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생 전쟁둥이인 이입분(69)씨는 두레박으로 퍼 올린 우물물부터 프랑스 산 ‘에비앙’ 생수까지 모두 맛본 세대다. 그가 온몸으로 통과한 현대생활사를 물건으로 되짚어보려한다. 이입분씨는 내 엄마다.(기자 말)

또 일이 터졌다. 이번엔 방사성물질 라돈이다. 생리대에서 독성물질이 발견돼 논란이 된 것이 불과 1년 전이다. 당장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해야하는 사람들, 곧 생리주기가 다가오는 이들은 불안한 마음을 누르며 해로운 물질이 ‘아직’ 검출되지 않은 생리대를 마트에서 구입해야 한다.

일회용 생리대가 없던 1960년대 중반에 초경을 한 엄마는 생리대로 무엇을 사용했을지 궁금했다.

“소창이라고 기저귀 만드는 천 있어. 그거 대여섯 개 정도 가지고 빨아가면서 썼지”

소창이라면 지금 내가 사용하는 면생리대와 같은 천이다. 15년 전 생협에서 얇은 천 여러 개를 크기별로 구입해 지금까지 사용해왔다. 일회용 생리대는 뭔가 불편한 것이 내 살에 닿아 있다는 이물감이 계속 느껴지는데, 면생리대는 그런 느낌 없이 아주 편안하고 포근하다. 빨고 삶아야하는 불편함에도 면생리대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다. 다만 생리양이 많은 날엔 가장 넓은 천을 두툼하게 접어야하고 자주 갈아줘야한다. 방수가 전혀 되지 않아 샐 수 있으니 말이다. 그 시절에 소창 대여섯 개로 그게 가능했을까?

“요즘이랑 많이 달랐어. 그땐 지금처럼 달라붙는 속옷이 아니라 고쟁이라는 반바지 같은 걸 입었어. 그래서 아기한테 천기저귀를 채우듯이 생리대를 찰 때 고무줄을 이용해야했어. 고무줄이 없으면 천으로 된 끈이라도 묶었지. 천을 두껍게 접어서 새거나 하지는 않았어. 그때만 해도 한복 치마를 많이 입어서 티가 날 일도 없었고”

성교육이란 말도 없었을 당시, 엄마는 첫 생리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리 놀라진 않았어. 네 할머니가 하는 걸 봐왔거든. 그땐 밤에 요강을 썼잖아. 아침마다 요강을 비우고 씻어서 엎어놓는데, 어쩔 땐 그 안에 뭘 넣어 놓았다가 저녁에 또 한 번 요강을 씻으시더라고. 그런 날엔 잘 안 보이는 곳 빨랫줄에 얼룩이 묻은 얇은 천이 널려 있었지. 그런 걸 오랫동안 보니까 대충 알게 되지”

나도 그 점이 궁금했었다. 여러 식구가 좁은 집에 모여 살던 시절에, 도구도 부족했을 텐데 생리대를 어떻게 빨고 처리했을지 말이다. 뚜껑 있는 요강을 사용했다니, 다 살게 마련인가보다.

“나는 요강 말고 깡통을 주워다 썼지. 그땐 두레박 용 깡통을 사서 썼거든. 버린 깡통을 주워 다가 생리대를 넣고 물에 담가놨다가 빨아서 말려서 쓰고, 생리 끝나면 깡통에다 양잿물 넣고 삶아서 다음 달에 또 쓰고 그랬지. 깡통은 구멍이 잘 났어. 그래서 깡통이 눈에 보이기만 하면 주워서 집에 쟁여놓았지”

“생리대 방수 완벽”이 혐오감과 악감정 일으켜?

생리대 일러스트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최초의 일회용 생리대는 1971년 유한킴벌리에서 나온 코텍스였다. 엄마는 코텍스가 나오자마자 구입해 사용했다.

