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취재] 성평등과 지역 언론의 역할 4
아이슬란드ㆍ스웨덴의 미투운동과 언론보도

<편집자 주> 올해 초부터 미투(#Me Too) 운동이 본격화하면서 국내 사회 영역 전반에서 발생한 각종 성 불평등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와 관련한 언론 보도는 한국사회의 성 불평등 관련 사안을 전통적 관습이나 사고방식, 권력지향주의, 사회구조로부터 빚어진 사안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상업성을 고려한 선정성으로 변질시키는 모습도 드러냈다. 게다가 언론의 잘못된 보도 프레임으로 인한 2차 피해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지역신문발전위원회는 성 평등을 추구하는 국내외 다양한 활동과 정책을 살펴보고, 성평등이 정착되는 데 언론은 어떻게 일조해야하는지 모색하고자 공동기획취재를 마련했다. 국내에선 지난 9월 5~6일 한국양성평등교육원과 한국YWCA연합회, 서울시여성가족재단 등을 방문 취재했고, 국외로는 아이슬란드의 여성권리협회와 복지부, 스웨덴의 보건사회복지부와 사회보험청, 언론사(스벤스카 다그블라뎃), 아동보육시설(푀르스콜라 필라우스 필리아), 스톡홀름 경제학교 등을 지난 10월 21~30일 방문 취재했다. 이 공동기획취재엔 인천투데이을 비롯해 강원일보, 경남도민일보, 경상일보, 고성신문, 무등일보, 울산매일신문, 주간함양이 참여했다.

개인보다 집단 지목…구조적 변화에 초점
‘가해자 실명공개’ 주요 화제, 아직 토론 중

세계에서 성평등 국가로 꼽히는 아이슬란드와 스웨덴에서도 한국처럼 미투운동이 이슈가 됐다. 지난 10월 23일 만난 브룬힐두르 헤이달 아이슬란드 여성권리위원회 사무총장은 “지난주에도 정치계에 미투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한 뒤 “의료계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인터넷에 직장 내 성추행과 성차별 관련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상황을 들려줬다.

그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고 성폭력이나 차별 행위만을 공개한다. 또한 개인보다는 집단을 지목한다”며 “구조적 변화가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웨덴의 미투운동 방식도 아이슬란드와 비슷하다. 10월 2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언론사 ‘스벤스카 다그블라뎃(Svenska Dagbladet)’을 방문했을 때, 뉴스룸 소속 리포터(취재기자) 에리카 트레지스는 “미투운동이 불거졌을 때인 지난해 9월 27일 발행된 한 문화잡지 표지에 600명이 넘는 배우들이 서명한 ‘이제는 그만 만져라’라는, 오랜 기간 당해온 성폭력 피해를 호소한 고발이 실렸다”며 “성범죄 관련 진술을 단 한 명의 배우도 하지 않았고 가해자를 지목하지 않았지만, 한 감독이 자살했다”고 전했다.

이 언론사의 매니징 에디터 마리아 림피는 “미투운동은 스웨덴에서도 일종의 혁명 같은 것이었다”며 “구글에서 미투 관련 검색을 하면 북유럽 국가에서는 아이슬란드 다음으로 스웨덴이 많았다. 스웨덴에서 2개월간 경제ㆍ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성범죄 관련 이야기가 돌았다”고 들려줬다.

스웨덴에서 미투운동이 활발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안나 카린 린드블럼 스웨덴 보건사회복지부 성평등국장은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 같다고 했다.

“첫 번째는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았을 때 목소리를 내는 것에서 어떠한 차별도 받지 말아야한다는 게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가치 중 하나다. 두 번째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네트워크를 만들고 의견을 나누는 시스템이 전통적으로 강하다. 이 요인들이 미투운동이 활발해지는 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이어진 그의 말을 정리하면, 스웨덴에서 미투운동은 주로 SNS에서 이뤄졌다. 미투 관련 문제가 되는 직업군과 집단(섹션) 65개가 SNS에 공개됐는데, 65개 그룹은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 그 대안을 내놓았다.

가장 중심이 된 화제는, 가해자 실명 공개 여부였다. 어떤 피해자는 밝혔고, 어떤 이들은 밝히지 않았다. 직장이나 조직의 문제점을 거론하는 게 혼합돼있었다. 이 토론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안나 카린 국장은 “성폭력과 성차별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게 가장 큰 변화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범죄 보도 제한 많았으나,
미투운동 이후 지침 수정해야할 상황

‘스벤스카 다그블라뎃’ 직원들이 스웨덴의 미투운동과 언론보도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스웨덴의 언론사들은 미투운동을 어떻게 보도했을까? 그 궁금증을 ‘스벤스카 다그블라뎃’에서 다소 풀 수 있었다. 이 언론사는 종이신문을 매일 17만부 발행한다. 온라인이나 PDF 버전 구독자가 6만 8000명, 하루 접속자가 75만명에 달한다.

