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간 15돌 기획 | 강화ㆍ개성, 고려 도읍지로서 역사ㆍ문화 공통점
강화여고 앞장섰지만, 승인 안나 올해 추진 보류
인천시ㆍ교육청, 구체적으로 준비 중인 것 없어

지난 4월 판문점선언과 6월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에 평화바람이 불자, 인천시는 남북 교류 사업의 하나로 ‘강화-개성 교차 수학여행’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강화-개성 교차 수학여행’은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의 공약 사항이기도 하다.

9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평양선언으로 평화 분위기가 한층 더 무르익자, ‘강화-개성 교차 수학여행’ 시행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인천시나 시교육청 모두 구체적인 진척 사항은 없고, 올해 개성으로 수학여행을 가기위해 재작년부터 준비했던 강화여자고등학교의 계획은 통일부의 승인을 받지 못해 보류됐다.

강화-개성 교차 수학여행, 온전한 고려 역사 배우기
 

지난 5월 강화 선원사지와 홍릉 등을 방문해 고려 유적 땅 밟기 프로그램을 진행한 강화여고 학생들.(제공·강화여고)

강화-개성 교차 수학여행은 강화군의 학생들이 개성으로 수학여행을 가고, 개성의 학생들이 강화로 수학여행을 오는 것이다. 강화와 개성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있지만, 고려시대 도읍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어, 교차 수학여행은 의미가 크다.

고려가 존재한 474년간 개성은 도읍지로서 역할을 했는데, 고려는 1231년 몽골이 침입한 후 강화로 도읍지를 옮겼다. 전쟁을 벌인 39년간(강도 시기) 강화가 도읍지 역할을 한 것이다.

개성에는 만월대, 첨성대, 성벽, 남대문, 고려 성균관, 숭양서원, 선죽교, 태조 현릉(왕건릉) 등 12개에 이르는 고려시대 역사문화유적이 존재하며, 2013년에 개성역사유적지구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강화에도 고려 3성 체계를 보여주는 강화산성ㆍ중성ㆍ외성을 비롯해 강화고려궁지, 선원사지, 고종의 묘 홍릉ㆍ가릉 등 고려시대 왕릉이 존재한다.

고려의 역사유물을 간직한 두 도시의 학생들이 교차 수학여행으로 유적지를 둘러보며 온전한 고려의 역사를 배울 수 있다.

특히, 올해는 고려가 건국된 지 1100년이 된 해로 강화-개성 교차 수학여행을 시작할 적기였다. 인천시는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아 고려의 역사성을 재발견하고 문화유산의 우수성을 홍보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계획했다.

지난 7월에는 강화에서 고려역사문화제를 개최했고, ‘고려 건국과 경기 성립의 의의’를 주제로 한 국내 학술회의도 열었다. 11월에는 ‘고려 왕조의 다양성과 통합, 포용과 21세기 코리아 미래 유산’이라는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재작년부터 준비해온 강화여고의 계획 불발, 제주도로
 

지난 5월 강화 선원사지와 홍릉 등을 방문해 고려 유적 땅 밟기 프로그램을 진행한 강화여고 학생들.(제공·강화여고)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알고 있는 강화여고는 2016년부터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해왔다. 강화에 자리 잡고 있는 학교이기에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아 고려의 역사를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다. 특히, 고려 왕조는 한반도 역사상 가장 진취적이고 개방적이며, 다양한 사상이 존재하는 다원사회였다. 이는 새로운 통합을 추구해야할 지금의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가 커, 학생들에게도 의미가 클 것이라고 판단했다.

강화여고는 지난 5월부터 강화의 고려 왕릉과 성곽길 등을 탐방하는 ‘고려 유적 땅 밟기 프로그램’, ‘강도시기 고려 문화 바로알기 도전 골든벨 행사’, 고려의 문화와 강화의 역사 등을 주제로 한 동아리별 탐구활동과 그 결과를 발표하는 학술제, ‘고려사의 재발견’의 저자 박종기 박사와 학술토론 등을 진행했다.

학술제에선 고려시대 의식주 생활과 의학, 형벌제도와 같은 생활사, 고려시대 왕 34명의 심리 분석, 장경판전건물의 구조 연구, 고려의 민족 재통일 고찰을 통한 남북통일방안 연구 등, 다양한 결과물이 전시ㆍ발표됐다.

