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내년도 정부 예산안 처리에 전격 합의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더 끌지 않고 합의한 것을 다행이라고 했으나,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워온 두 당이 손을 잡고 예산안 처리 합의문을 발표하는 모습은 낯설다.

두 당은 일자리 예산, 남북협력기금, 공무원 증원 예산 등을 정부 원안보다 5조 원가량 줄였다. 일자리 예산에선 주로 청년일자리 예산을 삭감했다. 그 대신에 사회간접자본 예산을 늘렸고, 쪽지예산으로 불리는 지역구 예산이 상당부분 끼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세입예산 관련 쟁점인 종합부동산세는 부담을 완화하기로 했다. 사립유치원의 공공성과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한 ‘유치원 3법’ 처리는 합의에서 빠졌다. 한국당의 요구가 상당 부분 관철됐다고 볼 수 있다. 6일 오후 7시 무렵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실은 홍 의원의 SNS 계정에 예산안 처리를 합의했다고 알렸는데, ‘적폐연대 하느라 고생 많아요~~’라는 식으로 비꼬는 댓글이 더 많았다.

민주당이 이렇게 욕을 먹으면서 한국당과 ‘낯선 연대’를 한 이유는 무얼까. 민주당은 예산안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을 함께 처리해야한다는 다른 야3당의 요구를 외면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의 의석수를 정당의 득표율과 최대한 맞추자는 것이다.

현 선거제도는 승자독식 구조라서 지역구에서 1등을 못하는 소수 정당 후보의 표는 모두 죽은 표가 된다. 이 때문에 국회의 대표성 등의 문제가 계속 제기됐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이런 표들이 비례대표 의석으로 살아난다. 먼저 정당 득표율에 따라 각 정당이 가져갈 의석수를 정한 뒤, 가져가는 의석수가 득표율과 비교해 부족하면 나머지를 비례대표 의석으로 채워주는 것이다. 하지만 거대 정당 입장에서 보면 반가운 제도가 아니다.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33.5% 민주당은 25.5%를 득표했다. 실제 차지한 의석 비율은 각각 40%가 넘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고 가정하면, 새누리당은 14석, 민주당은 21석 줄어든다. 선거법 개정안을 뺀 채 예산안 처리를 합의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민주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당론으로 정한 적 있고,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데도 말이다.

오히려 민주당 지도부는 예산안과 선거법 개정안을 함께 처리해야한다는 야3당의 요구를 두고 ‘국회의원 밥그릇’ 챙기자고 ‘국민 밥그릇(=예산안)’을 볼모로 삼고 있다고 공격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 세비(수당) 인상은 한국당과 합의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려면 의원 정수를 늘려야한다. 민주당은 이에 대한 국민 반감을 핑계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번 국회의원 세비 인상이, 차라리 국민 반감을 더 부추겨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반대 여론을 조성하기 위함이 아닌가.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