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환 빈집은행 대표, 빈집 17채 ‘버섯농장’으로 변신 ... 주민들 ‘농장주’로 새 활력 찾아

문 닫힌 빈집, 게다가 반 지하. 철거만이 답일 듯했던 그곳이 버섯농장으로 변신했다. 한때 누군가의 삶터였을 공간엔 철재 선반이 들어섰고 버섯 종균이 자라는 배지(나무토막)들이 선반마다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다.

빈집을 활용해 쓰임을 찾는 단체 ‘빈집은행’에서 지난 9월부터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빈집은행’은 인천시와 미추홀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고용노동부의 지원을 받아 빈집 열일곱 채를 개조해 버섯농장을 만들었다. 반 지하는 해가 잘 안 들고 습도가 높은 데다 주위보다 서늘해 사람이 살기엔 어려운 점이 많다. 그런데 바로 이 특성이 버섯을 키우기엔 최적의 조건. 이 기발한 생각을 해낸 이는 최환(35·사진) ‘빈집은행’ 대표다. 그의 빈집은행 프로젝트를 두어 번 <인천투데이>에서 소개한 바 있다.

비싼 월세 때문에 빈집에 관심 가져

최환 빈집은행 대표가 버섯 종균이 자라는 배지(나무토막)를 들어보이고 있다.(사진제공·미추홀구)

최 대표가 빈집에 관심을 가진 건 비싼 월세 때문이었다. 그가 대학시절부터 살아온 미추홀구엔 방치된 빈집이 1200여 채에 달한다. ‘왜 이 귀한 집을 비워 둘까, 차라리 나를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매달 월세가 50만원씩 나갔어요. 저뿐만 아니라 친구들 대부분 비슷한 상황이었죠. 돈을 더 벌긴 힘드니 월세라도 줄여보고 싶었어요”

마음이 맞는 지인들과 빈집을 고쳐 사용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빈집의 주인을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무작정 빈집 앞에서 “사채업자처럼” 집주인을 기다리기도 여러 차례. 어렵게 만난 집주인 중에선 “빈집을 사용해도 좋지만 재개발이 되면 군소리 없이 나가달라”는 조건을 달기도 했다. 최 대표는 빈집을 찾는 틈틈이 건설현장에서 일을 배웠다. 볼품없이 낡은 집을 스스로 수리해 사용하기 위해서다. 집을 수리하는 일은 비싼 집값에 비하면 “할 만한 일”이었다.

발로 뛰는 이들의 활동이 지역에 알려지면서 2016년 미추홀구에서 주택 리모델링 교육 사업을 진행해볼 것을 제안했다. 이를 받아들여 ‘빈집 리모델링 전문가 양성과정’을 열고 도배며 전기, 단열 등 건설현장에서 익힌 기술들을 전문가와 함께 교육했다. 지금까지 200시간의 긴 강의를 수료한 주민이 60여명. 이중엔 관련 업종에 취업한 이도 상당수다.

반지하와 버섯농장, 이렇게 딱 맞을 수가

최 대표의 눈엔 어딜 가도 빈집만 눈에 띄었다. 그런데 빈집 중엔 특히 반지하가 많았다. 볕이 들지 않고 습기가 많은 이곳을 주거공간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순 없을까 고민하던 중 ‘도시농장’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빈집을 농장으로 만들어 창업을 원하는 이들에게 분양하면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고, 지역 주민들은 안전하고 신선한 농작물을 먹을 수 있다. 게다가 흉흉했던 빈집이 말끔하게 정리되니 일석삼조다. 미꾸라지, 상추 등 여러 실험에 도전했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미꾸라지는 중국산과의 가격경쟁에서 밀렸고, 엘이디(LED) 조명 아래에 자란 상추는 상품성이 없었다. 버섯을 생각하게 된 건 우연한 계기였다.

“지인 중 농사짓는 분이 있어요. 그 분이 무심코 나무토막을 주시면서 ‘화장실에 두고 물만 주면 버섯이 자란다’며 키워보라는 거예요. 빛이 없어도 버섯이 자랄 수 있다는 게 충격이었어요”

곧장 실험에 돌입했다. “반지하는 3분의 2가 땅에 매몰돼 습기를 잘 머금고 있어요. 버섯은 습도가 높고 온도가 낮은 곳에서 단단하게 잘 자라죠.” 곰팡이가 나기 쉬운 반지하는 곰팡이의 일종인 버섯에도 최적의 환경이었다.

이제 어떤 버섯을 키울지, 품종을 정해야했다. 가격경쟁력이 있고 수요도 있는 품종이어야 했다. 팽이버섯이나 느타리버섯은 시중 가격이 저렴해 소규모 재배로는 승산이 없었다. 최종 선택한 것은 표고버섯의 일종인 송화고. 흑화고인 표고보다 쫄깃하고 버섯 줄기까지 먹을 수 있다.

