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현동 참사 19주기 “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인현동 참사 19주기 “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 김강현 기자
  • 승인 2018.10.2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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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참사에 대한 내용 알리고, 추모제 할 수 있는 조례 제정돼야”
인천학생문화회관에 있는 인현동 참사 위령비.
인천학생문화회관에 있는 인현동 참사 위령비.

잊으려해도 잊혀지지 않는 19년 전 사고

“잊어버리려고 해도 안 돼요. 친구들도 나를 생각해서 이제 그만 잊으라고 하는데, 항상 마음에 있어요. 계속 생각나요”

지난 1999년 10월 30일. 인천 중구 인현동 화재사고로 당시 고등학교 1학년 딸을 보낸 아버지의 말이다. 57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70여명의 부상자를 낸 인현동 화재가 오는 30일로 19주기를 맞는다.

19년 전 10월 30일 오후 6시 55분 인현동 지하1층, 지상 4층 상가건물 지하에서 발생한 불은 불과 35분 만에 130여명의 사상자를 낸 대형 참사로 번졌다. 당시 화재가 발생한 지하에는 학교 축제시기를 맞아 인근 중ㆍ고등학생들이 가득했다.

화재는 지하 내부 공사장에서 시작됐다. 당시 내부 공사장에는 실내 페인트작업 후 남은 시너 등 인화성 물질이 널려있었고, 여기에 깨진 전구에서 튄 불씨가 옮겨 붙어 화재로 번졌다. 건물의 내부 구조물은 스티로폼과 석고 등 인화성 유독물질들이어서 연기와 불은 계단을 타고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학생들이 대피하려 했지만 건축법상 별도의 비상계단이 필요하지 않았던 해당 건물에는 폭 1.2m 남짓한 출입구가 전부였고, 불법영업을 숨기기 위해 유리창 등도 모두 막혀있는 상태라 신속하게 대피하지 못했다.

천장에서 물을 뿜어 초기에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스프링클러는 지하 공사 과정에 방해가 된다며 모두 제거돼있었고, 소화기도 제대로 비치돼 있지 않았다.

해당 호프집은 이미 무허가ㆍ불법으로 영업소 폐쇄 명령을 받은 상태였지만 영업을 계속했고, 이를 숨기기 위해 하나뿐인 출입문을 걸어 잠그고 영업을 하는 바람에 대피가 늦었다는 생존자들의 증언도 잇따랐다. 뿐만 아니라 해당 호프집의 불법 영업 과정에서 경찰과 공무원 등이 연루 된 정황도 포착됐다. 관련 공무원과 경찰 등은 이런 상황을 눈감아 주며 방치했다.

불난 호프집 불법 영업, 경찰과 공무원이 눈감아 줘
 

1999년 10월 30일 인현동 화재사고의 모습.(KBS 뉴스 갈무리 사진)
1999년 10월 30일 인현동 화재사고의 모습.(KBS 뉴스 갈무리 사진)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해당 상가의 주인인 정 아무개씨는 유흥업소 9개를 운영하며 매달 수백에서 수천만원을 관련 공무원들에게 상납하며 불법 운영을 자행해왔다. 때문에 안전사고에 대한 대책이 미흡했으며 사고 이후 조치도 소홀했다.

청소년이 호프집에 있었다는 사실 만으로 그들의 죽음은 손가락질을 받는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청소년들이 줄지어 앉아 술에 취해 담배를 피고 있다’며 인현동의 분위기를 전하는 기사도 많고, ‘화재참사 인현동 청소년상대 술 판매 여전’, ‘술취한 교육이 빚은 참사’ 등의 논조가 주를 이룬다.

안전불감증과 민관 유착 등 부정비리, 안전관리 미흡 등 구조적인 문제로 일어난 참사는 ‘아이들이 술집에 있어서 죽었다’는 식으로 흘러갔고, 때문에 대책 또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나왔다.

당시 유병세 인천시교육감은 참사의 원인을 “청소년들의 문화공간 부족으로 빚어진 것”이라며 건전한 학교 축제 문화, 상담활동 강화, 기본생활 질서교육 등을 대책으로 내놓기도 했다.

정확한 사고원인 진단하지 못한 채 19년 지나
 

1999년 10월 30일 인현동 화재사고 현장의 모습.(KBS 뉴스 갈무리 사진)
1999년 10월 30일 인현동 화재사고 현장의 모습.(KBS 뉴스 갈무리 사진)

이처럼 엉뚱한 방향으로 정확한 사고원인 진단을 하지 못한 인현동 참사 이후 19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유가족들은 그 때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현재를 살고 있다.

