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취재] 성평등과 지역 언론의 역할
1. 아이슬란드ㆍ스웨덴의 육아휴직 할당제

<편집자 주> 올해 초부터 미투(#Me Too) 운동이 본격화하면서 국내 사회 영역 전반에서 발생한 각종 성 불평등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와 관련한 언론 보도는 한국사회의 성 불평등 관련 사안을 전통적 관습이나 사고방식, 권력지향주의, 사회구조로부터 빚어진 사안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상업성을 고려한 선정성으로 변질시키는 모습도 드러냈다. 게다가 언론의 잘못된 보도 프레임으로 인한 2차 피해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지역신문발전위원회는 성 평등을 추구하는 국내외 다양한 활동과 정책을 살펴보고, 성평등이 정착되는 데 언론은 어떻게 일조해야하는지 모색하고자 공동기획취재를 마련했다.

국내에선 지난 9월 5~6일 한국양성평등교육원과 한국YWCA연합회, 서울시여성가족재단 등을 방문 취재했고, 국외로는 아이슬란드의 여성권리협회와 복지부, 스웨덴의 보건사회복지부와 사회보험청, 언론사(스벤스카 다그블라뎃), 아동보육시설(푀르스콜라 필라우스 필리아), 스톡홀름 경제학교 등을 지난 10월 21~30일 방문 취재했다. 이 공동기획취재엔 인천투데이을 비롯해 강원일보, 경남도민일보, 경상일보, 고성신문, 무등일보, 울산매일신문, 주간함양이 참여했다.

한국정부의 저출생 극복 캠페인, 아빠 육아휴직 전성시대?
 

‘아빠는 지금 육아휴직 중 / 내 근육은 분유를 잘 타기 위해서다 / 내 전공은 블록건축을 위해서다 / (오후 3시) 내 본능은 어린이집 버스를 위해서다 / 2018년 육아휴직자 6명 중 1명은 아빠 / 아빠 육아휴직 전성시대 / 아빠의 육아휴직,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최근 TV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대한민국정부의 ‘저출생 극복 캠페인’ CF 광고 문구와 멘트다. 이 광고 마지막 장면엔 한 아이가 나와 ‘이제 아저씨 차례예요’라고 말한다.

한국의 올해 2분기(4~6월) 출생률은 0.97명. 분기 출생률이 1.0명 밑으로 떨어진 것은 사상 처음이다. 정부가 저출생의 주요 원인을 일과 가정의 불균형으로 보고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을 권장하고 나선 것이다. 저출생 문제를 여성에게만 전가하는 성차별 단어로 지목된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표현한 것도 눈에 띈다.

세계 최고수준 육아휴직제도, 이용률은?
 

공동기획취재단이 10월 24일 스웨덴 보건사회복지부를 방문해 안나 카린 린드블럼 성평등국장과 인터뷰하고 있다.

한국은 남성육아휴직을 53주 보장하고 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길다. 세계 최고수준의 복지를 자랑하는 북유럽 국가들의 남성육아휴직 기간은 한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0주 미만이지만, 한국의 남성육아휴직 이용률보다 훨씬 높다.

한국정부는 CF 광고에서 ‘2018년 육아휴직자 6명 중 1명은 아빠’라며 올해 상반기 육아휴직자 중 아빠가 16.9%를 차지했고, 이는 작년 대비 66% 증가한 것이라 홍보하고 있다. 이 수치는 어디서 어떻게 나온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보통 육아휴직 이용률은 육아휴직급여 수급자 현황으로 추산한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낸 고용보험통계연보를 보면, 육아휴직급여 초회(=신규)수급자 중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9년 1.4%, 2012년 2.8%, 2014년 4.5%, 2016년 8.5%로 증가했다.

그런데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고용노동부가 제출한 ‘2017년 대기업ㆍ중소기업 육아휴직 사용 현황’을 보면, 대기업 남성육아휴직 비율은 16.3%이지만, 중소기업은 10.1%다.

또 따져봐야 할 것은 전체 육아휴직 이용률이다. 육아휴직급여를 받지 못하는 고용보험 미가입자가 상당히 많아, 정확히 알 수 없다. 정부는 2015년 기준 출산한 여성 취업자 25만명 중 약 10만명이 고용보험 미가입자라고 추산한 바 있다.

