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원장, “모두 병원 사랑해” 첫 담화문 발표
직원들 반응 싸늘해…“우리도 사랑 받고 싶다”

인천 남동구 구월동에 위치한 가천대길병원. 길병원은 단일 병원 병상수로 국내 5위 안에 드는 대형 종합병원이다.

뇌물ㆍ불법정치자금ㆍ갑질ㆍ부당노동행위로 얼룩져

지난달 20일 가천대길병원에 19년 만에 민주노조(=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길병원지부)가 설립됐다. 하지만 새 노조가 처한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새 노조 설립 이후 사용자측은 노조 간부의 밤늦은 퇴근길을 미행했고, 업무시간 내내 바로 곁에서 감시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했다.

새 노조 설립으로 베일에 가려있던 병원 내 ‘갑질 경영’과 ‘노동 착취’가 속속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비판 여론이 확산됐다. 새 노조에 여론의 힘이 실리면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길병원의 주요 갑질 행위와 부당노동행위는 임신 순번제, 임산부 야간근무 동의서 징구, 임신 초기ㆍ말기 단축노동 무허가, 직원들에게 의료법인 길의료재단 이사장 생일 축하 동영상 촬영 강요, 이사장 사택 관리에 직원 동원, 노조 간부 퇴근길 미행, 업무시간 내 그림자 감시, 노조 가입 방해, 시간 외 근무수당 미지급, 미사용 연가 사용한 것으로 처리 등,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이밖에도 길병원은 보건복지부 공무원 뇌물 공여와 국회의원 불법정치자금 후원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갑질 경영과 노동 착취로 짜낸 병원 수익이 뇌물과 불법정치자금으로 쓰인 셈이라 직원들은 분노했다.

이아무개 전 길병원 원장과 비서실장 등은 보건복지부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되기 위해 보건복지부 고위 공무원에게 3억 5000만원 상당의 뇌물을 제공(뇌물 공여와 업무상 배임)한 혐의로 입건돼 수사를 받고 있다.

또, 이 전 원장은 가지급금 명목으로 길병원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또는 인천지역 국회의원 등 총15명(후원회)에게 길의료재단 직원과 가족들 명의로, 이른바 ‘쪼개기 후원’으로 4600만원을 건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까지 받고 있다.

신임 원장 담화문 발표 “우리 모두 길병원을 사랑해”

이 전 원장이 물러나고, 지난달 27일 김양우(65) 가천대의료원장이 신임 길병원 원장으로 취임했다. 김 원장은 1988~1993년 가천대길병원 성형외과 교수를 지냈고, 2007~2009년 이대목동병원장을 역임했으며, 2013년 가천대길병원 경영원장으로 부임했다. 2016년부터는 가천대의료원장으로 일했다.

김 신임 원장은 지난 2일 첫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는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게 됐다”며 “최근 부적절한 행위로 경찰 수사를 받고, 정당하게 일궈낸 우리의 성과마저 평가 절하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최근 병원 내 환자 진료기록이 사라져 불편이 발생한 데 대해 “전산시스템 교체 문제로 큰 혼란을 주고,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던 점을 미안하게 생각한다”고도 했다.

그는 또, “일부 간부가 공정하지 못한 처신과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도 반성한다”고 했다. 이는 새 노조 설립과 활동을 수간호사와 부서장 등이 방해한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김 원장은 병원 내 각종 부당노동행위와 갑질 행위가 직원들의 제보로 세상에 알려지고 있는 것에 대해선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다만 “지금 우리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병원을 향한 많은 직원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도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우리 병원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고 표현했다.

“새 노조를 비롯한 직원들과 상생방안 없어”

신임 원장 담화문에 직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한 직원이 <카카오톡> ‘길병원 직원모임’ 방에 글을 올려 “새 노조를 비롯한 직원들과의 상생 방법 등 알맹이는 빠졌다. 오랜 시간 상처받고 열악한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됐던 직원들에 대한 사과와 죄송함을 표현하는 것이 선행돼야 했다”고 지적했는데, 공감이 주를 이뤘다.

이 직원은 김 원장이 ‘일부 간부의 공정하지 못한 처신’이라고 언급한 데 대해 “일부 간부만의 공정하지 못한 처신이 아니라 오랜 시간 길병원과 간호부를 잠식하고 있는 나쁜 문화, 적폐이다”라고 꼬집었으며, “새 노조를 비롯한 직원들과의 상생 방법 제시가 담화문엔 빠졌다”라고 재차 비판했다.

이 직원은 끝으로 “원장님 말씀대로 우리 모두 병원을 사랑한다. 우리가 병원을 사랑하는 만큼, 우리도 사랑받고 싶다. 우리가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만큼, 환자분들도 길병원의 변화를 느끼게 될 것이다”라며 새 노조와 소통을 강조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지난달 25일 중부고용노동청 앞에서 길병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다. 그리고 2일 민주노총 인천본부와 정의당 인천시당 등 38개 단체가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했다.

인천 38개 단체와 정당, ‘길병원 특별근로감독’ 촉구

김영우 신임 원장이 취임한 날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와 인천평화복지연대, 정의당 인천시당 등 38개 단체는 공동으로 성명을 내고 고용노동부에 길병원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부당노동행위 근절을 위해 특별근로감독과 기획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등은 “길병원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노동탄압과 갑질에 대해 이제 고용노동부가 직접 나서야한다. 노조 파괴를 위한 노조 활동 방해, 인권유린, 각종 행사 동원,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해 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으로 샅샅이 파헤치고 일벌백계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길병원은 인천에서 가장 큰 상급 종합병원으로 국가에서 지정한 인천지역 암센터와 인천서해권역 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높은 위상과 달리 비싼 진료비와 잦은 의료사고 의혹 등으로 시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시민들은 수익만 추구하고 규모만 큰 병원이 아니라, 적정 진료와 질 높은 안전한 의료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길병원의 현실은 어떠한가. 반인권적 갑질과 부당노동행위로 얼룩져있다. 우리 인천지역 노동ㆍ시민사회는 더 이상 길병원의 갑질과 전근대적 노동탄압을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라며 “길병원이 시민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반인권적 노동탄압과 갑질을 중단하고 성실한 대화로 노사관계를 정상화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