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래 국제관계학 박사, 중국산동대 중한관계연구센터 연구원

 

김국래 국제관계학 박사, 중국산동대 중한관계연구센터 연구원

하구(河口)는 하천이 호수나 바다로 들어가는 어귀를 말한다. 한강하구는 한강이 임진강과 만나 바다로 들어가는 강화도 북쪽의 수역으로, 이곳은 오래 전부터 조강(祖江)이라 불렸으며, 예성강도 이곳에서 바다와 합류한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汽水域)은 염도가 낮고 부유물이 많으며 퇴적지형과 습지가 발달하고 해저지형이 복잡해 수서생물이 서식하기에 좋은 조건이 형성된다.

우리나라 주요 하천의 하구에는 하구언을 건설해 자연 하구가 대부분 사라졌으나, 인공구조물 설치나 개발이 제한됐던 한강하구에는 자연 하구가 발달하게 됐고, 환경부는 2006년 4월 김포대교 남단부터 강화 송해면 북쪽 수역까지 여의도 면적의 20배에 달하는 지역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

정전협정에 명시돼있는 한강하구는 임진강하구에서 볼음도(남측)와 굴당포(북측) 사이의 동서 길이 약 67km의 수역을 말한다. 한강하구 수역은 육지의 비무장지대와 함께 1953년 7월 27일 밤 10시부터 현재까지 65년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무인지대가 됐다. 온대지역 가운데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의 출입이 제한됐던 지역은 지구상에서 이곳이 유일하며 많은 생태학자들이 주시하는 인류의 자산이 됐다.

육지의 비무장지대는 동해안의 강원도 고성군 명호리에서 서쪽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정동리까지 248km의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 각각 2km, 총면적 9920㎢(약 3억 평)이었으나, 현재는 907.3㎢(약 2억 7400만 평)로 줄어들었다. 비무장지대이기는 하나 무장군인들이 수시로 출입했으며, 봄마다 시계 확보를 위해 불을 지르는 일이 반복됐다. 정전협정문에 의하면 한강하구 수역은 육지의 비무장지대와 달리 민간인 출입을 제한하지 않는 것으로 돼 있으나, 정부(군)에 의해 민간인 출입도 엄격히 통제됐다. 이 때문에 한강하구 수역은 육지의 비무장지대보다 보존상태가 더 좋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강하구 유역은 우리 민족이 형성한 한반도 문명의 발상지다. 이 일대에 산재해있는 선사 유적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 일대가 인류가 생존하기 좋은 조건이었음을 보여준다. 유사 이래로도 이 지역은 각 부족과 국가에 중요한 지역이었다. 김포시의 수안산성ㆍ동성산성ㆍ 문수산성, 경기도 파주시의 오두산성ㆍ육계산성ㆍ칠중성ㆍ덕진산성 등의 성곽들은 각 세력이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한강하구 유역은 해로와 내륙수로, 육로가 만나는 교통의 중심지이며, 한반도 내부와 외부를 이어주는 요지이자 다양한 문화가 교류되는 소통 중심지였다. 이런 점 때문에 한반도를 통일한 고려와 조선은 모두 수도를 한강하구 수역에서 가까운 개성과 한양으로 정했던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예성강하구의 벽란도가 한반도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로서 기능했는데, 이곳으로 동아시아는 물론 아라비아 상인들의 상선도 빈번하게 출입해 ‘코리아’라는 이름이 중동과 유럽에까지 알려졌다.

이처럼 중요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냉전과 분단의 틀 안에 갇혀 있던 한강하구에 대한 남북 공동조사가 지난 5일부터 시작됐다. 남북정상회담과 군사합의의 성과물인 이번 조사로 남북은 우선 항행에 필요한 해도를 작성하고 내년 봄부터는 민간선박 출입을 보장할 계획이란다. 인류 역사에 코리아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지점에서, 분단된 남북이 협력해 통일 코리아로 가는 첫 항해를 시작한다는 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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