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취재] 성평등과 지역 언론의 역할 2
아이슬란드의 성평등 임금

<편집자 주> 올해 초부터 미투(#Me Too) 운동이 본격화하면서 국내 사회 영역 전반에서 발생한 각종 성 불평등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와 관련한 언론 보도는 한국사회의 성 불평등 관련 사안을 전통적 관습이나 사고방식, 권력지향주의, 사회구조로부터 빚어진 사안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상업성을 고려한 선정성으로 변질시키는 모습도 드러냈다. 게다가 언론의 잘못된 보도 프레임으로 인한 2차 피해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지역신문발전위원회는 성 평등을 추구하는 국내외 다양한 활동과 정책을 살펴보고, 성평등이 정착되는 데 언론은 어떻게 일조해야하는지 모색하고자 공동기획취재를 마련했다.

국내에선 지난 9월 5~6일 한국양성평등교육원과 한국YWCA연합회, 서울시여성가족재단 등을 방문 취재했고, 국외로는 아이슬란드의 여성권리협회와 복지부, 스웨덴의 보건사회복지부와 사회보험청, 언론사(스벤스카 다그블라뎃), 아동보육시설(푀르스콜라 필라우스 필리아), 스톡홀름 경제학교 등을 지난 10월 21~30일 방문 취재했다. 이 공동기획취재엔 인천투데이을 비롯해 강원일보, 경남도민일보, 경상일보, 고성신문, 무등일보, 울산매일신문, 주간함양이 참여했다.

‘성 격차 지수 1위’ 국가에서 여성 총파업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의 ‘2017 성 격차 지수(Gender Gap Index, GGI) 보고서’에서 아이슬란드가 지수 0.878로 세계 144개국 중 1위로 나타났다. 8년째 성 격차 지수 1위를 기록한 것. 성 격차 지수는 ▲경제 참여ㆍ기회 ▲교육적 성취 ▲건강과 생존 ▲정치적 권한 분야에서 성별에 따라 어떤 차이가 나는지를 분석해 수치화한 것인데, 지수의 범위는 1.0에서 0.0 사이이며, 1에 가까울수록 성별 격차가 적음을 의미한다. 한국은 0.650으로 118위에 머물렀다.

아이슬란드가 성 격차 지수 1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지난 10월 23일 만난 브룬힐두르 헤이달 아이슬란드 여성권리위원회 사무총장은 “최근 100년간 여성들이 사회 활동과 정부 압박으로 성평등 법률 등을 도입한 덕분이다”라고 말했다.

1907년에 설립된 여성권리위원회는 비영리민간단체로서, 아이슬란드 여성이 고통 받는 부분을 직시하고 해결하면서 여성 인권과 정책참여권 확장을 위해 활동해왔다. 3년 전부터는 정당이나 정부 정책을 여성을 위한 정책으로 바꾸고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브룬힐두르 헤이달 사무총장은 “매해 페미니즘 포럼을 열고, 쇼 케이스나 컨퍼런스를 지원한다.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성평등 정책이나 의견을 모아 발전시킬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여전히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남녀 임금격차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아이슬란드 ‘여성 총파업(Kvennafriagurinn=Women’s Day off, 여성 휴무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10월 24일 ‘오후 2시 55분’의 의미
 

1975년 10월 24일에 열린 아이슬란드 여성 총파업 집회 장면.(사진제공·아이슬란드 복지부)

아이슬란드 여성 총파업은 1975년에 처음 시작됐다. 10월 24일, 여성들이 직장과 가정에서 걸어 나와 레이캬비크에 있는 광장에 모여 사회 내 여성의 역할 인정과 확대를 주장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당시 아이슬란드 여성 인구의 90% 이상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됐고, 이는 아이슬란드의 성평등 의식 변화와 정책 발전에 시발점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도 10월 24일에 총파업을 했는데, 그동안 통틀어 여섯 번째다.

브룬힐두르 헤이달 사무총장은 “올해는 사회단체 40개 정도가 참여해 미투(Me Too)운동을 바탕으로 여성이 가정과 직장에서 받는 공격과 폭력, 차별을 다룬다. 레이캬비크 하르파 콘서트장 앞에서 열리는데, 문화공연과 발언 등으로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서 “총파업의 목적은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빠지면 아이슬란드 경제가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수도 레이캬비크에서뿐만 아니라, 아이슬란드 전역으로 확산해나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파업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까? 그 실마리가 총파업을 알리는 전단지에 있었다. ‘10월 24일 14:55’ 여기서 ‘14:55’는 아이슬란드 여성들이 일하던 직장에서 일제히 일을 그만두고 집회가 열리는 광장으로 나오는 시각이다.

아이슬란드 여성노동자는 동일 직종ㆍ조건에서 남성노동자보다 약 7~14%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 이를 법정 노동시간 기준 임금으로 보면, 여성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오후 2시 55분까지에만 해당하는 수준이다. 즉, 여성노동자들이 오후 2시 55분부터 오후 5시까지는 임금을 받지 않고 일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을 지적하는 의미다.

