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금석 사회연구소 가능한 미래 연구위원

장금석 사회연구소 가능한 미래 연구위원

경찰들이 피의자 심문에 자주 사용해 ‘굿 캅(good cop), 배드 캅(bad cop)’이라 불리는 전략이 있다. 최근 이 말이 종종 등장한다. 범죄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북미 간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폼페이오와 볼턴의 온도차 있는 발언 때문이다.

지난 북미정상회담 직전 볼턴의 ‘리비아식 비핵화’ 발언으로 정상회담이 파탄 직전까지 갔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근래엔 폼페이오의 3차 방북을 앞두고 볼턴이 “북한 비핵화를 1년 안에 이룰 수 있다”며 비핵화 시간표를 제시하는 발언을 하자, 미 국무부가 “비핵화 시간표를 제시하지 않겠다”고 서둘러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이를 두고 트럼프 정부 내 조율되지 않은 엇박자인지 아니면 고도의 역할 분담인지, 해석이 분분하다.

하지만 좋은 경찰이든 나쁜 경찰이든 둘의 공통의 이해는 피의자의 자백을 받아내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폼페이오와 볼턴의 서로 다른 방식의 언행도 북한의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희망한다는 점에선 일치한다. 그러므로 이를 과도하게 해석하는 건 정세를 인식하는 데 커다란 오류를 낳을 수 있다.

폼페이오의 3차 방북이 이뤄졌지만 북미 대화의 전망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많아졌다. 회담 직후 북한은 미국을 향해 “싱가포르 수뇌 상봉과 회담의 정신에 배치되게 CVID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다”고 비판했다. 이에 미국은 한ㆍ미ㆍ일 외교장관 회담 직후 “한ㆍ미ㆍ일 3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북한의 비핵화 CVID를 재확인했다”며 “북한이 최종 비핵화를 할 때까지 대북 제재를 유지할 것이다”라고 맞섰다.

미국은 이번 방북에서 ‘비핵화와 핵ㆍ미사일 시설 폐기 선언 일정’ 등 구체적이고 진전된 시간표를 요구하며 핵 신고ㆍ검증 절차에 들어가야한다는 입장을 강조한 듯하다. 아마도 미국 내 부정적 여론과 중간 선거를 의식해 비핵화 속도를 내고 싶은 속내를 반영한 것이라 판단한다.

반면 북한은 ‘단계적, 동시행동’ 원칙을 내세우며 한반도 평화체제와 북미 신뢰 구축의 첫 공정으로 종전 선언을 요구했다. 회담이 순탄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두 나라는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실무협상을 조만간 열고,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 문제를 다룰 후속 협상을 오는 12일 무렵 판문점에서 진행한다는 데 합의했다. 모두 협상 파탄을 바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도 확인했듯이 지금 진행되고 있는 북미 대화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말처럼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도 있다. 그리고 수많은 이견과 방해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흐름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 체제 보장과 한반도 비핵화라는 두 나라의 바람이 매우 절실하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대화에서 발을 빼는 나라는 치명적인 상처가 불가피해 보인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정세는 무르익었다.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했듯이 문재인 정부도 올해 안에 종전이 선언될 수 있게 한반도 운명의 운전자로서 그 역할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불가역적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 말이다. 지금은 실패라는 결과를 낳을 일방적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가 아닌, 남북 공조로 구축하는 CVIP(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Peace)가 절실한 때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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