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 때 친구가 자주색 소형차를 몰고 나타났다. “엄마 차야. 어제 받았는데 기념으로 타보려고. 면허만 따고 운전을 못 해봤거든” 언제든 놀러가고 싶어 안달이던 난 눈이 반짝반짝해졌다. “야, 우리 수업 빼먹고 놀러 갈래?” “그럴까. 어디 가고 싶은데?” 당장 떠오른 건 월미도였다. “월미도 가서 해 지는 거 보자! 내가 감자핫도그 쏠게” 친구가 “오케이”했다. “근데 너 길 알아?” “응, 당연하지” 내비게이션이란 게 있는 줄도 몰랐다.

학교 앞 도로를 빠져 나왔다. 창문을 열고 늦여름 오후의 바람을 느꼈다. 느긋하고 여유로웠다. 그런데 어쩐지 다른 차들이 전부 우리를 앞질러 가는 것 같았다. 굳이 ‘초보운전’이라 써 붙이지 않아도 운전자들이 알아서 피해가다니, 신기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주위에 커다란 트럭이 많아졌다. 경적 소리도 자주 들렸다. 친구는 앞만 바라본 채 묵묵히 운전만 할 뿐이었다.

월미도 가는 길은 인천항으로 향하는 길이기도 했다. 월미도에 가까워질수록 물류를 실어 나르는 큰 트럭이 점점 많아졌다. 우리가 탄 작은 차를 사이에 두고 여기저기서 경적을 울려대는 통에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그때였다. 내 옆으로 커다란 트럭이 바짝 붙었다. “야 이 XXX야! #$^+@&…” 눈을 부라리며 거친 욕설을 뱉었다. 나는 깜짝 놀라 창문을 올렸다. 친구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심혜진.

몇 차례 욕설을 더 들은 후에야 겨우 월미도에 도착했다. “아… 내가 기어를 제대로 안 놨었구나. 어쩐지 속도가 안 나더라” 출발할 때부터 기어 조작에 뭔가 실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날 월미도의 저녁놀은 아름다웠으나 전혀 낭만적인 기분을 느낄 수 없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이곳을 떠나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돌아가자고 말하려는 순간 친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 아까 감자핫도그 사준다고 하지 않았냐?”

감자핫도그가 한창 인기를 끌던 무렵이었다. 겉을 튀김가루로 마무리하는 보통 핫도그와 달리 감자핫도그는 냉동감자 썬 것을 핫도그 반죽에 묻혀 튀겨낸다. 울퉁불퉁한 감자조각이 먹음직스럽고 양도 많아 끼니를 때우기에 좋았다. 그러고 보니 우린 저녁도 먹지 않았다. 나는 근처 포장마차에서 감자핫도그 두 개를 사서 케첩과 설탕, 머스터드소스를 골고루 뿌렸다. 먹고 출발하자니 너무 어두워질 것 같았다. 일단 차에 탔다. 옆에서 틈틈이 친구에게 핫도그를 먹여줄 생각이었다. 돌아가는 길엔 기어를 제대로 놓을 테고, 그러면 아까보단 운전에 여유가 있겠지 싶었다.

예상은 빗나갔다. 속도는 아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욕설을 내뱉는 운전자와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는 걸 그날 배웠다. 우리는 경적소리와 번쩍번쩍하는 상향등 빛으로 아수라장이 된 도로위에서 오직 정면만을 바라본 채 머나먼 길을 달렸다. 소스가 줄줄 흐르는 감자핫도그를 양 손에 꼭 쥐고서.

익숙한 도로에 들어설 때까지 친구의 핫도그는 한 입 베어 문 상태 그대로였다. 그런데 그마저도 제대로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했나보다. “아까 먹은 거 이제야 씹는다야” 너스레를 떠는 친구의 입 꼬리에 경련이 일었다. 집까지 바래다준다는 걸 겨우 손사래로 막았다.

어느덧 운전 20년 차가 된 친구. 다행히 큰 사고 한 번 나지 않은 나름 베스트 드라이버다. 여전히 운전면허가 없는 나를 친구는 가끔 놀린다. 나는 빽 소리를 지른다. “야, 그날 네 차 탄 뒤로 가슴 떨려서 운전을 못 배우잖아. 알아?” 친구가 느긋하게 말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거 아니겠어? 힘 내”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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