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서해 남북교류 활성화 방안 5.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와 수산업 경협

판문점선언으로 서해평화수역 성큼 다가와

판문점선언 2조 2항에 ‘남과 북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실제적 대책을 세워나가기로 했다’고 합의했다. 선언에 NLL표기해 10.4선언에서 진일보했다.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이 발표한 판문점선언으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가 가시화됐다. 한반도 최대 화약고인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가 10.4선언에서 약속한 평화수역에 성큼 다가섰다.

판문점선언 2조 2항에 ‘남과 북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실제적 대책을 세워나가기로 햇다’고 명시했다.

판문점선언의 중요한 대목은 북한이 NLL을 공동으로 명기하고 공개했다는 점이다. 북한은 그동안 ‘NLL’이라는 표현 자체를 안 썼다. 그런데 이번에 <노동신문>에도 그대로 명기했다. 처음 있는 일이다.

NLL은 정전협정을 앞두고 유엔군 사령관(=미군 사령관)이 추가 무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남한과 유엔군의 전투기와 전함이 이 이상 북상하지 말라고 그어놓은 선이다. 정전협정에 군사분계선은 임진강 하구에서 끝나고, NLL은 군사분계선에 포함되지 않았다.

NLL이 처음부터 한반도의 화약고였던 건 아니다. NLL은 군사분계선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1970년대 초까지 조용했다.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않던 북한이 1973년 서해 5도 주변 수역을 자신들의 영해라고 주장하면서 화약고로 등장했다.

반면, 남한 정부는 1991년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 11조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 27일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해온 구역으로 한다’를 근거로 NLL 이남을 남한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NLL을 군사분계선으로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한 ‘해양법에 관한 유엔 협약’상 영해를 규정하는 경계선으로 인정받기 어려워 중국어선이 조업을 하는 등 논란이 뜨겁다.

NLL이 화약고로 변하면서 이 일대에서 1ㆍ2차 연평해전과 대청해전, 연평도 포격사건 등, 남북 간 국지전이 발생했다. 게다가 남북 간 대치로 중국어선 불법조업을 단속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지난 2007년 남북 정상은 10.4선언을 발표하고 평화수역으로 지정하자고 합의했다.

NLL 거부하던 북한, 판문점선언에 명기하며 태도 바꿔

서해 북방한계선과 북측 주장 해상군사분계선 위치 안내도. 노무현 전 대통령은 10.4선언 때 북방한계선을 기준으로 남북 등가면적의 공동어로수역을 제시하고, 해상평화공원과 서해공동경제특별구역을 제안했다.

10.4선언 3조를 보면, 남과 북은 서해에서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로 합의했다.

또, 5조에 남과 북은 해주지역과 주변 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 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2012년 18대 대선 때 새누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때 북방한계선을 포기했다’고 거짓 주장하며 NLL을 정쟁 도구로 활용했다. 이들은 북방한계선을 양보했다고 주장하며 안보 위기를 조장하고 색깔론을 씌웠다. 구체적 사실을 외면한 소모적 정쟁이었다.

10.4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NLL을 기준으로 ‘등면적 원칙’을 적용한 서해평화협력지대를 제시했다. NLL을 분계선으로 확정하려하면 끝이 없으니, 우선 NLL을 기준으로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지대를 조성해 충돌을 무력화하고, 나중에 경계선을 확정하자고 한 것이다. 다만, 북은 그때 NLL을 명기하지 않았는데, 이번 판문점선언에 들어갔다.

서해에서 해상경계선을 설정하지 않는 한 남북은 사실 어떠한 합의도 볼 수 없다. 그래서 북한도 NLL을 경계선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한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 선을 기준으로 서로 충돌하지 않고 평화수역을 만드는 데는 동의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도 강령경제특구를 개발하려면 앞마당에 해당하는 NLL 일대가 안정화돼야하는 만큼, NLL을 영해 경계선으로 정할지는 일단 미뤄두고, 평화수역으로 만들자는 데 합의한 것이다.

북한이 NLL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지정하려는 의지는 지난 2013년 강령군 일대 토지 505㎢를 경제특구로 지정한 데서 확인된다. 북한 조선합영투자위원회가 투자유치를 위해 중국해외투자연합회에 의뢰해 작성한 계획을 보면, 강령특구 면적은 505km²에 달하고, 70만명 고용효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재정수입 목표는 100억 달러 규모다.

북한에 돈 내고 조업하는 중국어선, 해상파시로 해결

북한에 입장료를 내고 연평도 NLL 이북 수역에서 조업 중인 중국어선들 사진 속 섬은 연평도 앞 북측 석도이다(2018.05.20.촬영). 2014~2015년 중국어선의 평균 입어료(1척당 3~4만달러)를 고려한 북한의 입어료 수입은 3045만~6664만 달러로 추정된다.

서해 5도 어민들은 그동안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사건 등으로 위험 속에서 살아왔다. 이뿐만 아니라 NLL에 한참 못 미치는 한정된 구역에서만 조업이 허가되고, 조업 시간도 일출부터 일몰까지로 제한됐다. 게다가 어장은 중국어선에 싹쓸이 당했다.

어민들은 지난 4월 7일부터 ‘서해 5도 한반도기’를 어선에 달고 조업하고 있다. 그 뒤 서해 5도 어민협의체를 구성했고, 시민사회단체와 공동으로 ‘서해 5도 생존과 평화를 위한 인천대책위원회’를 ‘서해 평화수역운동본부’로 전환해 서해평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평화수역운동본부는 ▲연평도와 대청도 어장 연결과 조업시간 확장 ▲옹진반도 남북 어민 만남 ▲NLL 남북 수산자원 보호를 위한 어업 질서 확립 ▲‘사회적 평화기업’으로 해상파시 추진 ▲서해 5도 생존과 평화를 위한 민관협의체 구성을 주요 정책과제로 제시했다.