이곳의 뉴스 에디터 조안나 드레빙거의 설명을 정리하면, 미투운동 이전엔 성범죄 관련 신상 공개를 극도로 제한했다. 하지만 이제는 SNS에서 밝혀진 사건들도 많기 때문에 독자들을 위해 사례별로 신상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스웨덴에 노벨상수상자선정위원회가 있는데, 한 위원의 남편이 18명에게 성폭력을 가했다. ‘스벤스카 다그블라뎃’은 경쟁 언론사에서 이를 보도한 후 한 달 뒤 선정위원회의 문제점을 보도하면서 가해자의 이름을 밝혔다. 6개월 뒤에는 스웨덴 공주도 그의 성범죄 피해자였다는 기사를 냈고, 왕실은 이를 부정하지 않고 ‘미투운동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스웨덴에는 보도 가이드라인이 있다.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이 많은 몇몇 미디어가 모여 스스로 규제(윤리강령)를 만들었다. 법적 강제는 없지만, 이를 지키지 않으면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범죄 기사는 제한을 둔다. 강도나 살인은 짧게 요약해 기사화한다. 다만, 사건이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력이 클 경우는 다르다. 일부 매체는 사회 구조적 부분에 방점을 두고 기사화한다.

뉴스 에디터 피터 포슬룬드는 “혐의만 갖고 기사를 작성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국민들이 알아야할 성범죄 관련 정보라면 기사화할 수 있다. 성범죄 혐의를 갖고 있는 사람의 사회적 영향력을 생각해야한다”고 한 뒤 “신상을 밝히려고 할 땐 인권이 침해당하지 않게 주의해야한다. 정말 필요할 때만 밝힌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우리도 자체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는데 가해자의 신상 공개에 굉장히 제한적이다. 하지만 미투운동 이후에 변화가 생겨 가이드라인을 수정해야할 상황이다”라고 덧붙였다.

스벤스카 다그블라뎃의 ‘더 갭’ 프로젝트
여성·남성 관련기사 비율 실시간 분석·공유

남성·여성 관련 기사 비율을 뉴스룸 벽에 설치된 모니터 스크린으로 실시간 보여준다.

스웨덴 미디어계에서도 미투가 발생했다. 한 미디어 작가가 여성 12명을 성추행 또는 성폭행했고, TV 방송국 대표가 성폭행한 사실도 드러났다. ‘스벤스카 다그블라뎃’에서는 미투가 나오지 않았지만, 회사 차원에서 시니어 매니저(중간 관리자)들을 모아놓고 성차별이나 성폭행 사례가 있었는지 조사했다.

매니징 에디터 마리아 림피는 “다행히 걱정할만한 일은 없었다”며 “예전부터 일 년에 두 번씩 모든 종사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과거에는 성평등 관련 조사가 없었으나, 지난해부터 성평등 분야를 넣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회사 내 성평등 대우가 어떠하냐는 질문에 5명 중 1명은 불평등이 남아있다고 답했다. 이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 중 하나가 임금격차의 원인을 찾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 4% 낮았다. 모든 관리자에게 편견ㆍ차별과 어떻게 싸워야하는지 교육하고 있다”고 했다.

‘스벤스카 다그블라뎃’ 1년 반 정도 전부터 한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더 갭(The Gap)’으로 명명한 이 프로젝트는 ‘생산하는 기사가 여성독자들에게 더 공감을 얻을 수 있게 하자’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마리아 림피는 “온라인 독자 분석 결과, 여성독자가 남성보다 적었다. 여성독자들을 잃고 있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졌다. 우리 회사의 가치가 민주적이고 열린사회 지향인데, 여성독자가 적다는 건 옳지 않다. 영업과도 연계된다”며 “인터뷰와 페이스북 등을 이용해 조사했는데 의미 있는 결과를 얻었다”고 했다.

유의미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여성독자들에게 접근할 때 팩트(사실)만이 아닌 팩트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기사가 유리하다. 시간대별 정리나 요약본, 시각적(동영상) 효과, 소셜미디어(팟캐스트) 활용이 필요하다. ▲여성들이 관심이 많은 분야의 기사를 늘려야한다. ▲여성독자들은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이 여성일 경우 더욱 흥미로워한다.

마리아 림피는 “2000~2015년에 스웨덴 미디어에 등장한 여성 비율은 30% 수준에서 변동이 없었다. 이 기간에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관리자 비율이 26%에서 37%로 증가했지만, 미디어 독자에서는 변화가 없었다”며 “조사 결과를 반영해 여성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했다.