다만, 한국고용정보원의 고용보험통계연보를 보면, 육아휴직급여 초회수급자는 2009년 3만 5400명, 2016년 8만 9795명이다. 또,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7년 1분기 전체 육아휴직자는 2만 935명으로 2016년 1분기 2만 1247명보다 줄었다.

‘한국의 육아휴직제도는 세계 최고수준이지만 여전히 사용하기 어려운 제도로 그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대목이다.

아이슬란드의 남녀 육아휴직 할당제…‘남성도 3개월’ 의무화
 

마그네아 마리노스도티르 아이슬란드 복지부 수석고문.

아이슬란드는 2000년에 남녀 육아휴직 할당제를 도입했다. 전체 육아휴직 기간은 9개월인데, 여성 3개월, 남성 3개월, 나머지 3개월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다. 9개월 동안 임금의 80%를 지급하며, 상한액은 52만 크로나(ISK, 한화 약 520만원)다. 처음 남성 육아휴직을 도입했을 때 상한액이 없었으나, 2008년 경제 불황을 겪은 후 상한액을 정했다.

마그네아 마리노스도티르 아이슬란드 복지부 수석고문은 “우리 정부는 성 차별 없이 구직활동을 할 수 있게 해왔고, 육아나 직장생활에서도 성평등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남성육아휴직 도입은 육아 의무가 아버지와 어머니 양쪽에 있다는 것과 성평등 의미를 담고 있다. 남성도 육아휴직 3개월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아버지의 90%가 육아휴직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서 “이는 성평등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의 줄임말)을 위한 최고의 방안이다”라고 강조했다.

아이슬란드에서 출산 여성 취업자는 출생 후 2주간 반드시 출산휴가를 가야 한다. 또, 출산 이후 2년 안에 육아휴직을 해야 한다. 이혼 등의 이유로 홀로 아이를 키워야할 경우 혼자서 육아휴직 9개월 사용할 수 있다.

마그네아 수석고문은 여성들로만 창당한 ‘우먼스리스트’라는 정당이 1983년에 이 법안을 발의했고, 2000년에 법안이 통과될 때 어떤 정당의 반대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1997년에 이 법률이 끼친 영향을 연구했는데, 아버지들이 가사노동과 육아에 참여하는 비율이 늘었고, 성에 관한 고전적 사회 인식이 변했다고도 했다.

그는 “과거 고용주들에게 여성 고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했으나 남성들도 육아휴직이 의무화되면서 이제는 여성 고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아이슬란드 경제활동 참여율은 여성 85%, 남성 91%다. 여성 참여율이 OECD 국가에서 가장 높다.

스웨덴 경제 성장 기반은 가족정책과 사회보험시스템

닉 클라스 라그렌 스웨덴 사회보험청 가족아동부 대변인.

스웨덴도 육아휴직 남녀 할당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스웨덴 사회보험청에 따르면, 육아휴직 기간은 1974년 180일로 시작해 2002년부터 480일로 유지되고 있다. 아이가 0세부터 12세 때까지 사용할 수 있다. 출산 전 60일부터 소득의 80%를 받고 쉴 수 있다. 육아휴직 기간 480일 중 390일은 소득의 80%를, 나머지는 정해진 금액을 받는다. 상한액을 넘어갈 경우 회사에서 지급하기에 소득의 90%까지 받을 수 있다.

첫 30일은 부모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 육아휴직을 1974년에 도입할 때는 남성과 여성이 절반씩 사용해야한다는 취지였지만, 그 때는 서로 양도할 수 있어서 여성의 육아휴직 이용률이 높았다. 하지만 지금은 육아휴직 기간 중 90일은 무조건 한 부모가 의무적으로 사용해야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자동 소멸된다. 1974년엔 육아휴직 수당의 99.5%가 여성들에게 지급됐지만, 지금은 29%가 남성들에게 지급되고 있다. 스웨덴 남성들의 평균 육아휴직 사용 일수는 107일이다.

