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힙합음악에 푹 빠졌다. 최근 종영한 TV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준결승 무대에 오른 한 래퍼의 공연을 본 다음부터다. ‘내 맘대로, 멋대로 살겠다’는 랩 가사와 열정적 퍼포먼스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방송이 끝난 후, 아주 드물게 돈 주고 사던 음원을 한 번에 열 개나 구입했다. 어딜 가든 반복해서 듣고 랩 가사를 더듬거리며 따라 읽는다.

‘10대 중반부터 20대 초반에 들은 음악을 평생 좋아한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다. 요즘 인기 있는 아이돌의 댄스음악보다는 발라드나 흘러간 옛 가요가 더 듣기 좋은 건, 내 취향이 구닥다리여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으레 그런 거라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1980~90년대 발라드 세대인 내가 힙합음악에 빠져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음악이 대체 뭐기에 사람을 이렇게 들었다 놨다 하는 걸까.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어떤 활동이 인간 사회에 널리 퍼져 있고 오래 됐다면 그것은 생존에 중요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주 오랜 기간 야생에서 수렵ㆍ채집을 하며 살았다. 이들의 생존에 음악이 중요했다는 이야기다.

다윈은 새가 소리로 성적 파트너를 구하듯이 수렵ㆍ채집인도 음악을 사용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다른 의견이 나왔다. 2013년의 한 연구에선 음악은 집단의 유대감을 강하게 만들고, 유대감이 강한 집단은 위기 상황에서 잘 협력하기에 생존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처음엔 하나의 특별한 소리였던 것이 점차 리듬과 음을 갖게 되고, 이것을 유대감을 끌어올리는 데 활용한 집단이 결국 살아남아 지금의 인류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요즘도 교가나 군가, 응원가처럼 집단의 결속력을 높이는 데 음악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즐거움을 위해 듣는 경우가 훨씬 많다. 기쁨이나 슬픔을 표현한 음악을 들으면 기분도 행복하거나 우울해진다. 단지 감정만 그리 변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동안 뇌에 흘러드는 혈류를 관찰하면 긍정적 감정과 연관된 뇌 부위로 가는 혈류는 증가한 반면, 편도체로 가는 혈류는 감소했다. 편도체는 학습과 감정, 기억과 관련한 일을 처리하는 곳이면서 공포반응을 일으키는 장소다. 음악이 불안이나 스트레스, 때론 통증까지 줄이는 효과가 있어 음악치료라는 심리학 분야도 생겼다.

좋아하는 음악 장르를 알면 사람의 성격을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책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존 파웰 지음. 뮤진트리 펴냄)에는 2010년 음악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실려 있다. 그들은 음악 장르를 사색적이고 복잡한 음악. 강렬하고 반항적인 음악, 편안하고 관습적인 음악, 활기차고 율동적인 음악, 이렇게 네 가지로 나누고 각 음악을 선호하는 이들의 성향을 설명한다. 먼저 클래식이나 재즈를 좋아하는 이들은 개방적이고 언어에 능하고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다.

스포츠는 대체로 못한다. 록이나 헤비메탈을 선호하는 이들은 개방적이고 언어에 능할 뿐만 아니라 스포츠도 잘 한다. 팝이나 영화음악을 즐기는 이들은 외향적이고 친화성이 높으며 성실하다. 정치적으론 보수적이다. 마지막으로 랩과 소울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은 외향적이고 친화력이 높고 정치적으로 진보성향이 많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수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나름 공신력 있는 연구 결과라 한다.

앞서 이야기한, 젊은 시절에 들은 음악을 평생 좋아하게 된다는 말은 사실이다. 음악은 좋아하는 것만 듣게 되는 대단히 보수적인 장르다. 하지만 정답은 아니다. 위 책의 저자는 “처음에 마음에 들지 않은 곡도 몇 번 참고 들으면 (중략) 틀림없이 보상을 안겨줄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여러분이 평생 누릴 수 있는 음악의 즐거움이 늘어난다”라고 말한다.

마흔 줄에 ‘입문’한 힙합. 나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한 래퍼의 이름은 루피다. 날마다 모험을 떠나는 기분으로 그의 음악을 듣는다. 낯선 음악을 사랑하게 되는 설렘과 기쁨을 독자들과 함께 누리고 싶다. 어떤 장르의, 어떤 가수의 음악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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