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인천문화재단 인천역사문화센터장

김락기 인천문화재단 인천역사문화센터장

최근 고려 건국 1100주년과 경기 천년을 기념하는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미국ㆍ일본ㆍ중국의 연구자를 비롯해 국내외 고려사 연구자들이 고려 건국의 역사적 의미와 사회구조를 모색하고 향후 한반도에서 펼쳐질 평화와 통합의 여정을 조망했다.

중국 연변대학 역사학부의 동포 연구자인 정경일 교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개성역사유적지구의 유적과 유물을 여러 차례 살펴본 경험을 바탕으로 고려 문화유산의 특성을 소개하는 한편, 매우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제안의 핵심은 북측이 등재한 개성역사유적지구 유적에 강화의 고려 왕릉을 포함하고, 남측이 등재한 조선 왕릉에 황해북도 개풍의 제릉(齊陵)과 후릉(厚陵)을 포함해 ‘확장 등재’하자는 것이다.

2013년 북측이 등재한 개성역사유적지구에는 태조 왕건의 현릉(顯陵)과 공민왕ㆍ노국공주의 현릉(玄陵)ㆍ정릉(正陵) 등 여러 기의 고려 왕릉이 포함돼있다. 강화에 있는 고종 홍릉, 희종 석릉, 강종의 왕비이자 고종 어머니인 원덕태후 곤릉, 원종 왕비 순경태후 가릉은 어쩌면 ‘당연하게’ 빠져있다. 2009년 남측이 등재한 조선 왕릉에는 서울ㆍ경기 일원의 왕릉 40기가 포함됐으나 북측에 있는 태조 이성계의 왕비 신의왕후의 제릉과 조선 제2대 임금인 정종과 정안왕후의 능인 후릉도 ‘당연히’ 빠져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제도에는 등재 당시 미발견 상태였거나 조사가 충분하지 않아 포함되지 않았지만 그 뒤에라도 등재 유산의 완정성과 진정성을 충족하는 데 도움이 되는 유적을 확인하면 확장 등재라는 개념으로 등재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사실 정경일 교수의 제안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인천문화재단이 이 방안을 2015년부터 검토해 지난해에 내부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다른 나라 연구자가 동조 제안을 공개적으로 해주니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다.

분단은 남북을 갈라놓았지만, 남북이 공유한 역사를 갈라놓지는 못했다. 고려는 개성과 강화를 수도로 운영한 나라였고, 조선 왕릉은 남북에 걸쳐있다. 불과 몇 년 전 ‘교차 등재’를 주장했을 때 현실성이 떨어지는 제안이라는 의견을 받았던 처지에서 보면 격세지감이다.

강화 고려 왕릉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개성역사지구’, 개풍의 제릉과 후릉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 왕릉’이라는 안내판이 서는 것은 남북이 역사를 공유한 한겨레라는 상징일 뿐만 아니라 “나라와 나라 간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특수 관계”라는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강화 고인돌도 이러한 사례에 포함할 수 있다. 2000년에 남측에서 ‘고창ㆍ화순ㆍ강화 고인돌 유적’이란 이름으로 등재한 유적에 북측 황해도와 평안도 등지에 분포한 고인돌을 포함해 ‘한반도의 고인돌’로 확장 등재한다면 전 세계 고인돌의 상당수가 밀집한 한반도의 역사적 유구성을 알릴 수 있을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가능한 한 사례를 현실로 만들어내면, 뒤따라 현실이 될 수많은 사례가 순서를 기다리게 된다. 이제 남북 공동의 민족유산을 매개로 한 협력 사업은 구상의 단계를 넘어서려한다. 어느 지역 못지않게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한 역사도시로서 인천은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구상을 해야 하는지 지혜를 모아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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