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취재] 성평등과 지역 언론의 역할 3
아이슬란드ㆍ스웨덴의 성평등 교육

<편집자 주> 올해 초부터 미투(#Me Too) 운동이 본격화하면서 한국 사회 영역 전반에서 발생한 각종 성 불평등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와 관련한 언론 보도는 한국 사회의 성 불평등 관련 사안을 전통적 관습이나 사고방식, 권력지향주의, 사회구조로부터 빚어진 사안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상업성을 고려한 선정성으로 변질시키는 모습도 드러냈다. 게다가 언론의 잘못된 보도 프레임으로 인한 2차 피해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지역신문발전위원회는 성 평등을 추구하는 국내외 다양한 활동과 정책을 살펴보고, 성평등이 정착되는 데 언론은 어떻게 일조해야하는지 모색하고자 공동기획취재를 마련했다.

국내에선 지난 9월 5~6일 한국양성평등교육원과 한국YWCA연합회, 서울시여성가족재단 등을 방문 취재했고, 국외로는 아이슬란드의 여성권리협회와 복지부, 스웨덴의 보건사회복지부와 사회보험청, 언론사(스벤스카 다그블라뎃), 아동보육시설(푀르스콜라 필라우스 필리아), 스톡홀름 경제학교 등을 지난 10월 21~30일 방문 취재했다. 이 공동기획취재엔 인천투데이을 비롯해 강원일보, 경남도민일보, 경상일보, 고성신문, 무등일보, 울산매일신문, 주간함양이 참여했다.

초등 3학년 쯤 되면 성역할 관념 고정돼
5~7세에 성평등 교육하는 게 가장 좋아

 

올해 초부터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미투(#Me Too) 운동은 스쿨 미투(School Me Too)로도 확산됐다. 인천에서도 학교 6곳에서 학생들의 미투 운동이 일어났고, 경찰은 학생들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한 교사들을 조사해 4명을 형사 입건했다. 이에 성평등 교육을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9월 초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양평원)을 방문했을 때 민근식 양성평등사업팀장은 “양평원에서 전국의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양성평등 선도학교’를 지정해 관련 콘텐츠를 제공하는 등, 양성평등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선도학교 교사ㆍ부모ㆍ학생의 (성평등) 의식 변화를 조사했는데, 저학년의 의식 변화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왔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서 “5~7세에 성평등 교육을 하는 게 가장 좋고, 늦어도 초등 저학년 때 해야 한다는 게 학계의 요구사항이다”라며 “초등 3학년쯤 되면 이미 성역할 관념이 많이 고정된 상태라 교육이 어렵고 효과도 적다”고 말했다.

2003년에 설립된 양평원은 여성가족부 산하기관으로, 국내 유일 성평등 교육 정부기관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남녀 차별적 의식과 관행을 개선하고 성별에 관계없이 개인의 능력과 소질을 계발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 기반 조성을 목표로 한다.

양성평등과 성폭력ㆍ가정폭력 예방 교육 사업을 주로 하는데, 이를 수행할 전문 강사 양성과 파견에 힘을 쏟고 있다. 현재 양평원에 소속된 전문 강사는 3600명 정도 된다. ‘양성평등 선도학교’는 학교 운영 전반에 양성평등 가치가 반영되게 교육과정과 체험활동을 운영하고, 지역사회와 연계한 양성평등 행사 등을 진행한다. 올해는 충북 흥덕초교, 울산 무거초교, 경북 김장초교가 지정됐다.

스웨덴, 프리스쿨(pre-school)서 ‘보육+교육’
다방면에서 입체적으로 성평등 교육 녹여내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프리스쿨(pre-school)] ‘필라우스&필리아’ 아이들이 아이패드로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다.

성평등 국가로 알려져 있는 아이슬란드와 스웨덴의 성평등 교육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푀르스콜라[Forskola: 프리스쿨(pre-school)] ‘필라우스&필리아’는 스웨덴 성평등 교육의 단면을 보여준다.

