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육아에서 청춘쌀롱까지 ‘잘 살고 잘 노는’ 성미산마을
공동육아에서 청춘쌀롱까지 ‘잘 살고 잘 노는’ 성미산마을
  • 김갑봉 기자
  • 승인 2018.11.1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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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취재] 양극화 해소를 위한 공동체
1.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마을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니 잘 싸우는 게 중요”
 

1997년 IMF 경제위기 전만 해도 서울에서도 장례를 집에서 치렀다. 이웃들이 마음과 마음을 보탰다. 이제 그런 풍경은 사라지고 없다. 마당 있는 집과 골목은 자취를 감춰 찾아보기 힘들고 아파트가 무성하다. 관계는 멀어지고 공동체는 무너지고 있다.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는 서울 한가운데 눈길을 끄는 마을이 있으니,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이다. 성미산마을은 행정구역을 뜻하는 이름이 아니라 공동체를 상징한다.

행정구역으로 치면 성산동이 제일 많고, 서교동과 망원동, 연남동 일대를 포함했다. 보통 성미산을 중심으로 반경 1km 이내로, 누군가 부르면 자전거와 도보로 언제든지 쉽게 달려올 수 있는 마을을 뜻한다.

성미산이 있어 아이들을 자연 속에 키우고 싶은 이들이 이사하기 시작했고, 공동육아협동조합을 설립한 데서 공동체운동이 싹텄다. 대략 1000~1500가구이며, 30~50대 가족 중심의 커뮤니티(공동체)가 활발하다.

성미산마을은 육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에서 비롯했다. 마을 사람들은 1994년 공동육아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이때만 해도 어린이집이 두 개에 불과한 조용한 마을이었다. 현재는 5개에 이른다.

육아협동조합 설립으로 성미산마을 공동체의 싹을 틔우긴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성미산마을 공동체가 단단해지고 확대된 것은 서울시의 성미산 개발을 막아내는 과정을 거치면서다.

서울시가 2001년 성미산을 밀어버리고 도시개발 사업을 하겠다고 하자, 성미산마을 사람들은 대책위원회를 꾸려 저항하기 시작했다. 육아에서 시작한 고민은 마을 지키기로 확대됐다. 주민들은 성미산 지키기에 성공했고, 서울시는 2003년 8월 개발 계획을 철회했다.

그 뒤 한 언론이 성미산마을이라고 보도한 뒤, 이곳 사람들은 성미산마을 사람들이 됐다. 성미산마을 공동체의 키워드는 성평등, 잘 싸우기, 잘 놀기, 협동조합, 당사자주의, 자발성, 다양성 인정 등이다. 성미산마을 사람들은 그 중에서도 사람들끼리 잘 싸우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들은 이름 대신 별명을 부른다. 수평적 소통을 위해서란다. 성미산마을이 탄생한 지 25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서로 실명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관계만큼은 돈독하다. 최근에는 이름을 같이 부르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성미산마을의 마을회관 역할을 하는 ‘마포활력소’의 사슴 사무국장은 “공동육아로 시작한 성미산마을에 현재 각종 협동조합과 동아리 등 독립적인 커뮤니티 70여개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만큼 이견도 많다. 공동체가 늘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건강한 공동체는 잘 싸우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 동네에 산다고 해서 다 행복한 것은 아니다. 다만 여긴 즐거움과 어려움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위안 받고 싶은 친구가 있고, 어딘가 하소연할 데가 있다. 공동체의 필요성을 느끼고 공동체의 소중함을 아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살다가 필요하면 ‘모임’ 만들고 안 되면 닫는다
 

성미산마을 마을극장.
성미산마을 마을극장.

성미산마을에는 커뮤니티 약 70개가 활동하고 있다. 단위마다 독립적 활동을 한다. 성미산마을의 특징은 살다가 필요하면 모임이나 협동조합을 만들고, 그것도 당사자주의에 따라 필요한 사람이 만든다. 만들었다가 아니다 싶으면 청산한다. 도시의 유목민이다.

일례로 살다 보니 모임의 돈이 필요해 금고를 만들었다. 몇몇이 모여 대화를 나누다 동네금고 설립 얘기를 나눴고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렇게 2%대로 대출이 가능한 ‘성미산 동네금고’가 탄생했다. 물론 개인이 아니라 단체에만 대출한다.

활발한 공동체는 활발한 대화에서 출발한다. 퇴근 후 저녁에 간단히 맥주를 마시다가 마을 얘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뭐가 필요하고, 뭐가 부족하다 등의 얘기가 나온다. 그리고 이 얘기의 일부가 당사자들의 모임 구성으로 발전한다.

‘비누두레’도 그랬다. 아이를 키우던 엄마들이 아이들의 아토피 문제를 걱정하면서 정보를 교환하고 방안을 모색했다. 그렇게 천연비누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 아이의 아토피 치료가 목적이었는데, 비누두레는 지금 외부에서 찾아오는 마을기업으로 성장했다.

반려동물이 늘면서 협동조합 동물병원도 생겼다. 반려동물을 키우다 보면 아프거나 치료를 받을 경우가 종종 생긴다. 자연스럽게 마을에선 동물병원이 의제로 부각됐고, 마음 맞는 주민들이 모여 지난 2015년 세계 최초로 동물병원 협동조합인 ‘우리동생’을 설립했다.

