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수연 문학평론가, 인하대 교수

류수연 문학평론가, 인하대 교수

2018년 10월, 심신미약에 따른 감경을 반대하는 국민청원이 뜨겁다. 청원 하루 만에 20만 명을 넘기더니, 일주일도 안 되어 10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국민적 분노를 이끈 것은, PC방 아르바이트생을 잔혹하게 살해한 가해자가 법원에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했다는 기사였다.

그 동안 음주나 정신질환 치료 이력이 강력범죄에 대한 일종의 면죄부처럼 이용된 데 대한 반감이, 이제 그 문구 자체를 양형기준에서 삭제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모인 것이다.

2017년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의 주범이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소년법을 적용받아 징역 20년을 구형받았을 때, 소년법 폐지에 대한 국민청원이 뜨거웠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연이은 국민청원의 본질은 범죄자에 대한 감정적 분노만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모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의 폭발임을 인지해야 한다.

일차적으로는 현행 형법체제가 날로 흉포해지는 강력범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불신이다. 심신미약에 따른 감경이란, 범죄 당시 가해자의 책임능력을 따져 불가항력의 요소가 있었는지의 여부를 처벌에 고려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불가항력’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 법망을 피하는 꼼수로 악용되어 왔다는 점이다. 실제로 국민적 관심을 이끈 많은 사건에서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이 약화된 경우는 수없이 많다.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이나 강남역 살인사건의 범인은 각각 음주와 조현병을 이유로 감경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끔찍한 범죄자를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납득할 수 없는 처벌이 계속되니 국민들의 불신은 커졌다. 그리고 불신은 언론의 편향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졌다. 이번 청원을 이끈 PC방 살인사건의 예만 들어도 명징하다.

피해자를 잔혹하게 살해한 범인 김성수는 현행범으로 붙잡혔다. 그럼에도 사건 보도 초기, 특정된 것은 오히려 피해자와 피해 장소였다. 대부분의 기사들이 가해자의 진술만을 헤드라인으로 뽑아, 마치 피해자가 범죄의 원인을 제공한 듯한 오인마저 야기했다.

이러한 언론의 보도태도는 비단 이번 사건뿐만이 아니다. 강력범죄의 피해자들은 사망이나 중태로 인해 사건에 대해 직접 진술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가해자의 진술에 의존하는 기사들이 난무한다. 사건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언론의 노력 부재로 인해, 피해자가 폭력적인 범죄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식의 2차 피해를 받는 일도 부지기수다.

따라서 이번 국민청원의 본질이 호도돼서는 안 된다. 그것은 실제 심신미약에 해당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최소한의 관용을 거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악용을 막아내고자 하는 문제제기이다. 범죄에 대한 관용이 남용되면 그것은 관용이 아니라, 방관과 방임이 된다.

강력범죄 솜방망이 처벌을 막아낼 법 제정에는 늘 게으른 국회의 태만과 구시대적 판례에만 의존하는 법원의 무사안일주의는 분노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진실에 다가가는 노력마저 놓아버린 언론의 특종경쟁이 국민적 분노를 가중시키는 또 다른 원인임을 기억해야 한다.

불과 일주일, 100만명이 넘는 사람이 청원에 동참했다. 오랜 시간 반복된 모순에 대한 분노가 그만큼 큰 것이다. 이것이 사회적 합의와 해결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올바른 비판과 논쟁이 절실하다. 따라서 이제라도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기를 엄정히 요구한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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