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카운터스(Counters)

이일하 감독|2018년 개봉

“조센징은 기생충, 독을 먹여라!”
“조센징은 돌아가라, 두드려 패서 내쫓자, 죽이자!”
“이곳(도쿄의 코리아타운)을 홀로코스트로 만들자!”

도쿄 코리아타운을 행진하는 혐오시위 참가자들은 재일조선인이 특혜를 받고 있고 그 때문에 일본인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하며 일본 국민들을 선동한다.

물론 그들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자이니치라 불리는 재일조선인은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로 인해 생겼고, 일본의 패망 이후 엄연히 일본사회의 구성원이 됐음에도 여전히 차별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론의 쏠림은 사실관계와 상관없을 때가 많다. 경기불황의 장기화로 불안해진 일본인들의 불만은 혐오의 말에 쉽게 휩쓸리고, 재특회(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와 같은 극우단체는 차별과 혐오를 극렬히 선동하며 세를 불린다.

그렇다고 일본사회가 온통 혐오에 동조하는 건 아니다. 차별과 혐오는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아니라 범죄임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뒤틀린 민족주의와 배외주의에 물든 혐한(한국 혐오) 시위를 막기 위해 거리로 나온 일본 행동주의자 그룹 카운터스가 바로 그들이다. 저널리스트, 변호사, 국회의원, 만화가 등 다양한 인물들이 자발적으로 카운터스에 모여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막아내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영화를 배우고 만들어온 이일하 감독은 카운터스 중에서도 맨 앞에서 움직이는 정예부대 오토코구미를 만든 다카하시를 중심으로 혐오의 목소리를 막아내는 일본의 새로운 시민운동에 주목한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자타공인 우익인 야쿠자 출신 다카하시는 혐한 시위를 목격하고 사회적 약자인 재일조선인을 혐오하는 재특회가 ‘남자답지(!) 못하고 지질하기 때문에’ 혐오세력을 응징해야겠다고 생각한다. SNS로 뜻이 맞는 이들을 모아 남자답지 못한 혐오세력에 맞설 ‘진짜남자’ 조직 오토코구미(男組)를 결성한다. 오토코구미는 몸을 던져 혐오시위를 방해하고 카운터스를 보호하는 일종의 돌격대 역할을 자임한다.

방법의 옳고 그름을 떠나 혐오와 폭력에 육탄전으로 대응한 ‘다카하시’ 덕분에(?)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암묵적으로 묵인되던 혐오시위가 일본사회에서 공론화되고, 마침내 2016년 5월 일본 국회에서 ‘혐오표현금지법’이 제정된다.

카운터스, 그 중에서도 다카하시의 오토코구미는 보통 정의의 편, 진보라 불리는 이들이 보여주는 도덕군자 같은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한눈에 보기에도 주눅이 들 정도로 험상궂은 조직폭력배 같은 외양으로 (실제 야쿠자 출신이기도 하고) 혐오시위대를 말로 설득하기보다 몸으로 제압한다.

솔직히 나쁜 짓을 일삼던 근육질의 남성이 ‘남자의 이름으로’ 정의의 편에 선다는 영화 속 상황은, 일상에 여성혐오가 차고 넘치는 한국에서 불안과 분노를 공기처럼 마시며 살고 있는 내게 썩 내키지 않는, 혐오세력의 혐오발언만큼은 아니지만 결코 편치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카운터스 활동으로 재일조선인을 비롯해, 성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어울리는 다카하시의 모습에서 또 다른 희망을 발견하게도 된다.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길에 무결점의 사람들만 함께할 수 있는 것 아니니까. 좋은 방향을 향해 좋은 사람과 함께 가다 보면 결점 많은 사람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거니까.

영화 ‘카운터스’는 일본의 이야기지만 혐오의 목소리는 비단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지금, 한국사회에도 묵직한 울림을 안겨준다. 일본에서 혐오의 대상인 재일조선인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볼 수밖에 없는 한국인에게 카운터스는, 어느 새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혐오’가 얼마나 무섭고 나쁜 것인지 극명히 보여준다. 더불어 다카하시 말대로 얼마나 ‘지질하고’ ‘남자답지(!) 않은’ 일인지도.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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