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민지 인천 청년유니온 위원장

선민지 인천 청년유니온 위원장

코레일을 상대로 정규직 전환 투쟁을 벌이다 2006년 5월 해고된 KTX 승무원들이 12년 만에 복직투쟁을 승리했다. 처음부터 있어서는 안 될 일이 12년이나 지나서야 실마리를 찾았다는 점에서 씁쓸하기도 하지만,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대한민국의 절대 권력인 삼성에 맞서 11년간 싸워온 삼성반도체 노동자 유가족들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하 반올림)’의 투쟁이 조정위원회의 조정안을 삼성까지 모두 받아들임으로써 결실을 맺었다. 2015년 9월 조정안을 삼성이 거부한 이후 삼성전자 서초동 사옥 앞에서 시작한 1023일간의 농성도 끝을 맺었다.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었던 KTX 승무원 복직과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은 우리에게 분명히 기쁜 소식이고 희망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제 끝이라고 하기에는 우리 사회에는 삶의 벼랑 끝에 놓여있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위의 두 가지 사안 해결은 그저 벼랑 끝 사람들의 숫자가 조금 줄어들었을 뿐이다.

지난 6월 27일 쌍용차 사태로 인한 서른 번째 비극이 발생했다. 2015년 말 노사 복직 합의 이후 더 이상의 죽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2017년 상반기까지 해고노동자 전원 복직 노력 약속이 제대로 안 지켜지면서 다시 비극이 시작되고 있다. 잠시 벗어나 있던 그들은 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냥 내려다보기만 해도 아찔한 높이 75미터 굴뚝 위에 노동자 두 명이 올라가 있다. 계속되는 폭염에 그늘 하나 없는데 말이다. 2006년 한국합섬 투쟁으로 시작한 스타플렉스의 자회사 파인텍 노조의 고공농성 투쟁이 260일을 넘어가고 있다. 지난 2015년 스타케미칼 굴뚝에서 세계 최장이라는 408일간의 고공농성 끝에 도출한 노사 합의가 지켜지지 않은 까닭이다.

KTX 승무원, 반올림, 쌍용차, 파인텍, 그리고 그밖에도 생존을 걸고 투쟁하고 있는 많은 사업장들의 공통점은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은 그 약속을 지켜낼 힘이 없다.

그럼 그 힘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정부기관이 중재하면 생기나? 앞서 언급한 사례들을 보면,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하기는 했다. 그럼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인가? 조금 더 냉철해지자. 언제부터 정부에 그렇게 큰 기대를 했나. 정부가 걸림돌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던 시절이 불과 1년 전이다.

우리가 그 ‘약속’을 함께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옛 시간을 돌아보자. 결국 우리는 손을 맞잡고 그 시련의 순간들을 견디고 성과를 만들어왔다. ‘연대’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줬고, 그 연대가 지금의 KTX 승무원 복직과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만들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싸워 만든 성과다.

잠깐 멈춰 서서 ‘나’와 ‘우리’를 돌아보자. 누가 그들을 저 높은 곳에 올려두고 있나.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우리가 그들을 저 높은 곳에 올려두고 있다. 다시 숨을 고르고 손 맞잡고 달려가자. ‘누군가 해결해주겠지’라는 생각은 틀렸다는 걸 깨닫기 충분한 시간이지 않았나. 우리 손을 맞잡고 다시 그들 곁으로 가자.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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