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미쓰백 (Miss Baek)

이지원 감독│2018년 개봉

십대시절 성폭력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다 전과자가 된 이후 거친 삶을 살고 있는 여자가 있다. 이름은 백상아. 이름보다는 미쓰백(한지민)으로 불린다. 십대 때 그 사건으로 인연을 맺은 형사 장섭(이희준)은 어떻게든 미쓰백을 챙기려하지만, 미쓰백은 장섭의 선의를 밀어낸다. 몸 쓰는 노동을 마다않고 악착같이 살면서도 삶에 별다른 미련이 없어 보이는 텅 빈 표정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미쓰백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있어 보인다.

어느 날 장섭으로부터 어린 시절 자신을 학대한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원망과 회한이 뒤섞인 복잡한 심경에 사로잡힌 미쓰백은 마치 운명처럼, 추운 골목길에서 학대의 흔적이 여실한 어린아이 지은(김시아)과 마주친다. 상처 입은 동물처럼 떨고 있는 지은에게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발견한 미쓰백은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을 것 같던 굳은 표정을 풀고 지은의 손을 잡는다.

이지원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미쓰백’은 최근에야 사회문제로 주목받기 시작한 아동학대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학대의 피해경험이 있는 어른(미쓰백)과 학대 피해자인 어린아이(지은)가 공통의 피해 경험으로 동지적 연대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올해 한국에서 리메이크돼 화제를 불러온 바 있는 일본 드라마 ‘마더’와 많이 닮았다. 개봉 전 표절 논란이 있었다는 게 충분히 이해될 정도로 닮은 꼴 영화다.

논란은 미뤄두고 영화만 본다면 아동학대 문제를 피상적으로 다루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미덕이 있는 영화다. ‘미쓰백’은 단지 어린아이가 어른으로부터 학대당한다는 표피적 설정에 머무르지 않고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공동체의 파괴와 경제적 빈곤과 사회안전망의 부재,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법 집행의 한계, 계급적 차이에 따른 불평등, 전과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등, 아동학대가 일어나고 방치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개연성을 충분히 보여준다. 선악구도가 분명한 다소 단순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인물이 가진 나름의 사정이 설득력 있게 다뤄진다.

더불어 학대당하는 어린아이를 성인여성이 일방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독립적 존재들이 서로 상처를 보듬어주며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런 류의 서사가 빠지기 쉬운 상투적 모성애의 함정을 피해가는 영리한 영화이기도 하다. 사실 모성신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야말로 아동학대를 유지시키는 가장 밑바탕이 아니던가. 아버지로부터 학대당하던 지은이 경찰서를 찾아갔을 때 경찰은 가해자인 부모에게 ‘보호’를 당부하며 집으로 돌려보낸다. 어린 미쓰백을 죽기 직전까지 때린 사람은 다름 아닌 남편이 죽은 후 우울증으로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던 어머니였다.

아동학대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음에도 지금까지 가시화되지 못했던 것은 개인의 인권 문제가 아닌 가족 내 훈육의 문제로, 단지 혈연이라는 이유로 사회가 개입할 수 없는 범주인 것처럼 치부돼왔기 때문이다. 영화는 꽤 야무지고 똑똑한 지은이마저도 학대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이유가 여전히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는 법제도 때문임을 여실히 드러내며 혈연 밖의 연대, 즉 사회적 연대와 보호의 필요성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미 드라마 ‘마더’에서 훌륭히 다뤘던 내용이었어도, 구태의연한 배경음악이 귀에 거슬리더라도, 앞으로도 이런 이야기는 더 많이 나와야 한다. 더불어 약한 존재를 구원하는 액션 스릴러의 히로인이 되기보다는 애처롭고 안쓰러워서 오히려 더욱 악에 받친 연기를 보여준 한지민의 새로운 모습은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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