‘스벤스카 다그블라뎃’은 기자들이 쓴 기사에 등장하는 여성과 남성의 비율을 컴퓨터(젠더로봇)로 분석한 뒤, 그 결과를 이메일로 기자에게 전송한다. 아울러 실시간으로 여성ㆍ남성 관련 기사 비율을 스크린으로 보여준다.

마리아 림피는 “기사에서 여성들이 등장하는 비율이 지난해부터 높아지고 있다”며 “자체 분석한 결과, 실시간으로 여성들이 노출되고 있는 비율이 19.5%에서 46.9% 사이를 오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년 전만 해도 주요 기사들이 중간계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남성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성평등하지 못했고, 지금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미투 언론보도] 피해자 신상 과도한 노출, 2차 피해 우려

양성평등원·서울YWCA, 1~3월 기사 분석
‘선정적 제목·성폭력 상세한 표현’ 상당수
‘미투운동 의미 깎아내리는 기사’ 약 15%


한국양성평등교육원(양평원)은 올해 상반기에 서울YWCA에 의뢰해 미투운동 관련 언론 보도를 모니터했다. 네이버 포털 뉴스 검색 기능을 이용해 올해 1월 1일부터 3월 31일까지 노출된 기사를 대상으로 했다. 언론 보도의 성 차별성을 분석하는 게 목적이었다.

‘미투, 서지현’이나 ‘미투, 안희정’과 같은 검색어(사건) 10개로 기사를 검색했고, 검색어 당 기사 150개를 랜덤(n번째)으로 뽑아 총1500개를 분석했다.

모니터링 결과, 피해자의 신상을 과도하게 노출한 기사가 50건에 달했다. 피해자의 실명ㆍ가족관계ㆍ출신대학ㆍ직업ㆍ근무지 등, 피해자의 신상을 가감 없이 보도해 2차 피해가 우려됐다. 또한 기사 제목을 ‘○○○(피해자명) 누구’라는 식으로 해서 호기심을 유발해 클릭을 유도하고, 피해자의 신상을 이슈화했다.

다음으로 보도 초점을 보면, ‘피해자 입장’이 623건(41.5%)로 가장 많긴 했으나 ‘가해자 입장’도 324건(21.6%)이나 됐다. ‘피해자의 고발로 가해자가 지위ㆍ명예 등을 잃게 됐다’는 식의 내용이나, 피해자에게 ‘꽃뱀 의혹’을 제기하며 가해자를 옹호하는 것처럼 해서 피해자에게 ‘잘못’의 화살을 돌리는 내용이 다수였다.

미투운동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기사도 상당수였다. 미투운동에 대한 의견이 드러난 기사 1014건 가운데 ‘긍정적 의견’이 777건(76.6%)으로 가장 많았지만, 미투운동의 의미를 깎아내리는 기사가 157건(15.5%)이나 됐다. 미투운동을 두고 ‘정치적 공작’ ‘인민재판’ ‘마녀사냥’ 등으로 표현했다. 미투운동이 성 대결을 부추겼다고 언급하거나, 가해자 또는 가해자가 속한 업계의 앞길을 방해한 것처럼 여긴 표현도 다수였다. ‘익명의 미투 폭로, 무고한 가해자 양산?’ ‘회식 단체예약 반 토막, 속 타는 상인들’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대표적이다.

성폭력을 사소하게 느끼게 만드는 표현도 기사 45건에서 발견됐다. 성폭력을 ‘성추문’이라고 표현하거나 ‘몹쓸 짓’ ‘나쁜 손’ 등의 표현으로 성범죄를 사소한 것으로 축소했다. ‘오늘 또 누구’라는 식의 제목으로 성폭력 가해 사실을 희화화하기도 했다.

제목을 선정적으로 뽑은 기사는 56건으로 3.7%에 달했다. “발성연습 하자며 온몸을 만져…”처럼 성폭력 피해 사실 중 선정적 부분을 제목으로 뽑거나 “여판사 꼬셔 모텔방 가고 싶다”와 같이 가해자의 성희롱 발언을 제목으로 했다.

성폭력 상황을 상세하게 보도한 기사는 58건(3.9%)이다. 피해자가 자신의 SNS 계정에 게시한 피해사실을 그대로 인용해 보도하는 식이 주를 이뤘다. 피해자의 신상을 노출해 2차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내용이 다수였다.

좋은 보도 사례로는 대개 미투운동이 일어난 구조적 원인과 대책을 다룬 기사들이 뽑혔다. 성폭력 개념을 다시 정의하는 게 필요함을 피력하고, 현 사법체계의 문제점을 꼬집는 등, 현 사회에서 필요한 논의들을 이끌어냈다.

서울YWCA는 “미투운동을 단순히 ‘뜨거운 감자’로 다루지 않고 정치ㆍ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게 여론을 형성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다”라며 “이슈 퍼 나르기 식 보도와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피해사실을 보여주는 것을 지양해야한다”고 주문했다.

※이 공동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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