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100명이 각각 만든 김치찌개에 미식가들이 맛의 순위를 매긴다면, 그리고 그것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주어진다면, 아마 나는 중위권으로 올라갈 것도 없이 90등 정도에서부터 감탄사를 남발할지 모른다. 나는 웬만해선 음식 맛에 불만이 없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의 친언니와 동생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선 낮은 수준의 맛에도 기꺼워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인은 엄마에게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의 요리 솜씨다. 엄마는 아주 성실하게 우리의 삼시세끼를 차렸으나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엄마가 가끔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던 계란말이를 나는 ‘계란젓갈’이라 불렀다. 너무 짜서 아주 조금씩 베어 먹어야했기 때문이다.

여럿이 도시락을 먹을 때면 가장 먼저 젓가락이 향할 정도로 인기 만점인 계란말이가 내 반찬통에선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굴욕을 당했다. “짭짤해야 반찬이 되지, 밍밍하면 밥이 안 넘어가” 엄마의 주장은 한결같았다.

ⓒ심혜진.

흔한 것이 콩나물국과 미역국이라지만 사실 이 두 가지 국은 의외로 맛을 내기가 쉽지 않다. 내가 터득한 요리법에 의하면, 콩나물국엔 잘 우려낸 육수가 필요하고 미역국엔 고기나 조개를 넣거나 액젓과 국간장의 비율을 잘 맞춰야 맛이 난다. 어린 시절 우리 집 밥상에 일주일이 멀다하고 올라온 콩나물국에는 멸치 육수와 다진 마늘이 들어갔고, 미역국엔 무엇을 넣었는지 요리를 한 엄마도, 먹기만 한 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어쩌면 미역과 약간의 마늘, 소금 말고 다른 건 들어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엄했던 밥상교육의 일환으로 내게 주어진 한 그릇의 밥과 국은 싹 비워야했기에, 맛이 있든 없든 군말 없이 먹었다. 그리고 그 맛에 길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밥상이 달라졌다. 엄마 손이 금 손이라도 된 건지 갑자기 모든 국이 맛있어졌다. 비결은 ‘고향의 맛’ 조미료였다. 나는 처음으로 콩나물국 두 그릇을 비웠다. 밍밍하고 비릿했던 미역국과 조미료의 만남은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미역국이 밥상에 오른 날이면 나는 콧노래를 불렀다. 엄마는 거의 모든 음식에 그 조미료를 넣었다. 그러니 내게 맛있는 음식이란 ‘조미료를 넣은 음식’일 수밖에 없다. 밖에서 파는 음식은 정말이지 죄다 맛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의 음식이 맛이 없었던 건 이유가 있다. 우선 음식에 고춧가루나 참기름, 깨소금 같은 양념을 충분히 넣을 수 없었다. 농산물 수입을 개방하기 전, 양념류는 값이 비쌌다. 꼭 넣어야할 곳에만 최소한으로 넣었다. 두 번째로 어릴 때부터 엄마의 소망은 한 가지, 한 끼라도 배불리 먹는 것이었다. 감자는 그저 쪄먹으면 그만이지 맛있게 요리한다는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배가 고팠다. 세 번째로 엄마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 엄마에게 요리란, 재료를 먹을 수 있게 만드는 과정에 불과했다. 세상의 다양한 맛을 경험해보지 못한 이의 상상력이란 한계가 있을 수밖에.

단순한 조리과정을 거친, 양념이 거의 안 된 음식을 먹고 자라서인지 나는 조미료를 넣은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재료 본연의 맛이 나는 담백한 음식도 좋아하는, 양극단의 입맛을 두루 갖췄다. 두부를 뜨거운 물에 데쳐 젓가락으로 뚝뚝 떼어 먹는 걸 좋아하면서도 매콤한 두부 두루치기에 요란하게 밥을 비벼먹을 때면 신이 난다. 어느 식당에 가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반드시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나는 새로운 음식이 두렵지 않고, 별 것 아닌 것에서 좋아하는 맛을 발견할 수 있어 행복하다.

“엄마 요리솜씨 덕분에 내가 식성이 참 좋아” 이렇게 우스갯소리를 하면 엄마는 “나도 내가 한 게 참 맛있더라고”하며 당당하게 답한다. “엄마, 그건 아니고~”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이다. 맛 칼럼니스트나 미식가들은 아마 나와 엄마가 느끼는 이 행복을 죽었다 깨도 모를 것이다. 요리 못하는 엄마를 만나 얼마나 다행인지!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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