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살아남은 아이(Last Child)

신동석 감독│2018년 개봉

6개월 전 익사사고로 고등학생 아들 은찬을 잃은 성철(최무성)과 미숙(김여진). 인테리어 업체 사장인 성철은 은찬이 죽음으로 구해낸 친구 기현(성유빈)이 사고 이후 학교를 그만두고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부모 없이 혼자 살고 있는 기현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든 성철은 기현을 자신의 현장에 데리고 다니며 인테리어 기술을 가르친다. 처음에는 자꾸 다가오는 성철이 불편하기만 했던 기현도 성철의 호의에 조금씩 마음을 열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기현 때문에 아들 은찬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미숙은 그런 두 사람의 관계가 싫다. 그러나 미숙 역시 어려운 환경에도 성실히 살려 애쓰고 성철과 자신에게 마치 아들 은찬이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싹싹하게 구는 기현에게 마음이 기울고, 어느새 기현을 아들처럼 대한다.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와 자식의 의로운 죽음으로 목숨을 건진 아이, 이렇게 세 사람은 서로 상처를 치유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 딱 여기까지는 TV 휴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소개될 법한 미담이다.

하지만 은찬의 죽음에 얽힌 기현의 예상치 못한 고백과 다른 친구들의 전혀 다른 증언이 이어지며 가족보다 더 가족 같았던 세 사람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신동석 감독의 첫 번째 장편 극영화 ‘살아남은 아이’는 한 소년의 죽음 이후 살아남은 이들의 상실과 애도, 속죄와 용서라는 오래된 질문을 던진다.

영화 전반부는 성철과 미숙을 중심으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부모의 슬픔과 애도를 그렸다면, 후반부는 죽음의 진실을 두고 벌어지는 균열과 파국을 따라간다. 그러나 영화는 여느 스릴러영화처럼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지도, 여느 신파영화처럼 자식 잃은 부모의 고통을 전시해 관객들의 눈물을 빼지도 않는다.

이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한 사람의 죽음 앞에 선 세 사람의 감정이다. 그것은 사무치는 슬픔이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과를 돌이킬 수 없는 후회다.

세상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억울함이고 돌덩이를 안고 물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죄책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이들은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숙명이다. 은찬의 죽음과 똑같은 사건을 겪지는 않더라도 모든 인간이 죽음과 함께 산다는 점에서 성철과 미숙, 기현이 온몸으로 겪어내는 감정들은 보편의 이야기가 된다.

사건의 스펙터클보다 섬세한 감정 표현이 중요한 영화인만큼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인다. 김여진은 뒤통수로 고통을 연기하고, 최무성은 무표정으로 슬픔을 연기한다. 자식의 죽음이라는 극단적 사건 앞에서 충분히 예상 가능한 처절한 고통의 전시는 없다. 과장 없는 연기는 관객들을 더욱 깊은 슬픔의 심연으로 인도한다.

어린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 위에서 흔들리는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현실감 있게 표현하는 성유빈의 연기는 속죄와 용서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통감하게 한다.

쉽게 원망할 수도 편안히 용서할 수도 없는 상황에 갇혀 버린 성철과 미숙과 기현을 보며 깨닫는다. 슬픔과 애도. 속죄와 용서. 우리가 쉬이 내뱉는 이 말들이 얼마나 수행하기 어려운 일인지를. 설사 해낸다 하더라도 그 과정은 결코 아름답지도 우아하지도 않다는 것을.

슬픔에 대해, 고통에 대해, 죄책감에 대해, 속죄에 대해, 용서에 대해, 이토록 깊이 있게 질문하는 영화를 만난 적이 언제였던가. 젠 체하는 연출 한 톨 없이, 오로지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충실히 드러내는 것만으로 인간 본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우직한 영화.

모처럼 만난 속 깊은 영화에 대한 반가움도 잠시. 영화의 마지막 장면, 세 사람의 버둥거림이 사무친다. 아프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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