“처음 나온 생리대는 두꺼웠어. 일하러 다닐 때라 소창을 쓰긴 불편했지. 부피가 커서 여러 개 넣어 다닐 수 없잖아. 일회용 생리대는 편했어. 근데 할머니는 계속 소창을 쓰시더라고”

엄마는 할머니에게 일회용 생리대를 쓰지 않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생리는 쉽게 꺼낼 수 없는 이야기 주제였다. 1975년 세계보건기구의 지원을 받아 ‘월경주기와 실제의 유형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결과가 신문에 보도된 것을 보면, “월경의 생리적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그저 생리적 현상’ ‘있을 나이가 됐으니’ 정도의 부정확한 지식이 많았고, 40세 이상의 부녀자는 ‘월경’ ‘경도’ 그리고 지방에서는 ‘말을 탄다’ ‘붉은 꽃’ ‘그때’ ‘있을 것’ ‘보인다’ ‘몸이 아프다’ 등으로 비유해 표현하지만, 젊은 세대는 영어를 줄여 ‘멘스’ ‘M’으로 말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1975.10.17. 동아일보)

‘생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씩 언급되고 드러나기 시작한 건 일회용 생리대 광고를 통해서였다. 광고 문구는 “그날이 와도 안심하세요” “남편 몰래 아이들 몰래” “말 못할 불편과 괴로움을 떨쳐버리고, 간편하고 안전한 코텍스로 새 출발 하십시오” “밝은 얼굴로 떳떳하게 활동하십시오” “그것만은 누구에게 시킬 수 없는 일” 등이었다. 불안하고 불편하고 가족에게 숨겨야했던 생리에 대한 고민을 일회용 생리대가 해결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왜 생리하는 것을 숨겨야하고 왜 생리혈은 조금이라도 새면 안 되고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이런 질문은 들어갈 틈이 없었다. 이에 더해 “품위 있는 여성” “구라파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타입의 생리대”라는 문구로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는 것이 깨끗하고 세련된 것이라는 느낌을 표현했다. 생리혈은 더러운 것이니 그때그때 처리해야한다는 인식을 바탕에 둔 광고였다. 1976년 한국방송윤리위원회는 ‘시청자에게 혐오감이나 악감정을 줄 우려가 있는’ 광고로 ‘여성 생리대에서 방수가 완벽한’이라는 문구를 지적하며 방송윤리규정에 저촉돼 방송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1976.1.22. 동아일보) ‘생리 혐오’는 우리 모두 공유하고 있는 ‘상식’에 가까웠다.

유한킴벌리의 코텍스는 1975년 말까지 일회용 생리대 수요량의 98.6%를 공급해 사실상 시장을 독점한 상태였다. 여기에 영진약품이 ‘소피아’라는 생리대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생리대) 사용인구가 650만명이나 되는데 비해 이것을 쓸 것으로 보이는 예상 수요량이 아직도 그 4분의 1인 150만개밖에 안 되는 미개척 상태에 있고 연간 수요 증가율 30%의 시장성이 좋다는 계산”으로 생산하게 됐다는 내용이다.(1976.4.3. 경향신문) 일회용 생리대가 나온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 대다수가 사용하는 물건은 아니었다. 1976년 5월 21일, 정부는 약국에서만 판매할 수 있었던 생리대를 의약부외품으로 지정해 일반 상점에서도 판매하게 했다. 1977년에는 유한킴벌리에서 ‘맥시’라는 접착식 생리대를 처음 생산했다.

그런데 여성들이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고 속옷을 빨랫줄에 내다 거는 것이 ‘대담한 개방 풍조’라며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 1977년 8월 11일 <경향신문>에 나온 ‘농촌 새 풍속도 (45) 변화 속 성문화 (14) 대담한 개방풍조’ 기사에는 “깊은 속살을 감싸던 옷가지들을 뭇 시선 속에 공개해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농촌 부인네들도 이제 성 개방의 물결에 조금씩 젖어들고 있는 중일까. (중략)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생리일이면 베 헝겊에 솜을 대서 쓰거나 무명 쪼가리를 몇 번이고 빨아 쓰던 집들이 많았는데 불과 몇 년 사이에 그러한 집을 찾아보기 힘들만큼 바뀌어버렸다는 것”이라며 이를 달라진 성문화라 꼬집었다. 여성 속옷은 남성 속옷과 달리 성적 의미가 담겨있어야 하는 이유라도 있었던 걸까. 아니면 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흡수력 전쟁 속에 발암물질 검출
 

영화 '피의 연대기' 장면 갈무리 사진, 천 생리대의 모습.

