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금석 사회연구소 가능한 미래 연구위원

장금석 사회연구소 가능한 미래 연구위원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이 발표 하루 만에 전격 취소됐다. 비핵화에서 충분한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그 이유다. 그러면서 미국은 그 책임을 중국에 돌렸다. 양국의 무역전쟁 과정에서 불만을 가진 중국이 비핵화 과정에 협조적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목표는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불씨를 살려왔다. 북한은 풍계리 핵 시험장을 파괴하고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을 해체하는가 하면 미군 유해를 송환하는 등, 적지 않은 노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미국은 비핵화 시간표를 요구하며 제재는 유지하고 종전 선언은 미루고 있다. 폼페이오의 방북 취소를 기다렸다는 듯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중단했던 한미연합군사훈련 재개를 언급했다. 그러나 이는 억지에 불과하다.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험 유예에 상응하는 조치다. 이미 보상받은 카드다.

애초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체제 보장은 공정한 거래가 아니다. 핵무기와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미래의 핵능력까지 포기하는 것은 핵능력의 무력화를 의미한다. 하지만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수교를 통한 체제 보장은 미국의 의지에 불과하다. 북한이 잃는 것이 훨씬 많은 거래다. 그럼에도 북한이 불공정한 거래에 나선 이유는 경제 활성화를 통해 정상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절박함 때문이다. 능력과 의지가 거래되기 위해서는 상호 신뢰 구축이 전제돼야 한다. 그 출발선에 종전선언이 있다.

2차 남북정상회담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폼페이오의 방북 취소는 문재인 정부에 커다란 숙제를 안겨줬다. 어떤 이는 9월 남북정상회담 무용론을 꺼내기도 한다. 그동안 미국은 남북연락사무소 설치, 남북철도 연결 등 판문점선언의 이행조차도 대북 제재 틀 안에서 추진돼야한다며 남북관계 진전을 가로막아왔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속도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조건에서도 긍정적인 점은 있다. 북한과 미국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졌다는 것이다. 북한은 제재 해제와 종전 선언을 바라고, 미국은 비핵화 시간표를 원한다. 양쪽 요구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양보할 기미는 전혀 없다. 그래서 우리 정부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11월엔 미국 중간선거가 있다. 트럼프는 한반도 비핵화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고 싶어 한다. 성과 없는 대화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일방적인 양보나 굴욕적인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다. 북한도 얻는 것 없이 마냥 밀리는 모습만 보여줄 수는 없다. 더구나 종전 선언은 남북미가 합의한 사항이다. 이런 조건에서 양쪽 모두 명분과 실리를 살리는 묘수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그 역할을 자처해야한다. 비책은 판문점선언에 잘 담겨있다. 대북 제재가 유지되더라도 판문점선언에 담긴 남북 합의사항의 이행은 한반도 비핵화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예외조치로 인정받아야한다. 이 경우 트럼프도 대북 제재 해제라는 비난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종전 선언의 경우에는 미중과 긴밀한 협의를 전제로 남북이 체결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또는 종전 선언을 건너뛰고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시간표와 비핵화 시간표를 주고받는 방식도 있을 수 있다. 운전자가 정해진 길로만 다닐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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