“직장 다녀와서 집에서 저녁 먹고 있는데, 고향집에서 전화가 왔어요. TV틀어보라고, 인천에 불이 났다는 데 별일 없냐고. 깜짝 놀라서 딸래미한테 전화를 했더니 안 받아요. 그때부터 가족들이랑 인천에 전 병원을 샅샅이 뒤지고 해메다가 10시 40분쯤에 인천시립병원에 있는걸 확인했어요. 그 다음부터는 뭐…말도 못해요”

인천화재학생참사유족회의 이 아무개(70)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19년이 지났지만 시간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부모들도 마찬가지였죠. 병원 영안실에 자리가 없어서 바닥에 애들 시신을 내려놓고 있기도 했어요. 그 다음부터는 대통령이랑 정당에 찾아가서 대책 세우라고 얘기하러 다녔는데, 앞에서는 다 알아서 해주겠다고 하고는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고 말을 싹 바꾸더라고요. 우리 가족 중에 힘 있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그렇게 까지는 안 했을 거예요. 그때 우린 누구를 찾아가야 하는지도 몰랐으니까…”

자식을 잃은 슬픔과 억울함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는 지, 인터뷰 도중 이 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시간이 좀 지나니 주변에서 손가락질을 참 많이 받았어요, 호프집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가 피해자라 그러면 욕하면서 이제 그만 잊고 살라고 그래요. 가족들 내에서도 이런저런 일이 많아서 참 힘들었습니다”

이 씨는 인터뷰에도 본인과 딸의 실명은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손가락질 받는다는 이유였다. 참사로 딸을 잃은 아버지가 ‘청소년이 술집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로 지탄의 대상이 된 것이다. 유가족들의 연대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버티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도 몇몇 가족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요. 나는 칠십이 넘었고, 다른 사람들도 나이를 먹어서 만나면 소주도 한잔 하고 웃으면서 사는 얘기도 하고 합니다. 아이들 얘기는 잘 안하려 해요. 다들 힘든 거 너무 잘 아니까”

사고 이후 당시 유병세 교육감이 말했던 것처럼 ‘청소년의 건전한 문화시설’을 위해 인현동에 학생문화회관이 지어졌다. 가족들의 끈질긴 요구로 위령비도 세워졌다.

”가족들하고 시민단체하고 모여서 추모제를 하는데, 이것도 한번 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서 힘들어요. 내년이 참사 20주기라 가족들이랑 아이들 화장한 팔미도에 좀 가보려고 하는데, 배도 빌리고 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서 부담이 되기도 해요”

기억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도 가족들의 큰 고민거리 중 하나다.

“뉴스나 이런데서 대형 참사 얘기가 나오면 인현동 얘기는 쏙 빠져요. 애들이 호프집에 있었다고 그런 거죠. 사건 이후로 지어진 학생문화회관에서도 이 시설이 왜 생겼는지는 아무데도 설명돼있지 않아요. 가족들이랑 몇몇 시민단체가 모여서 추모행사를 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나이가 많이 먹어서 기력이 떨어지니까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인현동 참사 관련 조례 제정돼야
 

1999년 10월 30일 인현동 화재사고 이후 인현동에 생긴 인천학생문화회관의 모습.
1999년 10월 30일 인현동 화재사고 이후 인현동에 생긴 인천학생문화회관의 모습.

가족들은 인현동 참사에 대한 조례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사 이후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이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례를 만들면 누가 해도 계속 추모제도 하고 교육도 하게 될 테니, 지금보다 더 좋아질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보면 학생문화회관이 왜 지어졌는지도 안 나오고, 거기 오는 학생들도 아무도 몰라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많은 사람들이 이 사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10월 29일 저녁 9시에 인천학생문화회관에 있는 위령비 앞에서 추모제를 진행하는 홍예문문화연구소의 장한섬 공동대표는 “우리(홍예문문화연구소)는 2014년부터 추모제를 하고 있다. 우리가 인천에서 계속 살거면 이런 문제는 더더욱 기억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에서 시작됐다. 이 기억이 단순이 회고하는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안전사회건설과 생명존엄 같은 가치를 함께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선희(정의당ㆍ비례) 인천시의원은 “얼마 전에 시의회 교육위원들과 함께 추모를 하고 왔다. 29일 저녁에 열리는 추모제에도 갈 생각이다. 9월에 진행된 관련 포럼에서 많은 얘기를 나눴고 유가족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함께하고 도움을 드리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