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자 지원 위한 지역인프라 미리 구축해둬야
실직자 지원 위한 지역인프라 미리 구축해둬야
  • 이승희 기자
  • 승인 2018.09.0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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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한국지엠 사태, 퇴직(실직)자 사회적 지원 방안 6
실직자 지원정책 실효성 어떻게 높일까(마지막)

한국지엠이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한국 정부(산업은행)의 ‘경영 정상화 합의’로 위기 상황을 가까스로 모면했지만, 군산공장은 폐쇄됐고 구조조정(희망퇴직)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5월 기준 2900명)가 실직했다.

한국지엠은 여전히 생산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고용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부평2공장은 가동률이 떨어져 주야 2교대에서 야간근무를 없애고 주간근무로만 전환될 예정이다. 군산공장 폐쇄에 따른 인력 전환배치에다 부평2공장 1교대제 전환으로 전환배치 필요인력이 발생해,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또한 한국지엠은 지난 7월에 올해 연말까지 연구개발 투자의 일환으로 디자인센터ㆍ기술연구소ㆍ파워트레인 등 관련 부서를 분리하고 글로벌 제품개발업무를 전담할 신설 법인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측은 신설 법인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한다고 했지만, 노조는 새 법인 설립은 현 법인 분리 계획일 뿐이고, 군산공장 폐쇄에 이은 또 다른 구조조정 음모라고 주장한다. 법인을 분리해도 회사 가치가 상승하지 않고, 현행대로 유지해도 연구개발에 지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미 유럽 쉐보레 판매 법인을 없애, 한국지엠의 해외 판매구조는 무너진 상태다. 한국지엠의 연구개발 부문을 떼어내 새 법인을 만들면 한국지엠은 생산 부문만 남아 GM의 생산하청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 이럴 경우 GM의 한국 철수는 더욱 쉬워진다. 한국 정부(산업은행)가 약 7조 7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해 경영 정상화의 불씨를 살렸지만, 언제든 대량 실직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막아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만일의 사태에 따른 실직자 지원정책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2016년 하반기부터 심각한 고용위기가 발생한 조선업과 조선소 밀집지역의 실태와 해당 지역 실직자 지원대책을 살펴봤다.(편집자 주)


조선업 불황으로 조선소 밀집지역 휘청

조선소 밀집지역의 경제는 한마디로 심각했다. 경남 거제시는 지역내총생산(GRDP)에서 조선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5년 63.7%나 됐다. 가히 ‘조선업의 도시’라 불릴 만했다. 하지만 조선업 불황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실직자가 대량 발생했다. 조선업 업체 수와 고용노동자 변화 추이를 보면, 2015년 12월 기준 업체 375개, 노동자 9만 2164명에서 2018년 5월 기준 업체 266개, 노동자 4만 9458명으로 줄었다. 거제의 실업률은 2015년 1.6%에서 2017년 10월엔 6.6%로 급상승했는데, 이때 전국 평균 실업률은 3.2%였다. 이는 올해 2월에 발표된 것인데, 그동안 더 높아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인구도 줄었다. 2016년 25만 7183명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그 이듬해 25만 4073명으로 26년 만에 처음으로 줄었고, 2018년 5월 기준 25만 1710명을 기록했다.

실업률이 높아지고 인구가 줄다보니 조선소 주변 상가와 다세대(원룸) 공실이 많이 생겼다. 주요 지역 다세대(원룸) 공실은 2016년 6월 53세대(11.5%)에서 2018년 5월 153세대(33.5%)로 늘었다. 올해 아파트 매매와 전세 가격이 2015년의 70% 수준으로 떨어졌다.

1970년대부터 조선업 중심지로 부상한 울산(동구)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올해 5월 기준 현대중공업과 협력업체 노동자 수는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본부 구조조정 직전인 2015년 말보다 3만여명이나 감소했다.

조선업 불황은 대량 실직 사태를 몰고 온 동시에 지역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끼쳤다. 2016년 7월, 울산의 실업률은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업률 3.9%로 2015년 7월 2.7%보다 1.2%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전국에서 가장 큰 상승 폭이었다. 덩달아 음식점 등 자영업 폐업이 증가했고, 부동산 경기가 위축됐으며, 상가 공동화 현상이 발생했다.

선박 제조 협력업체들이 모여 있는 대불국가산업단지(전남 영암군)도 조선업 불황의 직격탄을 맞았다. 2015년 12월과 2018년 1월 기준 조선업 종사자 수(현대삼호중공업ㆍ대한조선 원청과 사내협력업체, 그 외 대불산단 종사자)를 비교하면, 약 2년 사이에 1만 2334명(44.9%) 감소했다. 이러한 고용위기는 대불산단 인근 목포와 해남 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전북 군산시는 지난해 7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이 중단된 데 이어 올해 5월 31일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폐쇄돼,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올해 상반기 실업급여 신규 신청자는 4881명으로 지난해 상반기 3927명보다 954명(24.3%) 증가했고, 2016년 3329명보단 1552명(46.6%)이나 늘었다. 한국지엠 군산공장 희망퇴직자 수는 1100여명에 달했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지역경제에서 차지한 비중을 보면, 2016년 기준 군산시 지역내총생산(GRDP)의 23.4%, 수출액의 43%를 점유했다. 그 이전의 점유율은 훨씬 더 높았다. 특히, 2014년 이전까지 수출액 기준 한국지엠 군산공장의 점유율은 2014년 29.3%, 2013년 45.8%, 2012년 50.0%로 매우 높았다. 이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과 한국지엠 공장 폐쇄가 군산지역 경제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치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정부의 고용위기 지원 실효성 의문

울산조선업희망센터 기초 상담 창구 모습.
울산조선업희망센터 기초 상담 창구 모습.