물론 해산한 조직도 많다. 차병원 협동조합, 참여자치마포연대, 카쉐어링 자동차두레, 성미산 밥상, 반찬가게, 동네부엌 등이 소멸했다. 간단하다. 필요하면 만들고, 안 되면 닫는다. 협동조합이 싫으면 안 하면 된다. 그러나 성미산마을에서 살려면 가만있기 어렵다.

동물병원협동조합의 동물 조합원은 3000마리
 

성미산마을 마을 활력소 사슴 사무국장.
성미산마을 마을 활력소 사슴 사무국장.

성미산마을의 공동체는 정말 다양하다. 두레소비자생활협동조합에는 1만명이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의료사회적협동조합(가정의학과, 산부인과, 건강검진)에는 조합원 1210명이 함께하고 있다. 동물병원사회적협동조합의 경우 사람 조합원은 약 1700명, 동물조합원 약 3000마리다.

더치커피를 생산해 판매하는 작은나무카페협동조합도 있고, 마을기업인 비누두레, 마을서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책모임 13개가 있다. 이밖에도 성미산공방, 천연밀랍초 모임, 양모펠팅 모임 등이 있다.

청소년 창업기업 ‘소풍가는 고양이’는 서울에서 인기다. 유기농 도시락을 만들어 판매하는 기업인데, 주문이 밀릴 정도다.
성민산 동네금고는 단체한테만 대출하고 있고, 상호부조를 위한 성미산대동계도 운영하고 있다. 성미산 지역화폐인 ‘모아’는 180여 곳에서 사용 가능하고, 전통시장에서도 잘 받아준다. 현금으로 지역화폐를 사면 5% 더 준다.

‘마포희망나눔’이라는 복지단체는 소외계층 반찬 지원과 의료 지원, 집수리를 맡고 있다. 후원회원은 400여명에 이른다.

성미산에서는 잘 싸우는 것만큼이나 잘 노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노인들의 놀이문화 공간인 ‘청춘쌀롱’은 인기가 많다. 이밖에도 아마(=아빠와 엄마)밴드, 동네사진관, 청소년합창단, 연극모임, 풍물패, 오케스트라, 마을극장 등의 동아리와 공동체 공간이 즐비하다.

이 수많은 동아리의 활동은 매해 6월 성미산마을축제에서 꽃을 피운다. 노래자랑과 거리퍼레이드, 공연 등 쉼 없는 축제가 사흘간 지속된다. 잘 살고, 잘 싸우고, 잘 노는 성미산사람들의 한바탕 대동의 장이 열리는 것이다.

대안학교 필요해 12년제 성미산학교 설립
 

성미산학교.
성미산학교.

공동육아에서 시작한 성미산마을을 더욱 공동체답게 하는 공동체가 있으니 바로 성미산학교다. 성미산학교는 12년제 대안학교로 지난 2004년 설립했다.

성미산학교 역시 마을 사람들의 요구에 의해 탄생했다. 어린이집을 졸업한 뒤 아이들이 일반학교 대신 대안학교를 가겠다고 하자, 뜻이 맞는 어른들이 성미산학교를 만들었다. 지금은 저 멀리 부산에서도 이사 올 정도로 유명하다.

성미산학교는 올해로 15년째다. 정부 지원이 없는 비인가 학교이기에 아이를 보내는 가정은 한 달에 수업료 63만원을 내야 한다.

12년제 이니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다. 중등부 학생이 되면 인터넷도, TV도 안 되는 곳에서 약 3주간 농업을 체험하고 와야 한다. 또,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 2~3개월 과정의 해외이동학습도 해야 한다. 자아를 찾는 과정이다. 대안학교를 나와 대학에 가는 학생도 있고, 유학 가는 친구도 있으며, 홍성 풀무학교에 가서 농사와 목공 등을 배우는 학생들도 있다.

소행주, 소통이 있어 행복한 공동주택
 

성미산마을 마을기업 비누두레.
성미산마을 마을기업 비누두레.

성미산마을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소행주.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이다. 6호까지 시행해 분양을 마쳤고, 현재 7호 입주자를 모집하고 있다.

소행주는 공동주택 전문 시행사가 입주자를 모집해 분양하는 공동주택 브랜드다. 이 또한 같이 모여 살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에서 비롯했다. 땅을 마련해 사전에 모집한 입주자들의 집을 짓는 방식이다. 땅 중엔 서울시가 땅을 임대한 곳도 있다.

소행주는 소형 면적부터 대형까지 다양하다. 시행사가 사전 설명하고 모집한다. 수요자가 필요한 전용면적을 얘기하면 그에 맞춰 설계하고 시공하며, 수요자는 그만큼의 돈을 낸다. 호당 9~11가구로 다양하다.

모든 소행주에는 공동공간이 있다. 공동공간은 말 그대로 입주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이다. 같이 밥도 해먹고, 어울리는 곳이다.

소행주와 더불어 ‘함께주택’도 눈길을 끈다. 최근에 20~30대 비혼가구가 증가하자 성미산마을은 동네 한 주택을 여럿이 살 수 있는 주택으로 개조했다. 10가구 정도 되며, 각자 방(4평 정도)을 제외한 주방과 거실, 세탁소, 세면장 등은 공동으로 사용한다.

성미산마을도 젠트리피케이션이 과제다. 마을의 사랑방 같은 역할을 했던 마을카페가 임차료 상승을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기도 했다. 성미산마을은 성미산마을회관을 시민들의 공동자산으로 만들기 위해 서울시와 협의 중이다.

※이 공동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