‘필라우스&필리아’는 한국으로 치면 보육시설인데, 프리스쿨로 표현하는 이유는, ‘보육’과 ‘교육’을 분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만6세부터 초등학교를 시작한다. 그 전 단계가 프리스쿨이다. 프리스쿨은 세 가지 형태가 있다. 부모들이 뜻을 모아 가정에서 아이 7명 정도를 돌보는 가정형 프리스쿨, 아이 25명 정도가 다니는 사립 프리스쿨, 아이 30~40명이나 100명 이상인 국공립 프리스쿨. 대부분의 프리스쿨은 국공립인데 ‘필라우스&필리아’는 사립이다. 사립이지만 부모의 교육비(보육료) 부담 없이 세금으로 운영한다. 부모들이 시설 운영시간과 교육 주제 선정 등에 참여하는 게 이곳의 특징이다. 마치 협동조합처럼 운영한다. 프리스쿨을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 게 지방정부 방침인데, 부모들과 합의해 오전 7시 15분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

‘필라우스&필리아’는 다방면에서 입체적으로 성평등 교육을 녹여낸다. 카롤레 피셔스토롬(Carole Fischerstrom) 원장의 설명을 정리하면, 우선 지방정부가 차별금지법에 따라 제시한 ‘평등 교육 가이드라인’이 있다. 이것을 바탕으로 매해 구체적 계획을 짜고, 평가하고, 다음해 계획 수립에 반영한다. 구체적 계획엔 인종, 종교, 나이, 성, 성적 지향성까지 차별 리스트를 만든다.

이곳의 성평등 교육 사례를 보면, 공주는 귀하게 자라거나 꼭 외모가 예쁜 여자만 돼야한다는 관념을 깨기 위해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인데도 공주 등, 다양한 경우에도 공주가 될 수 있음을 동화책들로 보여준다. 중국 버전, 영국 버전 등 다양한 버전의 신데렐라 책도 있다. 또, 동물을 가지고 하는 교육에 초점을 맞추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아이들이 동물을 대할 때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좀 더 중립적으로 대하는 법을 배우는 초기 교육이다.

‘필라우스&필리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쿠바, 탄자니아, 아프리카, 탄자니아, 핀란드, 미국, 인도, 중국, 이라크 등 부모가 여러 나라 출신인 아이들이 다닌다. 스웨덴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성평등 가치를 교육하다보면, 부모의 성평등 가치나 관념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아이들이 혼란을 겪을 때도 있다.

카롤레 피셔스토롬 ‘필라우스&필리아’ 원장.

카롤레 원장은 이와 관련한 사례를 한 가지 들려줬다. “드레스(스커트로 된 원피스)를 입은 두 살 반 남자 아이가 다른 남자 아이에게 ‘너도 입을래’ 하고 물었다. 그 아이는 ‘아니야. 우리 아빠가 드레스는 여자만 입는 거랬어’라고 답했다. 이 때 선생의 역할은 되묻는 것이다. ‘왜 여자만 드레스를 입어야하지. 남자가 드레스를 입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아이가 다시 생각하게 질문한다. 당시 그 아이는 드레스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 드레스를 입고 돌 때 컬러의 조합이나 형태의 변화 등, 무슨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알아보는 체험교육을 하는 과정에선 그 아이도 드레스를 입고 참여했다. 만약에 이런 일로 아이가 혼란이나 갈등을 더 겪는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데 그것은 부모 상담이다. ‘스웨덴 사회는 이런 게 괜찮은 사회다. 그러니 아이에게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정체성 혼란을 줄 수도 있다’는 식으로 상담한다”

