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사이로 (30)

나뭇잎 사이로는 시민기자들의 환경이야기를 격주로 싣습니다.

얼마 전 제주에 다녀왔다. 제주만의 독특한 해안선과 깨끗한 바닷물을 보며 바닷바람을 맞으니 일상에 치여 어수선해졌던 마음이 차분히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TV 드라마에 나온 적 있다는 카페 근처를 걷다 눈살을 찌푸렸다 해안선과 가까운 주차장 경계석에 누군가 버린 플라스틱 컵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두 사람은 드라마에서 봤던 카페에서 얼음이 든 음료를 사들고 풍경 좋은 산책로를 거닐다가 빨대까지 꽂힌 플라스틱 컵을 주차장에 버려둔 채 렌터카를 몰아 다음 관광 코스로 떠난 모양이었다.

더위가 본격화하면서 일회용 음료 컵이 함부로 버려진 것을 많이 본다. 아침에 나가보면 집 앞 주차장에도, 단지 내 벤치 위에도, 아파트 담벼락 사이에도, 버스정류장 의자 밑에도 플라스틱 컵과 빨대가 넘쳐난다. 도시에서 발생한 이 쓰레기는 그렇다 치자. 자연 분해되는 데 200년이 걸린다니 간과할 문제는 아니지만 재활용되든 일반쓰레기와 함께 버려지든, 처리는 된다. 그러나 바닷가에 함부로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는 바다로 흘러들어가 해양생물들을 위협한다. 일부 과학자는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2050년에는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더 많아질 거라고 경고한다.

지난 2015년 코스타리카 해변에서 발견된 바다거북의 영상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이 영상은 바다거북을 조사하던 연구원들이 찍은 것이다. 그들은 호흡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올리브각시바다거북’을 발견했는데, 그 바다거북을 물에서 끌어올려 확인해보니 콧속에 이상한 물질이 들어가 있었다. 바로 플라스틱 빨대였다. 영상으로 8분 정도 되는 빨대 제거 작업을 지켜보는 것이 나는 몹시 힘들었다. 코피를 흘리며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리는 바다거북을 보려니 영상을 끝까지 볼 수 없겠다 싶었다. 하지만 빨대를 제거하고 치료를 받은 뒤 바다로 돌아가는 거북을 보고 싶었다. 영상을 끝까지 보는 내내 내가 그 거북과 같은 시대, 같은 지구에서 살고 있는 인간이라는 게 부끄럽고 미안했다.

이 영상은 세계 여러 나라가 ‘빨대 퇴출 운동’을 시작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영상을 본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상에서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를 촉구하는 운동을 벌인 것이다. 그 성과로 올해 초 영국 정부는 이르면 내년부터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메리칸항공 공항 라운지에서는 지난달부터 옥수수로 만든 빨대와 대나무로 만든 커피스틱을 제공한다고 한다. 스타벅스는 2020년까지 전 세계 모든 매장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없애겠다고 지난 6월 9일 발표했다. 이를 위해 빨대가 필요 없는 음료 컵 뚜껑을 제공할 것이고, 빨대 사용이 불가피할 경우 대체 재질로 만든 빨대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대만 정부는 내년 7월부터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하는 강력한 환경 규제 정책을 발표했다. 그런데 버블티의 천국이라 불리는 대만에선 많은 사람들이 일회용 컵에 굵은 빨대를 꽂아 타피오카 펄을 음료와 함께 먹고 있다. 대만환경청은 버블티를 숟가락으로 먹으면 된다고 했다지만, 이를 무성의한 답변으로 받아들이는 많은 국민들의 관심은 옥수수ㆍ실리콘ㆍ대나무 빨대 등 플라스틱 대체재에 쏠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환경운동연합이 ‘빨대 이제는 뺄 때’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플라스틱 빨대 안 쓰기 캠페인부터 시작해 향후 일회용 플라스틱 폐기물 저감으로 자원순환사회 구축에 앞장설 것이라 한다.

어린이나 노약자, 환자처럼 빨대가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빨대 사용을 조금씩 줄여보자. 값싸고 편리하다는 이유로 한 번 사용하고 버리는 플라스틱 빨대가 해양생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무더위를 잊게 하는 시원한 음료의 즐거움은 잠깐이지만 플라스틱 빨대가 해양생물들을 괴롭히는 시간은 너무도 길다. 우리도 시작하자, 빨대 덜 쓰기.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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