“송화고는 일일이 손으로 솎아내야 하는 버섯이에요. 농장주가 농장에 늘 붙어있어야 할 정도라고 해요. 그래서 대량으로 키우다가 포기하는 분이 많다는 이야길 들었어요. 우리에겐 딱 맞는 버섯인 거죠. 게다가 맛도 아주 좋아요”

빈집 열일곱 채를 수리해 농장으로 만들었다. 전기와 상하수도시설이 이미 마련돼 있어 수리비용이 많이 들지 않았다. 단열과 방수, 환기시설 정도만 새로 설치해도 충분했다. 소독도 말끔하게 했다. 이를 도맡아 꾸려갈 주민을 모집했다. 열일곱 명 선발에 60여명이 지원했다. 은퇴자, 경력단절여성, 소일거리를 찾던 노인 등 다양한 이들이 면접을 통과해 ‘스마트농장’을 꾸리는 개인사업자로서 새 삶을 시작했다. 지난 9월, 버섯 종균을 심은 배지 200개가 사업장마다 들어찼다. 추석 직전 출하가 목표였다. 초보 ‘농장주’들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꽤 좋은 버섯을 키워냈다. 버섯은 시기에 맞춰 적절하게 잘 자라주었고, 첫 수확물은 판매 당일 ‘완판’됐다.

“반응이 아주 좋았어요. 공무원과 주민들이 좋게 봐주시고 구매해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죠. 농장주들이 자신감을 많이 얻었어요.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희망도 생겼고요” 지금은 매달 정기적으로 이들의 버섯을 주문해 먹겠다는 소비자도 생겼다. 버섯 가격은 시중의 같은 품종보다 조금 낮거나 비슷한 정도. 중간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은 신선한 버섯을 주민에게 바로 공급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막 딴 버섯은 향기가 정말 진해요. 그냥 먹어도 맛있어요. 주민들도 이 점을 가장 좋아하셨죠”

이 성과로 지난 10월 행정안전부 ‘행정서비스 공동생산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사회혁신분야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성공적인 출발에 탄력을 받아 매해 20채 씩 버섯농장을 늘려갈 계획이다.

버섯농장에서 시민자산화까지
 

최환 빈집은행 대표.

허나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버섯 중에서도 표고버섯은 방사능물질을 흡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키운 버섯을 믿고 먹을 수 있을까. 최 대표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표고버섯이 방사능물질을 흡수하는 거 맞아요. 그런데 어디서 흡수하느냐 하면 배지를 통해서 해요. 그만큼 배지가 중요해요. 중국에서 농약을 많이 친 과일나무가 우리나라에 배지로 수입되고 있는 실정이고, 일본산 배지도 많아요.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법은 이렇게 수입한 배지에 키운 버섯에도 국산으로 표기할 수 있어요. 국내에서 키우면 다 국산이 되는 거예요. 저는 이게 큰 문제라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는 국내 배지만 사용해요”

가격은 국산 배지가 3분의 1정도 비싸다. 그래도 “나와 내 가족, 이웃이 먹을 건데 최대한 안전한 게 우선”이라 생각한단다. 농약도 사용하지 않는다. 국립농산물관리원에 친환경농산물 인증 신청도 해둔 상태다.

농장이 늘어날 예정인 만큼 안정적인 판로를 개척하는 것은 그에게 또 다른 숙제다.

“현재 프리마켓이나 지인을 통해 판매하는데 생산한 양만큼 대부분 팔리고 있어요. 하지만 앞으로 사업을 늘려가려면 판로도 있어야 하죠”
그의 바람은 인천의 학교 급식에 이들이 키운 버섯을 납품하는 것. “단가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면 급식에 우리 버섯을 사용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지역 생산자가 키운 신선한 버섯을 아이들이 먹고, 생산자는 지속적으로 좋은 버섯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수익이 다시 우리 지역에서 쓰이니까 자연스러운 선순환이 이어지는 거죠”

그의 시선은 버섯농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의 꿈은 조금 더 멀리 있다. ‘빈집은행’은 미추홀구과 함께 빈집 매입을 준비하고 있다. 이른바 ‘시민자산화’ 운동이다. 시민자산화의 핵심은 지역 자산을 다수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여기서 발생한 이익이 지역으로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집을 돈 버는 수단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너무나 절실한 공간이에요. 누구든 집이 없으면 제대로 살 수 없으니까요. 이 마을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들이 모여서 집 가꾸면서 같이 잘 살아보자는 거예요. 큰 게 아니에요”

그의 크지 않은 바람이 지역에서 어떻게 현실화될까. 궁금한 마음으로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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