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권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 / 인천평화복지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

이충권 초빙교수

세일즈맨ㆍ카우보이ㆍ화가ㆍ음악가ㆍ목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던 로버트 풀검은 1988년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All I Really Need to Know I Learned in Kindergarten)’란 책을 내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저자는 이 책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나는 유치원에서 배웠다.(중략) 황금률과 사랑과 기본적인 위생, 그리고 환경과 정치와 평등과 건강한 삶까지’라고 적었다.

그만큼 유치원은 인간의 기본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으로서, 유아교육이 작게는 한 사람의 인생에, 크게는 이 사회에 얼마나 중요하고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비단 아동ㆍ청소년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일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를 분노로 들끓게 하는 비리 사립유치원 사태를 보면서 ‘이러한 유아교육의 목적성과 중요성이 어디로 사라졌는가’라는 생각과 함께 깊은 한숨을 쉴 수밖에 없다. 어디서부터 문제일까. 지금 가장 크게 부각되고 있는 이슈는 정부의 누리과정 지원금이 허술한 관리 감독 체계 하에서 일부 사립유치원의 부정축재 수단으로 유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비리 근절 대책으로 비리 유치원 실명 공개, 지원금을 보조금으로 명목 변경, 국가관리 회계 시스템 이용 의무화를 통한 재무·회계의 투명성 강화, 제각각인 감사기준 통일 등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물론 현재 드러난 문제에 대한 즉각적 대응 또는 해결책들로서 이러한 사회적 감시망 구축이 매우 시급히 이뤄져야 할 대책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다만 보다 본질적으로 왜 이러한 문제들이 야기됐는지 즉,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유럽을 비롯한 여러 복지국가들이 유아를 위한 체계적인 공보ㆍ교육정책을 통해 서비스 확대를 꾀한 반면, 한국의 유아 보ㆍ교육서비스는 민간시설에 의존해 빠른 성장을 이뤄왔다. 즉, 지금까지 거의 모든 정권에서 국공립 유아 보ㆍ교육시설의 설립, 운영상 발생하는 재정 부담 대신 민간시설 설립ㆍ운영을 지원함으로써 유아 보·교육 수요에 대처해왔던 것이다.

결국 민간 유아 보ㆍ교육시설이 보·교육의 공공재적 성격은 유지함과 동시에 영리성을 추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 보조금·지원금에 의존하면서 그밖의 활동비 등을 통해 추가 수익을 얻는 방식으로 운영돼온 것이다. 여기에 누리과정 예산 지원금 확대는 유아교육의 목적성은 소홀히 한 채 사적 이익에 집중하는 일부 사립유치원장들에게는 ‘황금알’처럼 여겨졌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일까? 여러 해법들이 제시될 수 있겠지만, 결국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대안은 대다수의 학부모들이 원하는 바처럼 민간 보ㆍ교육시설의 공공성과 책무성을 강화하고, 국공립 보ㆍ교육시설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공공서비스를 확충하는 것이다.

또한, 국공립 시설만이 유아 보·교육 서비스의 만병통치약은 아니기 때문에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함께 시설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현재 민간시설 중심의 공급구조와 비용 중심의 정부보조·지원 구조의 보육체계를 일시에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또한, 국공립 시설 확대와 운영에 따른 재정 부담을 어떻게 대처하고 해결해갈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땐 이미 너무 늦었다’는 시쳇말처럼, 지금의 일부 사립 유치원 비리 문제가 보ㆍ교육서비스의 아픈 현실임에는 분명하지만, 더 늦기 전에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다양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새로운 보ㆍ교육의 패러다임을 모색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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