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취재] 성평등과 지역 언론의 역할 5. 한국 성평등 정책의 방향

<편집자 주> 올해 초부터 미투(#Me Too) 운동이 본격화하면서 한국 사회 영역 전반에서 발생한 각종 성 불평등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와 관련한 언론 보도는 한국 사회의 성 불평등 관련 사안을 전통적 관습이나 사고방식, 권력지향주의, 사회구조로부터 빚어진 사안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상업성을 고려한 선정성으로 변질시키는 모습도 드러냈다. 게다가 언론의 잘못된 보도 프레임으로 인한 2차 피해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지역신문발전위원회는 성 평등을 추구하는 국내외 다양한 활동과 정책을 살펴보고, 성평등이 정착되는 데 언론은 어떻게 일조해야하는지 모색하고자 공동기획취재를 마련했다.

국내에선 지난 9월 5~6일 한국양성평등교육원과 한국YWCA연합회, 서울시여성가족재단 등을 방문 취재했고, 국외로는 아이슬란드의 여성권리협회와 복지부, 스웨덴의 보건사회복지부와 사회보험청, 언론사(스벤스카 다그블라뎃), 아동보육시설(푀르스콜라 필라우스 필리아), 스톡홀름 경제학교 등을 지난 10월 21~30일 방문 취재했다. 이 공동기획취재엔 인천투데이을 비롯해 강원일보, 경남도민일보, 경상일보, 고성신문, 무등일보, 울산매일신문, 주간함양이 참여했다.

“성평등이 확산되면 얼마나 발전할 수 있을지 상상해보길”

공동기획취재단과 인터뷰하고 있는 브룬힐두르 헤이달 아이슬란드 여성권리협회 사무총장.

“아이슬란드가 세계에서 성평등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가 된 요인은, 여성권리협회를 비롯한 사회단체들의 여러 활동과 정부 압박이다. 또한 정치권 등 사회 여러 방면에서 성평등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관련 법안 마련을 지속해왔다. 특히 여성 의원들의 역할이 컸다”

브룬힐두르 헤이달 아이슬란드 여성권리협회(1907년 설립) 사무총장의 말이다.

아이슬란드 여성권리협회가 성평등임금(Gender equality pay, 남녀동일임금)을 옹호하기 시작한 때는 1936년. 그로부터 25년 만인 1961년에 젠더임금차별금지법이 제정됐다. 이 법의 목표는 1967년까지 남녀임금격차를 없애는 것이었다. 임금격차는 조금씩 줄긴 했으나 1967년을 지나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에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1975년 10월 24일 여성총파업을 했다. 이로써 10월 24일은 ‘여성 휴무일(Women’s Day off)’이 됐고, 올해 제6회 여성총파업을 벌였다. 첫 여성총파업 이듬해인 1976년에 성평등법(Gender equality legislation)이 제정됐고, 이 법은 2008년까지 네 번 개정됐다. 남녀의 동일한 지위와 권리를 보장하는 이 법이 여러 차례 수정돼 현재의 법에 이르렀다.

2000년에 육아휴직 법안이 국회에서 어떠한 반대도 없이 통과됐는데, 이 법안은 1983년에 여성들이 창당한 ‘우먼스리스트’에서 처음 발의했다.

마그네아 마리노스도티르 아이슬란드 복지부 수석고문은 “1923년부터 1983년까지 여성의원 12명이 성평등 실현을 위해 활약했고, 1980년에 여성의원이 15명으로 증가한 이후 성평등 관련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이슬란드 국회의 여성의원 비율은 2017년 기준 38%다.

아이슬란드는 최근 들어 디지털 범죄 즉, 인터넷상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범죄 문제가 불거지자 관련 입법을 추진 중이다.

세계경제포럼의 ‘2017 성 격차 지수(GGI) 보고서’에서 한국은 세계 144개국 중 118위로 나타났다. 이러한 한국을 향해 브룬힐두르 사무총장은 “땅이 척박하고, 춥고 작은 아이슬란드는 20세기 초반까지 가난한 나라였다.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성평등이다. 한국에 성평등이 확산되면 얼마나 발전할 수 있을지 상상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평등 정책 실행에 가장 기본은 국가기관 성 주류화”
 

스웨덴 페미니스트 정부.(2016년 3월 촬영. 사진제공ㆍ스웨덴 보건사회복지부)

2014년 스웨덴에서 ‘페미니스트 정부’가 출범했다. 4년이 지난 지금, 페미니스트 정부의 성과는 무엇일까.

안나 카린 린드블럼 스웨덴 보건사회복지부 성평등국장의 설명을 정리하면, 모든 정부 부처에서 매해 예산을 발표할 때 그 예산이 성평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발표한다. 정부에 주요 부처ㆍ기관 60여개가 있는데, 각기 성평등을 위해 어떤 일을 했고 서비스를 제공했는지 평가했고, 이중에서 몇몇 부처ㆍ기관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성차별을 보기 시작했고, 그것들을 보완한 정책을 펼쳤다. 성평등 정책만 특별히 다루는 부처를 설치한 것도 성과다. 올해 1월에 성평등부(젠더 이퀄리티 에이전시)를 신설했는데, 정부의 성평등 프로그램을 조율하고, 분석ㆍ연구 기능을 한다. 교육 분야에도 기여한다.