1980년대 들어서 일회용 생리대는 흡수력 전쟁이 벌어졌다. 기업들은 생리혈이 흐르지 않게 순간적으로 흡수하는 물질을 개발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신호탄을 쏜 것은 쌍용제지였다. “이 회사는 고분자흡수제(폴리머)가 자체중량 대비 수반을 360배, 혈액은 45배를 각각 흡수하는 기능을 갖고 있어 (중략) 국내에선 고분자흡수제가 공업용으로만 생산돼 기저귀 등에 사용하는 흡수제는 수입해왔는데 쌍용제지는 인체에 해롭지 않은 제품을 화학업체와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1985.7.12. 매일경제)

흡수력이 좋으면 생리대 두께는 얇아지고 그러면 옷을 입어도 티가 덜 난다. 가임기 여성 대부분이 생리하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결코 티를 내어선 안 된다는 압박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1988년 생리대에서 유해 성분 포름알데히드가 들어있어 대책이 시급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포름알데히드는 1군 발암물질로 새집증후군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독성물질이다.

“생리대의 구김을 줄이기 위해 사용되는 수지가공제인 포름알데히드는 냄새가 자극적이고 독성이 있어 (중략) 장시간 노출되면 눈, 코 등이 따가와지는 등 인체에 유해해 외국에서는 그 사용 규제치를 정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규제치가 없는 실정이다”(1988.12.21. 한겨레)

이 기사는 <한겨레>에서만 보도했다. 포름알데히드는 2006년 일부 생리대에서 또 다시 초과 검출돼 큰 논란이 일었다. 생리대는 1971년 의약부외품으로 지정된 이후 당시까지 ‘수거검사’ 기록을 단 한 건도 실시하지 않았다. 또, 미국 FDA는 생리대의 안전에 관해 염소 성분 불검출 등 각종 피부 부작용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데 반해, 국내에서는 ‘의약외품에 관한 기준 및 시험방법’에 따라 포름알데히드, 색소, 형광물질, 산ㆍ알칼리에 관한 규정만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2005.9.29. 경향신문)

이에 생리대 전체 성분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있었지만, 기업들은 기밀사항이라며 공개를 거부했다.

월경페스티벌 개최, 부가세 면제, 생리컵 판매

1999년 9월 10일 고려대학교에서 첫 월경페스티벌이 열렸다. 4개 대학 여학생단체연합에서 주최한 행사였다. 숨기기 급급했던 생리를 주제로 축제를 벌인다는 혁신적 발상이었다. 2002년엔 여성민우회를 중심으로 생필품인 생리대에 붙는 부가가치세를 폐지하라는 운동을 벌였다. 공방 끝에 2004년 4월 1일부터 생리대 부가가치세는 면제됐다.

지난해엔 발암물질 생리대가, 올해 다시 라돈 생리대가 문제가 됐다. 식약처에서 내놓은 대책 중 하나인 생리대 전체 성분 표시제는 형식에 불과할 뿐, 우리는 여전히 생리대에 어떤 성분이 들어가는지 알 수 없다. 대안 생리대로 불리는 생리컵은 올해에야 겨우 국내 제조ㆍ판매가 가능해졌다.

일회용 생리대가 나온 지 50년이 다 돼가고 생리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지만, 우리는 이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늘에 숨어야했던 생리는 얼마나 햇빛 안으로 걸어 나왔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생리혐오는 여성혐오의 또 다른 이름이다. 혐오의 시대를 마감하지 않고선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제 아무리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생리대가 나오더라도, 수백 종의 대안 생리대가 나오더라도 말이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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