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로 된 무지개

도진순 지음|창비 펴냄|2017.11.30.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인기가 대단하다. 대한제국을 시대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는 나름 애쓴 고증, 배우들의 연기력, 아름다운 화면 같은 매력적 요소를 두루 갖춘 데다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나간지라 대중이 환호하는 것일 테다.

그런데 나는 이 드라마가 그동안 은폐됐던 항일운동을 적극적으로 내세운 공을 더 높이 친다. 전쟁 한 번 하지 못하고 국권을 일본에 넘긴 지배층은 역사의 단죄를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국권을 상실할 때 일어났던 의병 활동이나 일제강점기에 지속됐던 독립운동이 과소평가돼서는 안 된다. 성공한 드라마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을 감안할 적에, 빼앗기지 않으려 벌였던 고투나, 되찾으려는 집요한 실천을 재인식하는 기회가 됐으리라 믿는다.

이육사 하면 교과서에 실린 시로만 기억하는 이가 많다. 이육사의 개인사는 독립운동을 했고, 일제에 잡혀 옥사한 정도로만 알 테다. 개인의 잘못은 없다. 우리 문학교육이 그 정도로만 이뤄진 탓이니까. 하지만 이제 남 탓 할 수 없게 됐다. 이육사의 삶과 시 세계를 종합적으로 살펴본 도진순의 ‘강철로 된 무지개’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육사의 삶과 문학을 난(蘭)과 검(劍)으로 요약한다. “난이 고전의 세계와 결합된 그윽한 예술성의 상징이라면, 검은 그가 시에 싣고자 했던 의열투쟁의 혁명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육사는 진성 이씨로 퇴계 집안 출신이다. 고리타분한 사대부 집안임을 강조하려고 내세운 족보가 아니다. 퇴계의 11대 손인 향산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의병장으로 활약한 바, 일본군이 퇴계 종택에 불을 질러 보복할 정도로 항일운동의 상징이었다. 육사가 여섯 살 되던 해인 1910년에는 경술국치가 있었고, 향산이 단식 끝에 자정순국했다. 이 죽음은 안동 일대의 항일운동에 불을 붙였다. ‘미스터 선샤인’에 나오듯 무력하게만 나라를 빼앗긴 것이 아니라, 되찾으려는 치열한 운동이 광범하게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향산은 육사의 할아버지 이중직의 숙부다.

이중직 또한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는 진성 이씨 가문뿐만 아니라 인근 유림들한테 두터운 신망을 얻었고, 경술국치 때에는 문서를 불태워 하인들을 해방했다. 더불어 이중직은 손자들의 교육에 매진했다. “손자들에게 때로는 장원을 뽑는 과거시험 형식으로, 때로는 좋은 인장(印章) 재료를 상품으로 내놓으면서, 사서삼경 등 경전은 물론이고 한시와 서예까지 가르쳤다” 육사의 삶과 문학을 난과 검으로 상징화할 수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한쪽으로는 깊은 동양적 교양의식이 흐르고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대쪽 같은 저항정신이 흐르고 있던 셈이다.

‘강철로 된 무지개’는 조선의용대에서 활약한 육사의 혁명정신과 함께 가학(家學)으로 배운 동양적 교양이 그의 시세계에 어떻게 반영됐는지를 자세히 살핀다. 이를 지은이는 “한자의 관용적 표현과 작품 창작 당시 여러 상황을 고려”해 그의 시세계를 분석해본다고 말했다. 역사학자다운 치밀한 고증과 당대 상황을 재구성해 얻은 성과는 적지 않다. ‘청포도’에서 청포도는 아직 익지 않은 풋포도였다. 그리고 ‘청포도’는 “목숨을 걸고 바다를 밀항하는, 지치고 쫓기는 혁명가들을 맞이하는 시”다. 여기서 말하는 혁명가는 의용대 활동을 같이한 석정 윤세주라 짐작한다. ‘광야’는 두보의 ‘영회고적 3’과 비교해 볼 적에 “눈물과 피의 현실에 맞서면서 이를 기어코 변혁하려했던 육사의 진정성”을 돋보인다고 평가한다.

도진순의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는 아니다. 시세계를 지나치게 체험영역 또는 영향관계에서만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그럼에도 한 시인의 탄생에 밑거름이 된 다양한 요소를 찾아낸 지적 성실성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그리고 이 책 덕에 끝까지 싸우다 죽은, 그래서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를 꿈꾼 선배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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