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가 자꾸 집안으로 들어온다. 창문마다 모기장을 쳐놓은 것도 모자라 조금이라도 들뜬 곳은 투명테이프로 막아놓았다. 도대체 어느 구멍으로 어떻게 들어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주로 한밤중에 출몰하는 모기는 자기 전 텐트형 모기장을 치는 것으로 해결하지만, 여기저기 종횡무진 날아다니는 파리는 아주 성가시다. 게다가 고양이 미미가 그 파리를 잡겠다고 침대며 책상, 싱크대 위로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통에 정신까지 사납다. 어렸을 때 엄마가 매달아뒀던 끈끈이를 사볼까 하다가 파리지옥이라는 식물이 떠올랐다.

파리지옥은 식충식물로, 곤충을 잡아 영양분을 얻는다. 한 마디로 육식을 하는 식물이다. 식물은 햇빛과 물만으로 에너지를 만드는, 지구 유일의 생명체다. 그렇다고 해서 필요한 모든 양분을 햇빛과 물에서 얻을 순 없다. 대부분의 식물은 땅속에서 물과 함께 무기염류를 빨아올려 생장과 생명유지에 필요한 영양소를 섭취한다.

그런데 식충식물들이 사는 곳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토양이 척박한 습지라는 점이다. 습지에는 질소가 부족하거나 거의 없다. 질소는 DNA와 단백질을 구성하는 원소이면서 광합성 색소인 엽록소를 만드는 데에도 꼭 필요한 물질이다. 우리가 들이마시고 내쉬는 공기의 대부분이 질소일 정도로 질소분자(N2)는 풍부하다. 하지만 질소원자들은 서로 너무 강하게 붙어 있어서 동물도, 식물도, 이를 맘대로 떼어내 사용할 수 없다.

이 원자간 결합을 끊으려면 특정 효소가 필요한데, 콩과 식물의 뿌리에 공생하는 뿌리혹박테리아 같은 일부 토양세균만이 이 효소를 가지고 있다. 토양세균이 분해한 질소를 식물이 뿌리로 흡수하고, 이 식물을 우리가 먹음으로써 우리 몸에 필요한 질소를 얻는 것이다. 하지만 습지에는 이런 토양세균이 살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 사는 식물에겐 질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식충식물은 질소를 아예 동물에게서 직접 얻기로 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덫을 만들었다. 파리지옥은 포충엽이라는 넓은 잎 두 개에서 향기롭고 달콤한 분비물을 내뿜어 곤충을 유혹한다. 잎 한가운데에는 뾰족한 털이 세 개씩 돋아나 있다. 곤충이 잎에 앉았다가 이 털을 두 개 이상, 최대 2초 안에 건드리면 파리지옥은 잎을 빠르게 닫는다. 뒤늦게 덫에 걸렸다는 걸 깨달은 곤충이 발버둥을 쳐봤자 소용없다. 그곳은 파리지옥이다. 포충엽은 더 굳게 닫힐 뿐이다. 곤충의 움직임이 잦아든 후 잎에선 소화효소가 나온다. 파리지옥은 맛있는 한 끼 식사를 그제야 시작한다.

벌레잡이통풀은 포충낭이라는 주머니를 만들고 이 입구에서 파리지옥과 마찬가지로 곤충을 유인할 물질을 내보낸다. 이 냄새를 맡고 달려온 곤충이 포충낭에 앉으면 몇 걸음 가지 못하고 그만 주머니 안으로 굴러 떨어져버린다. 포충낭 안쪽은 아주 미끄러워서 한 번 들어간 곤충은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

다만, 예외가 있다. 주머니 안에 먼지가 쌓이면 곤충이 기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벌레잡이통풀 입장에선 이곳을 미끄럽게 유지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왕개미 종류의 어떤 개미는 이곳을 마음대로 드나들며 내벽을 깨끗하게 치우는 역할을 한다. 물론 벌레잡이통풀은 그 대가로 다른 곤충을 유인했던 바로 그 분비물을 개미가 먹게 한다.

이쯤 되면 식충식물을 아주 무자비한 생물이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도 막무가내로 곤충을 잡지는 못한다. 잎을 여닫거나 소화액을 분비해 양분을 흡수하는 과정에 막대한 에너지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선 반드시 곤충을 잡아야 하면서도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면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이것이 식충식물의 딜레마다. 그래서 해가 잘 들면서 동시에 토양양분이 부족할 때, 즉 식충식물이 벌레를 잡을 수 있을 만큼 광합성으로 에너지를 얻을 환경이 될 때 식충활동이 왕성하게 일어난다. 그렇지 못할 경우 벌레 잡는 것을 중단한다.

파리지옥을 인터넷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만일 이번 여름에 식충식물을 들여놓을 생각이라면, 화분을 볕이 잘 드는 곳에 두고 흙은 늘 축축하게 해놓아야 한다. 특히 파리지옥의 잎을 건드려 잎을 오므리게 만들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샘솟겠지만,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좋다. 파리지옥에겐 아주 힘 든 일이니 말이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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