여성 총파업 날 여성노동자들이 직장에서 나오는 시각은 점차 늦춰졌다. 2005년 오후 2시 8분, 2008년 2시 25분, 2016년 2시 38분에서 올해는 2시 55분. 남녀 임금격차가 오랜 시간에 걸쳐 소폭으로 줄었음을 보여준다. 참고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7년 아이슬란드 남녀임금격차는 약 10%로 OECD 회원국 37개 중 17위를 기록했다.

세계 최초로 ‘남녀 동일임금 인증제’ 시행
 

브룬힐두르 헤이달 아이슬란드 여성권리위원회 사무총장

하지만 앞으로는 남녀 임금격차가 빠르게 줄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이나 기관의 ‘동일임금 인증(Equal Pay Certification)’을 강제하는 동일임금법을 올해 1월부터 시행했기 때문이다. 올해까진 피고용자 250인 이상 기업이나 기관을 대상으로 하고, 연차적으로 확대해 2021년엔 25인 이상 기업이나 기관에도 적용된다.

이 법안이 발의된 건 8년 전인 2010년이다. 8년 동안 적용할 기준을 만들고 수정하고, 사회적 동의를 얻기 위한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동일임금 기준을 직종별로 규정했다.

기업이나 기관에서 자체적으로 동일임금 기준을 만들 수 있지만, 정부의 인증을 받아야한다. 창의력을 요하는 직업의 경우 동일임금 기준의 요소들 중 개인적 상황을 40%까지 확대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세부 기준을 정해 동일하게 적용해야한다. 직장에서 임금 이외에 제공하는 편의사항도 평등하게 이뤄져야한다. 일례로 직원 둘 다 업무상 자동차가 필요한데 직위가 높은 사람에게만 제공하면 그것은 차별이다.

기업이나 기관은 정부가 발급한 동일임금 인증서를 3년마다 갱신해야한다. 고용주는 반드시 임금 격차의 이유를 문서화해 보관해야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벌금을 부과한다. 복지부에 동일임금 인증 프로그램 매니저를 둬 기업들을 관리한다.

마그네아 마리노스도티르 아이슬란드 복지부 수석고문은 “성이나 인종, 종교 등, 모든 면에서 차별을 피하기 위한 조치다. 기업은 평판 유지를 위해 따르고 있다”며 “동일임금은 성차별은 물론 조직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조리한 것들을 없애기 위한 목적도 가지고 있다. 여성이 직장에서 진급하거나 임금을 협상할 때 불이익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라고 말했다.

‘성평등 임금’ 선구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
 

마그네아 마리노스도티르 아이슬란드 복지부 수석고문이 성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동일임금 인증제도를 설명하고 있다.

그동안 아이슬란드에 동일임금 관련 법안이 없던 것은 아니다. 남녀가 동일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논의는 1911년부터 시작됐고, 1961년에 성별로 인한 임금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1975년 10월 24일 여성 총파업에서도 동일임금을 요구하는 피켓은 여전히 등장했다. 그 이듬해부터 동일임금법을 시행했다. 이 법률은 그동안 네 번 정도 바뀌었는데, 1984년엔 25인 이상 기업이나 기관에 적용됐다. 하지만 여성이 많이 고용된 직장의 경우 임금차별이 여전하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높은 반면 여성 관리자 비율은 낮았다.

마그네아 수석고문은 “기업에서 동일임금을 주지 않을 경우 정부가 처벌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 직장에서 여성의 역할과 직위가 불명확하고, 임금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개별적 옵션에 따른 차별을 일일이 확인하기도 어렵다”고 한 뒤 “동일임금 인증 법안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임금차별의 책임은 고용된 사람들에게 있었다. 고용된 사람들이 임금 협상을 잘 하지 못한 것이라고 책임을 뒤집어 씌웠다. 그걸 새 법안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여성은 아이와 노인 돌봄, 육아휴직, 무임금 가사노동, 파트타임 노동, 경력단절, 임금격차, 연금격차로 이어지는 임금차별의 악순환에 놓여있다. 이러한 희생들이 여성에게만 요구돼왔다. 우리는 이를 바꾸고자 노력해왔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슬란드가 동일임금 인증제를 시행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알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여성권리위원회를 비롯한 여성단체들의 활동과 여성 국회의원들의 활약이 있었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정부와 정당들의 노력도 따랐다.

동일임금 인증제 도입을 사회적으로 합의할 수 있었던 밑바탕엔 무엇이 있었을까. 그 대답이 브룬힐두르 헤이달 여성권리위원회 사무총장의 말에 있는 듯했다.

“아이슬란드는 20세기 초반까지 가난한 나라였다.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성평등이다. 모든 이들의 잠재적 가능성을 끌어올려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2022년 안에 성 임금격차를 없애겠다’는 아이슬란드의 도전이 기대되는 말이다.

※이 공동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