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희 극작가

고동희 극작가

정부와 지자체가 내년도 주요 정책과 사업을 계획하고 여기에 필요한 예산을 짜는 시기다. 여전히 경제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이슈로 꼽히지만, 다른 분야 예산 또한 중요하다.

지난 7월에 출범한 지자체들 가운데 단체장이 바뀐 경우 내년도 예산편성을 새 단체장의 지방자치 철학과 선거공약을 이행하는 시금석으로 삼을 만하다. 주민참여예산 등의 이름으로 예산편성 과정에서 시민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갖기도 하는데 얼마만큼이나 반영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예산이 필요한 모든 분야에서 늘 예산 부족을 하소연하고 또한 각각의 영역이 서로 시급성을 내세우기 마련인데, 문화예술계에서는 전체 예산의 3% 확보를 줄곧 주창해왔다. 문화예술예산 3%는 선거 때마다 문화예술인들이 출마자들에게 요구한 사안이기도 하고, 실제로 많은 출마자가 약속한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지자체 예산편성에서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사업의 우선순위에서 문화예술 분야가 뒷전으로 밀리기 때문이다. 경제나 복지 등 급한 일들이 수두룩한데 문화예술이 무슨 대수냐고 여기는 게 아닌가 싶다. 게다가 단체장의 성과를 드러내야할 역점 사업을 먼저 챙기다보면 문화예술 예산 3%는 먼 얘기가 되기 마련이다.

과연 그럴까. 지역의 문화예술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잉여의 영역일까. 인천의 가치는 초고층 빌딩, 혹은 서울을 향해 쭉 뻗은 도로나 고속철도에서 드러나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인천에서 이루어져왔고 앞으로도 인천에서 누리게 될 지속가능한 지역의 문화예술이야말로 인천의 가치를 보존하고 발전시킬 동력이라고 믿는다.

지역의 문화예술은 시민의 삶의 방식이나 가치를 드러내는 징표다. 문화예술은 그 자체로도 도시의 가치를 가늠하는 기준이기도 하지만 경제, 복지, 환경 등 지역사회 전 영역에서 도시의 지속성을 제공한다. 도시의 가치는 창의성에 기초한 문화예술에 의해 지속가능하다.

지금껏 지역의 문화예술은 홀대에 가까운 대접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그 내면에는 문화예술을 실적이나 성과 중심의 행사로 치러왔기 때문이다. 지역 문화예술의 의미를 존중하거나 성장을 뒷받침하기보다는 얼마의 수익을 올렸는가, 얼마나 많은 시민이 다녀갔는가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현실에서 문화예술이 지역의 가치를 끌어올리기란 버거울 수밖에 없다.

지자체나 문화관련 기관들이 유명해진 이벤트를 유통하는 것으로 제 역할을 다하는 건 결코 아니다. 지역 문화예술 분야의 사업들은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기도 어려울뿐더러 애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실패할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접어둘 일은 더더욱 아니다.

어린 아이들부터 청장년들과 노인들까지 세대를 아우르고, 지난 역사와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지속가능한 도시의 단초를 문화예술에서 찾았으면 한다. 새 단체장의 내년도 예산은 어떻게 꾸려질지 자못 기대가 크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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