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금석 사회연구소 가능한 미래 연구위원

장금석 사회연구소 가능한 미래 연구위원

문재인 정부가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발표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도 환영의 뜻을 밝혔다. 박근혜 정부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며 일방적으로 발표한 ‘한일 위안부 합의’ 발표 3년 만의 일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반응은 영 딴판이다. 주일 한국 대사를 불러 항의하는가 하면, 집권 자민당은 외무성과 합동회의 후 “한국의 반복되는 국제약속 위반과 일본 영토와 권익에 대한 용서하기 어려운 침해에 대해 가장 강한 분노를 표명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전 외무장관이라는 자는 “한국은 국가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다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는 망언을 했다. 이쯤하면 막가자는 것 외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인정했고, 아베는 총리대신 자격으로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시했다. 그러나 그 이후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인정한 고노 담화를 부정하는 행보를 반복했다. 반성하는 태도와는 거리가 너무나 멀었다. 이 와중에 이번 화해치유재단 해산 발표는 ‘이게 나라냐’고 물은 국민들의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일방적이고 폭력적으로 발표된 ‘한일 위안부 합의’ 이면에는 미국이라는 패권국가의 속내가 숨어있다. 미국은 팽창하는 중국을 보다 효율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한미ㆍ미일동맹으로 짜인 현재의 질서를 한미일 군사동맹체제로 전환을 희망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역사 문제라는 커다란 장애물이 있다. 독도 문제와 ‘위안부’ 문제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이를 해결해야 했다. 한미일 군사정보 공유 약정 체결과 ‘한일 위안부 합의’ 발표, 그리고 사드 배치는 미국의 이러한 이해를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한일 간 역사 문제 해결은 일본의 진정어린 반성과 사과로부터 출발해야한다.

하지만 지금 일본은 전범국의 태도가 아니라 제국 부활을 꿈꾸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엔 ‘보통국가’를 외치며 평화헌법마저 개정하려하고 있다.

일본이 지금처럼 오만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데는 일본을 전략적 우선순위에 둔 미국의 아시아ㆍ태평양 전략(현 인도ㆍ태평양 전략)이 있다. 그런데 지금 동북아시아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를 둘러싼 북미 간 대화가 바로 그것이다. 북미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지만, 결과는 희망적일 것이다. 체제 안전과 경제발전, 핵확산 방지와 패권질서 유지라는 두 나라의 이해가 매우 절실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짜놓은 동아시아 질서에서 일본은 더 이상 전범국이 아니었다. 하지만 새로운 남북관계와 한반도 비핵화, 북미관계 개선은 새로운 질서를 요구한다. 그 때가 일본과 역사 문제 해결을 위한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북미 간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관계가 정상화되면 일본은 외교적 고립을 우려해야하는 사태를 맞는다. 이뿐만 아니라, 보통국가의 명분도 사라진다. 이것이 아베정부가 북한과 대화에 안달하고 있는 이유다.

새로운 질서에서 고립을 자초할 것인지, 아니면 진정한 반성과 책임으로 새로운 질서에 당당하게 참여할 것인지, 선택은 일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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