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인천문화재단 인천역사문화센터장

김락기 인천문화재단 인천역사문화센터장

강화에 석릉(碩陵)이 있다. 사적 369호로 고려 21대 임금 희종(熙宗)의 능이다. 강화에는 석릉을 비롯해 고종(高宗)의 홍릉(洪陵) 등 4기의 왕과 왕비의 능이 있는데, 그 중에서 석릉이 다른 왕릉과 다른 점은 주변에 고려시대 고분이 무척 많다는 것이다.

석릉은 2001년 가을과 겨울 두 차례에 걸친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발굴로 전모가 드러났으나, 주변 고려 고분군은 사실상 방치된 채였다. 2000년 인하대박물관의 지표조사에서 고분 112기를 확인했고, 확인이 어려운 지형조건을 감안할 때 150여기까지 추정됐으니 규모에 비해 관심이 적었다고밖에 할 수 없다.

개성에 있는 많은 고려 왕릉 중에도 주변에 이처럼 대규모 고분군이 밀집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강화 천도 시기(강도 시기)의 특수성과 재위 7년 만에 무인집권자 최충헌에 의해 폐위된 희종의 생애를 연결하는 여러 추측만이 있었다.

작년 3월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가 강화에 둥지를 틀고 어떤 일부터 해야 할지 많이 고민한 것으로 안다. 고민 끝에 연구소의 첫 번째 발굴로 석릉 주변 고려고분군을 선택했으니 늦게나마 강도 시기의 모습을 찾아가는 첫걸음이 됐다고 생각한다. 연구소의 조사 결과, 확인 가능한 석릉 주변 고려고분은 모두 112기였고, 이번에 그 중 6기를 발굴했다. 북송(北宋) 때의 동전과 완전한 청자 접시 하나가 나왔고, 청자 편은 더 많이 나왔다.

유물보다 더 중요한 건 무덤의 형식이다. 올해 8월 8일 열린 현장설명회에서 공개된 고분들은 널따란 돌을 사각형으로 잘라 큰 곽을 만들고, 무덤 앞에 석인상 두 개를 세운 공들인 고분도 있고, 작은 돌을 겹쳐 쌓아 곽을 만든 무덤도 있었다. 땅을 깊게 판 뒤 고운 흙을 골라 바닥을 다진 토광묘도 있다. 이미 심하게 도굴돼 무덤 주인공을 알 수 있는 유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고려시대 고분의 다양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112기 중에서 6기를 발굴한 것이니 비율로 따지면 겨우 5% 남짓이다. 나머지 95%까지 발굴한다면 더욱 흥미로운 유물과 자료가 쏟아질 것이다. 게다가 강화에는 고려산 자락의 고천리와 바다를 마주한 외포리 등에도 고려 고분이 많이 있다. 앞으로 차근차근 조사해 나간다면 강화는 고려시대 고분에 관한한 북한의 개성보다 더 풍부한 유적과 자료를 가진 고장으로 거듭날 것이다.

올해는 태조 왕건이 고려왕조 500년 사직을 연 지 1100년이 되는 해다. 강화를 또 하나의 고려 수도로 강조하는 이야기는 많았지만, 정작 강화에서 고려의 흔적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강화읍 북산 아래 고려궁지(사적 133호)에는 정작 고려는 없고 조선시대 강화유수부 관아와 외규장각이 있을 뿐이다. 왕릉은 산길을 따라 에돌아가야하는 곳에 있어 시민들이 일부러 찾아가기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비록 적은 숫자이지만 고려 고분을 발굴했으니 강화와 고려를 연결하는 또 하나의 접점을 만든 것이다. 10여년에 걸쳐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를 유치하기 위해 애쓴 인천 지역사회의 노력이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 새삼 깨닫게 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올 가을, 연구소는 인천시립박물관과 손잡고 강화에서 출토된 유물을 한자리에 모아 소개하는 전시를 준비한다고 한다. 지역과 함께 하기 위한 연구소의 노력에 인천시민이 많은 관람으로 응답한다면, 인천이 유구한 역사를 가진 도시로 자리매김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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