정부는 2016년 6월 30일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했다.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은 경기 변동과 산업구조 변화 등으로 고용 사정이 급격히 악화되거나 악화될 우려가 있는 업종을 지정해 고용을 지원하는 제도다. 지정 이후 조선업 밀집지역인 울산ㆍ거제ㆍ창원ㆍ목포(영암)에 조선업희망센터를 설치해 퇴직(실직)자 지원서비스와 기업 고용유지지원금을 제공해왔다.

하지만 고용 여건이 나아지지 않았다. 정부는 올해 4월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과 고용위기지역으로도 지정했다. 조선업 실직자뿐 아니라 그 지역 일반 미취업자들도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업희망센터가 설치되지 않았던 군산도 이때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돼 고용위기종합지원센터를 설치했다. 다른 지역은 조선업희망센터에서 고용위기지역 지정에 따른 지원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각 지역 센터의 지원서비스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심리 상담, 전직 상담과 교육, 직업훈련, 창업컨설팅과 함께 기업 지원서비스를 수행한다.

울산ㆍ거제ㆍ창원ㆍ목포 조선업희망센터가 문을 연 2016년 8월부터 올해 6월 말까지 센터에 서비스를 신청한 실직자 수는 총4만 1613명이고, 이중 2만 211명(48.6%)이 취ㆍ창업했다. 고용보험 취득이나 위크넷상 취업으로 집계했는데, 창업자 수는 극히 미미하다. 서비스 신청자들 중 절반 가까이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조선업 구조조정 이후 실직한 노동자 수가 약 10만명인 것을 추정하면, 취업률은 20% 정도로 떨어진다. 나머지는 아직 실직 상태라는 것이다.

민주노총, “정부의 실업대책은 사후약방문”

창원조선업희망센터 심리상담실 모습.
창원조선업희망센터 심리상담실 모습.

정부의 조선업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을 앞두고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는 정부의 구조조정-실업대책이 사람 죽은 뒤에 약 짓는 ‘사후약방문’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용위기의 책임자인 재벌과 정부가 책임지지 않고 노동자에게만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설비ㆍ인력 감축형’ 구조조정, 즉 대량 해고를 전제로 한 실업대책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고용을 보장하기 위한 대책을 우선 마련하고 사회안전망을 대폭 확충해야하는데, 정책방향을 잘못 설정했다고 지적했다. 특별고용업종 지정 후 2년이 지났는데 고용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것을 볼 때, 노동계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는 올해 3월 말, 조선업희망센터 등이 실효성 없는 정책이라는 것은 벌써 알려진 사실이라며, 지역 경제는 이미 소비심리 위축과 구조조정 등으로 파탄 나고 있다고 했다. 이에 앞선 지난해 1월엔 ‘조선업 전반에 걸친 불법 다단계 하청 구조와 하청노동자의 현실을 반영한 대책을 근본적으로 마련할 것’을 정부에 요구한 바 있다. 아울러 고용유지지원제도에 노동시간 단축 프로그램을 포함하고, 고용유지지원금을 기업이 아니라 노동자에게 직접 지급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도 요구했다.

민주노총이 비판한 설비ㆍ인력 감축형 구조조정은 한국지엠 경영 정상화(?) 과정에서도 재현됐고, 조선업 하청노동자의 현실과 한국지엠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은 다르지 않다.

조선업 고용위기 지원정책 제대로 평가해야

노동계도 조선업 특별고용지원 업종 지정과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원했다. 오히려 빨리 지정하기를 요구했다. 문제는 정부의 고용 지원 정책과 실업대책이 기업의 ‘설비ㆍ인력 감축형’ 구조조정을 묵인한 가운데 이뤄졌다는 것이다.

조선업희망센터 운영에서도 개선해야할 점을 찾을 수 있다. 조선업희망센터 관계자들은 센터 개소 초창기에 지원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인프라가 지역에 구축돼있지 않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심리 상담과 전직 상담ㆍ교육을 수행할 역량이 지역에 부족했고, 지역 내 일자리 관련 유관기관이나 업체와의 네트워크 구축도 미비했다. 대부분의 센터가 자리를 잡는 데 최소 6개월은 걸린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민주노총은 정부가 조선업희망센터를 설치한다고 했을 때, 교육기관과 직업훈련을 확대하는 동시에 일자리 지원정책에 해당 지역 노조의 참여를 보장하라고 요구했으나, 이 요구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노조가 노동자들의 정서나 실태, 요구 사항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대량 실직 사태는 앞으로 또 올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산업 동향을 면밀하게 살펴보면서 미래를 전망하는 동시에 만일의 사태 발생 시 적극 대처할 수 있는 정교한 매뉴얼을 만들어놓고 그걸 수행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조선업 고용위기와 한국지엠 경영위기 사태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정확하게 평가해야한다.

지난 5월 31일 폐쇄된 한국지엠 군산공장.
지난 5월 31일 폐쇄된 한국지엠 군산공장.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