‘페미니스트 정부’임을 자청할 만큼, 페미니즘을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는 뭘까. 안나 카린 국장의 설명은 이랬다. “성평등을 이뤄내는 것이 경제와 사회 발전에 중요하다는 인식이 사회 전체에 확산돼있었다. 원내 모든 정당들도 성평등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무엇이 성평등이고, 그것을 어떻게 실행해야하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했지만, 페미니즘이 중요하고 필요한 이데올로기라는 것에는 공감대가 형성돼있었다”

2017년 4월 페미니스트 정부는 “우리는 성평등을 촉진하는 결정들을 보장한다”며 “소녀들과 소년들, 여성과 남성이 사회와 그들 자신의 삶을 형성하는 데 동일한 권력(Power)을 가지고 그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헌신했다”고 밝혔다.

안나 카린 국장은 “페미니스트 정부는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자원의 배분과 법제화 등을 진행한다. 정부의 특정 부처만이 성평등 정책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처와 장관들이 페미니즘을 실행하는 것이 목표다”라고 설명했다.

스웨덴은 지난 9월 총선을 치렀다. 정당별 의석에 변화가 생겼는데, 새 정부(내각)가 아직 구성되지 않았기에 페미니스트 정부가 지속되고 있다. 스웨덴은 의원내각제와 입헌군주제를 병행하고 있다. 의회에서 총리를 선출하고, 국왕은 대외적으로 스웨덴을 대표한다.

스웨덴 의회의 여성의원 비율은 현재 46%다. 여성할당제의 법적 근거가 없음에도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 배경은 무엇일까.

안나 카린 국장은 “1960년대 정당 내 토론과 운동에서 시작했다. 당시 정당 대표들이 (가정에서) 양육과 (보육시설에서) 보육을 아우르는 법안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지역의회에서 논의되기 시작됐다. 여기서 남성과 여성을 대표하는 사람(의원)의 비율이 1대 1이어야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 1976년에 정당에서 자발적으로 여성 절반 할당제를 도입했고, 다른 정당들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게 자연스럽게 정부 부처에도 이어졌다”고 했다.

한국의 성평등 정책에 조언을 요청하자, 안나 카린 국장은 세 가지를 언급했다. 첫 번째는 여성과 남성을 따로 분석하는 통계가 중요하다. 어떤 면에서는 성 중립적으로 보이지만, 떼어놓고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여성에 관한 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남성들의 이야기도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임은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부여되고, 남성도 피해보는 게 있기에 함께 참여하게 해야 한다.

세 번째는 성 차별과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 분야는 물론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여와 연대가 필요하다.

그는 “한국에서 성평등 정책을 실행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성 주류화일 텐데, 이를 법적으로 제도화는 것, 국가기관들이 다함께 성 주류화를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평균 50대 남성들로 구성된 한국 국회, 누굴 대표하나”
 

김은경 한국YWCA연합회 성평등위원장.

성 주류화는 여성이 사회의 주류영역에 참여해 의사결정권을 획득하는 형태로 사회체계가 바뀌는 현상을 의미한다. 현재 대한민국 국회는 남성 83%, 여성 17%로 구성돼있다. ‘세계 성평등지수 118위 한국의 문제점이 어디에서 비롯하는가’라는 질문에, 김은경 한국YWCA연합회 성평등위원장은 대부분 남성들로 구성된 국회의 대표성에 가장 문제가 있다고 단언했다.

그는 “현행법과 현실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구체적 측면에서 이해하고 있지 않는 의원들이 법을 만들고 있는 것이 문제다. 평균 나이 50대 남성들로 이뤄진 국회에서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다뤄지지만, 그 외의 의제와 이슈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라며 “여성의원이 15%를 넘어서면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당과 정파를 넘어 공통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19대 국회도 여성의 목소리가 존재하지 않았고, 20대 국회도 마찬가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녀 동등한 의사결정 참여다. 그래야 이슈와 의제의 균형이 확보된다. 남녀동수는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성평등 문화를 확산하고 성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정부는 무엇부터 개선해야 할까. 김은경 위원장은 “정부 재정을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다. 일례로 저출생을 극복하는 데 돈을 쓰는 방식이 잘 못 돼있다. 부모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상관없이 아이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같다. 프랑스 등의 공교육시스템은 어느 환경에서 자라든 상관없이 아이가 정상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돕는다. 한국의 ‘저출산 대책’은 130조 원을 쏟아 부어도 효과가 없다. 그런 정책이 왜 나오나. 그걸 만드는 데 당사자(20~30대 여성)들이 배제돼있는 것이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지난 6월 발행된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김은실ㆍ권김현영ㆍ김신현경ㆍ김애라ㆍ김주희ㆍ민가영ㆍ서정애ㆍ이해응ㆍ정희진 지음, 휴머니스트 출판그룹)’에서 서정애는 “출산 정책의 비전은 지속발전 사회가 이루어질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지만, 그것은 출산율 제고를 통한 아이의 수 늘리기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양육을 공적 가치로 인정하고, 양육이 여성만 부담해야하는 일이 아니라 남성 역시 공동양육자로서 책임을 지는 사회시스템이 구축될 때 비로소 확보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서 “무엇보다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 더는 양육 전담자로서 자신을 정체화할 수 없는, 전통적 가족 규범의 모순을 간파한 채 비혼을 선택하는 이들을 둘러싼 가족ㆍ직장ㆍ연애ㆍ성ㆍ결혼ㆍ출산ㆍ규범 등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복잡한 맥락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 속에서 여성들이 갖는 불안과 위험 요인들을 풀어내기 위해 젠더와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새로운 아젠다와 정책이 만들어져야한다. 이런 맥락에서 저출산은 문제가 아니라 변화에 대한 요구이자 도전이다”라고 강조했다.

김은경 위원장은 끝으로 “여성들이 총파업을 하고, 나라 말아먹는 남자들을 쫓아내고, 나라를 다시 일으켜놓은 것이 아이슬란드다. 차별 받고 있는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과연 누가 해결해주겠는가. 결국,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50%의 여성들이 풀어나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공동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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