한 것이 그의 시신을 묻어주겠다는 것이었다. 의사가 자살하자 대령은 그를 매장해주려 한다. 세속 권력의 상징으로 읍장이 반대하고, 영적 권력으로 신부가 손사래를 치는 상황이지만. 여기서 ‘안티고네’의 갈등이 돋을새김된다. 개인의 양심과 현실 권력의 의지가 충돌할 때 발생할 비극을 예감하게 한다는 뜻이다. 이쯤에서 ‘백년의 고독’과 관련을 끊게 된다.

그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썩은 잎’을 보다가, 과연 누가 썩은 잎인가 묻게 돼서다. 썩은 잎은 미국적 가치가 전통마을을 지배할 때 같이 따라온 부랑자다. 지극히 부정적인 의미다. 안티고네적 상황은 낯선 것을 수용하지 못했을 적에 발생한다. 의사를 마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적극적으로 수용했다면, 이러한 갈등은 발생하지 않았을 터다. 다른 것, 낯선 것을 수용하지 못하는 집단이야말로 썩은 잎인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어떤 상황인지 되돌아보며 소설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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