닉 클라스 라그렌 사회보험청 가족아동부 대변인은 2008년 스웨덴의 한 아동 잡지에 실린 리서치를 소개했다. 8~14세 아이 6000여명에게 ‘슬플 때 누구와 대화를 나누고 싶냐?’고 질문했는데, ‘40%는 엄마, 24%는 친구, 아빠는 4%’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 뒤 “정부에서 육아휴직 장려를 위한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왔다. 오랜 기간 다양한 정책을 도입해왔지만 여전히 아이들 정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엄마라는 결과가 나온다. 스웨덴이 열심히 걸어왔지만 절반 정도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스웨덴 육아휴직의 이면도 들려줬다. “출산 후 1년은 여전히 엄마들이 육아휴직을 대부분 사용한다. 아빠들은 방학이나 여름휴가철, 크리스마스 등 연휴에 붙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여성들 가운데 여전히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파트타임에 종사하는 사람도 많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가족과 경제 정책의 목표는 시대에 따라 변해왔지만 엄마와 아빠가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선택이 아닌 모두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육아휴직의 경우 남녀 동등하게 사용해야한다는 가치가 1980년대부터 생성됐기에 이를 기준으로 정책을 적용해왔다”고 덧붙였다.

2016년 기준 스웨덴의 만20~64세 총고용률은 남성 80%, 여성 79%다. 남성과 여성의 고용율 차이가 세계에서 가장 작다.

고용률이 높은 나라들은 가족정책은 물론 사회보험시스템도 잘 돼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르웨이와 핀란드 역시 육아휴직 할당제를 도입해 남녀가 평등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북유럽 나라들이 높은 출생률을 보이는 것도 공통적 현상 중 하나다. 스웨덴 출생률은 지난해 기준 1.9%다.

닉 클라스 대변인은 “출생률 증감은 경제 상황에 큰 영향을 받는다. 여기에 대처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며 “스웨덴에선 사회보험 사각지대가 있을 수 없다. 연금, 실업급여, 상해보험, 질병수당, 육아휴직, 소득에 따른 지원 등, 다양한 지원이 있다”고 말했다.

질병수당을 예로 들면, 질병으로 인해 휴직할 경우 회사에 진단서를 제출하면 1년은 급여의 80%를 지급받을 수 있고, 1년을 넘어서면서 지원액이 점차 감소한다. 아픈 첫날을 제외한 14일까지는 회사, 14일 이후는 사회보험청에서 지원한다. 재원은 사회보험료로 충당한다. 사회보험료를 모두 고용주나 기업이 부담한다. 노동자 급여의 31.42%에 해당하는 사회보험료를 부담해야한다. 아울러 자신의 소득에 따른 10%도 사회보험료로 내야 한다.

안나 카린 린드블럼 스웨덴 보건사회복지부 성평등국장.

닉 콜라스 대변인은 “아이가 없는 사람들로부터 아이가 있는 가족들에게 소득이 재분배돼야한다는 가치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분배시스템은 오래 전부터 유지돼왔으며, 출생률을 높이기 위한 시도였기에 사회적 갈등은 거의 없었다. 아이를 가진 모든 부모는 지원받아야한다는 기본 취지 아래 관련 정책이 발전해왔다”고 했다.

안나 카린 린드블럼 스웨덴 보건사회복지부 성평등국장한테서 역사적 배경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1960~70년대 가장 컸던 사회적 욕구는 경제 성장을 위한 노동력 증가였다. 인구 노령화가 가장 큰 문제였다.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않는 보유노동력 중 가장 큰 부분은 아이를 가진 여성들이었다. 그래서 중요 정책 세 가지를 만들었다. 성 중립적(=남성 여성 모두 쓸 수 있는) 육아휴직, 질 좋은 보육, 남성과 여성에게 따로 세금을 부과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그 당시 이런 개혁을 이뤄낼 때 큰 반대와 갈등이 있었다. 가정주부가 노동시장에 나갈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경제 발전에 필요하다는 것에 사회적 합의가 있어서 진행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스웨덴 여성의 노동시장 참가율은 1963년 47%에서 1990년대 이후 85%로 증가했다.

※이 공동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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