역사ㆍ문학ㆍ연극동아리 학생들이 연합해 발표한 ‘고려시대 문장가 이규보의 삶을 재조명’한 연극과 고려시대 무역항인 벽란도를 재현한 플리마켓(벼룩시장)은 눈길을 끌었다. 학생들은 플리마켓 수익금을 모두 통일부의 남북협력기금으로 기부하기도 했다.

강화여고는 이번 행사를 준비하며 2학기에 개성의 고려 역사 유적지를 방문하는 수학여행도 함께 기획했다. 개성지역 고등학생들을 만나 고려의 역사ㆍ문화와 관련한 토론을 벌이는 학술세미나와 체육ㆍ문화ㆍ예술교류 활동도 계획에 담았다.

이동 방법으론 강화 교동에서 배를 타고 해주를 거쳐 개성으로 들어가거나 판문점을 통해 개성으로 육로를 이용해가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강화여고는 2016년부터 통일부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남북 관계가 냉랭했던 시기에도, 남북관계가 좋아진 후에도 승인은 나지 않았다. 인천시와 인천시교육청, 남북 교류 민간단체의 문도 두드렸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결국 10월 중순으로 계획했던 개성 수학여행은 제주도 수학여행이 됐다.

이연자 강화여고 역사 교사는 “학생들이 민족의 통합을 이끌어낸 고려 역사의 의미를 되새김으로써 다가올 평화와 통일 시대를 준비할 수 있는 역사의식을 기르고, 지역에 대한 관심과 자긍심도 가지게 됐다”며 “이번 교육 프로그램의 마무리라고 할 수 있는 개성 수학여행과 남북 학생들의 학술세미나를 계획대로 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인천시교육청과 인천시 추진 더뎌 ... 강화여고, “겨울방학에 일부 학생이라도”

1920년대 개성박물관으로 수학여행을 간 송도고등보통학교(개성 소재, 현 송도고) 학생들.(제공·송도고)

경기도는 경의선 육로를 통한 개성 수학여행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지난 8월 중순 밝혔다. 경기도가 구상하는 방안은 파주 민간인출입통제선, 북쪽에 있는 반환 미군기지 ‘캠프 그리브스’, 임진각 평화누리, 영어마을, 판문점 등 파주지역 안보관광지와 연계하는 것이다. 숙박은 파주지역에서 하면서 개성을 다녀오는 것으로, 경기도는 정부와 협의도 마쳤다고 밝혔다.

광주시교육청은 지난 4월 개성과 금강산 등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올 수 있게 해달라는 건의서를 청와대에 제출했고, 11월 3일 학생의 날을 맞아 항일학생운동과 관련한 회의를 열자는 제안을 북측에 하기도 했다.

인천은 강화와 개성이 고려시대 도읍지 역할을 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1940년대 개성공립중학교 학생들이 강화로 수학여행을 왔던 언론 보도와 송도고교가 개성에 있었던 1933년에 인천으로 수학여행을 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강화여고가 2년 전부터 추진해온 데다 여러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인천시와 인천시교육청은 추진 선언이나 공약만 발표했을 뿐, 구체적으로 준비 중인 것은 없다.

시 관계자는 “내년에 예산 2억원을 투입해 강화와 개성의 중학생 40명이 교차 방문하는 방안을 계획 중이지만, 예산 확정이 안 됐다”며 “구체적 추진 사항은 없다”고 전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아직 계획이 잡힌 것은 없고 구상만 한 단계”라며 “교육청이 수학여행을 계획하고 학교가 따르게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판단하기에, 학교에서 개성 수학여행을 추진한다면 도움을 주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종원 강화여고 교장은 “지난 8월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다 어쩔 수 없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게 됐다”며 “재작년부터 개성 수학여행을 준비해왔는데 학교만의 힘으로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인천은 강화와 서해 5도 등이 북한과 접경지역이라 이런 교류 사업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할 필요가 있는 곳이다”라며 “올해 수학여행은 어렵게 됐으니, 겨울방학에 일부 학생만이라도 개성을 방문하고 내년에는 개성 학생들이 강화를 방문하는 것부터 출발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1920년대 선죽교로 수학여행을 간 송도고등보통학교(개성 소재, 현 송도고) 학생들.(제공·송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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