카롤레 원장은 “우리는 성별과 상관없이 직업을 선택할 수 있게 교육한다. ‘넌 뭐든지 할 수 있다. 네 스스로 결정하라’며 여성으로서, 남성으로서 역할을 제한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끝으로 “평등과 관련해선 스웨덴이 굉장히 진보적인 길을 걷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와 아이의 관계, 아이와 어른의 관계, 어른과 어른의 관계에서 생기는 차별은 정부 차원의 위원회로 보고된다. 거기서 심의해 조정한다. 매우 진보적인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웨덴은 올해 1월 성평등만 특별히 다루는 ‘젠더 이퀄리티 에이전시(성평등 정부기관)’를 신설했다. 이곳에선 기본적으로 경제 발전을 위한 성평등,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 방지 등을 추구한다. 정부 부처 내 성평등 프로그램을 조율하고, 분석ㆍ연구한다. 행정부는 물론 경찰ㆍ대학 등의 성평등 정책을 연구하고 교육하기도 한다.

안나 카린 린드블럼 스웨덴 보건사회복지부 성평등국장은 ‘스웨덴 성평등 정책의 가장 기반이 되는 철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인권과 민주주의, 정의”라고 한 뒤 “남성과 여성은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하며, 그것이 가장 포괄적인 목표다”라고 답했다.

아이슬란드 성평등교육 고교 필수과목 추진
성평등 교육 지원 ‘성평등센터’ 정부 부처로

 

카롤레 피셔스토롬(맨 왼쪽) ‘필라우스&필리아’ 원장이 공동취재단에게 성평등 관련 동화책들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성평등 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그 궁금증을 브룬힐두르 헤이달 아이슬란드 여성권리위원회 사무총장 인터뷰에서 어느 정도 풀 수 있었다.

그의 설명을 정리하면, 여성권리위원회는 성평등 교육을 학교에 필수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아이슬란드에 고등학교 33개가 있는데 3개교는 성평등을 필수과목으로 정해 교육하고 있다. 나머지 학교들의 절반 정도는 선택과목으로 성평등을 교육한다. 평등 교육을 초교 때부터 하고 있는데, 성평등 교육은 아직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브룬힐두르 사무총장은 “10년 전 고교 교사 중 한 명이 성평등 교육을 진행했는데 반응이 매우 좋아 다른 교사들의 문의가 이어졌고, 지금까지 계속 확산되고 있다. 학생들도 원하기에 교사들 스스로 커리큘럼을 만들어 가르치고 있다”고 한 뒤 “하지만 교사들이 스스로 커리큘럼을 만들어 하기 때문에 다른 학교로 옮길 경우 연속성이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고자 여성권리위원회는 성평등을 모든 학교의 필수과목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성권리위원회가 성평등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성평등 교육이 젊은 층을 민주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시민으로 양성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브룬힐두르 헤이달 아이슬란드 여성권리위 사무총장.

브룬힐두르 사무총장은 “학생들 절반가량이 페미니즘 관련 클럽에서 활동하거나 나름의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덕분에 젊은 층이 페미니즘이나 성평등 시각으로 세상을 보려한다”며 “한번은 한 학교의 페미니즘클럽을 방문했는데 남학생의 20% 정도가 클럽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었다. 성평등 관련 활동가 초청 토론회 등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성향에 따라 분위기는 달라지지만,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아이슬란드는 정부 차원에서 성평등 교육을 지원한다. 복지부 산하에 ‘젠더 이퀄리티 센터(성평등센터)’가 있는데, 그 위상을 한 단계 높여 내년 1월에는 정부 부처의 권한을 부여할 방침이다.

마그네아 마리노스도티르 아이슬란드 복지부 수석고문은 “전 세계적으로 아이슬란드의 성평등을 배우기 위해 많이 오기 때문에 성평등센터에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하려한다”며 “성평등센터는 다양한 기관에서 성평등 관련 법규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감시하고 있는데, 그 권한을 높여 성평등부로 만들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서 “척박한 땅을 가지고 있는 아이슬란드가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성평등 덕분이다”라며 “만약 한국에 성평등이 퍼지면 얼마나 발전할 수 있는지 상상해보라”고 덧붙였다.

※이 공동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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