그 중에서도 핵심 과제는 ‘바다 위 개성공단’이라 일컫는 해상파시(波市)다. 해상파시는 바다 배 위에서 열리는 장터를 말한다.

해상파시는 남북 공동관리 아래 백령도와 연평도 앞 NLL 부근에 바지선을 띄워 어장을 관리하고 조업하면서 중국어선 불법조업을 막아냄으로써 남측 어민들의 어업을 보호하고, 북측이 조업한 수산물을 남측이 매입하는 것을 포함하는 사업이다.

아울러 해상파시는 남측의 백령도 용기포항과 연평도 신항, 북측의 강령경제특구와 농수산물가공단지 등 수산업 인프라와 연계하면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장산곶과 옹진반도 일대 수역은 황해 냉수대로 해조류 양식의 최적지로 각광 받는 곳이라, 해상파시 외에도 해조류 분야에서 수산업 경협이 기대되는 곳이다.

서해 5도 어민협의체는 이제 북한 수산물을 가져오는 데 그치지 말고 서해에 파시를 열어 수산물 교역 대상을 활어까지 확대하고, 나아가 어장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동시에 해조류 분야까지 확대해 남북 어민이 평화롭게 조업할 수 있게 교류를 확대할 것을 주창하고 있다.

해상파시는 서해평화수역의 상징이자 중국어선에 내준 서해 황금어장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일이다. 2004년 북중 어업협정이 체결된 이후 북한 수역으로 들어오는 중국어선의 수가 증가해 2014년 최대 1904척, 2016년 1268척이 남한 수역을 경유해 북한 수역에서 조업한 것으로 조사됐다.(한국해양수산개발원 2017.)

중국어선은 북한에 입어료를 내고 조업한다. 북한 수역 입어료에 대한 자료가 공식적으로 발표되고 있지 않으나, 과거 동해 해양경비안전본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척당 연간 3만 달러(2014년 기준)~4만 달러(2015년 기준)로 추산된다.

2014~2015년 중국어선의 평균 입어료를 고려한 북한의 입어료 수입은 3045만~6664만 달러로 추정 가능하며, 이는 북한의 수산물 수출액 3억 달러의 약 10~22%를 차지한다.

서해 5도 어민들은 남북이 공동으로 중국어선을 차단하고, 북측이 그동안 중국어선에 받던 입어료에 해당하는 만큼의 어업소득을 해상파시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평화수역이 조성되면 북한 어민은 NLL 이북 북한 수역에서 조업하고, 남한 어민은 남한 수역에서 조업하되, 북한이 잡은 수산물을 해상파시를 통해 남한에 유통시키자는 구상이다. 이 경우 북한의 어선이 낡아 남한에 밀리는 만큼, 북한을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 또, 개성공단에 어구를 만들던 남한 기업이 있으니 협업도 가능한 일이다.

박태원 연평도 어촌계장은 “평화수역, 공동어로구역이라 해서 무조건 잡으면 안 된다. 우선 어장 실태조사를 하고,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수산자원 보호구역을 설정하고, 남북이 각자 어로구역을 설정해 조업하게 한 뒤, 백령도와 연평도 인근 수역에 해상파시를 열어 교역하면 된다”고 말했다.

서해평화수역운동본부, 3단계 평화수역 방안 제시

서해평화수역운동본부가 제시한 3단계 평화수역 방안 중 1단계 서해5도 한바다 어장과 2단계 NLL 해상파시(백령도 바지선과 연평도 바지선) 안내도. 현재 우리 어민들은 연평어장과 백령과 대청해역 A,B,C어장에서 낮에만 조업할 수 있다. (사진제공 서해평화수역운동본부)

 

평화수역운동본부는 서해평화지대 조성을 위한 방안으로 3단계를 제시했다. 우선 1단계로 남한 정부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서해 5도 ‘한바다 어장’ 만들기를 제시했고, 2단계로 남북 수산업 경협을 통한 해상파시를 제시했으며, 이를 토대로 군사적 합의까지 포함하는 3단계로 나아가자고 했다.

1 단계는 우선 소청도 남단 B어장과 연평도 어장 사이를 연결하는 것이다. 이 구역은 현재 우리 어민들은 못 들어가고, 중국어선은 들어가는 곳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해상 경계선보다도 남쪽에 있는 해역인 만큼, 판문점선언의 남북 군사적 충돌 방지 합의에 따라 우선 ‘한바다 어장’부터 만들자는 게 어민들의 요구다. 해군이 쥐고 있는 어업 통제권 역시 남북 군사회담에 따라 해경으로 이양하는 게 과제다.

평화수역운동본부는 또, 우도를 중심으로 한 연평도 동방 해역의 경우 예성강과 임진강, 한강에서 나오는 민물과 모래, 플랑크톤으로 해양생태계의 보고를 이루는 곳인 만큼 이곳은 수산자원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어로행위를 제한하자고 했다.

또한 이 구역은 남북 해상 경계선의 비쟁점 수역인 만큼 태양광과 해상 풍력을 활용해 남북 평화에너지클러스터로 조성할 것을 제안했다.

2단계는 남북 경제 분야 합의사항으로 해상파시다. 백령도 앞과 연평도 앞은 남북 간 거리가 가까워 해양경계의 비쟁점 수역이다. 평화수역운동본부 비쟁점 수역에 바지선을 띄우고 해상파시를 열어 북한이 어획한 수산물을 남한이 매입하면 된다고 했다.

평화수역운동본부 관계자는 “서해 공동어로구역을 지정한다고 해서 남한 어민이 북한 수역에 들어가 조업하는 게 아니다.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조업하면 된다. 그 뒤 북에서 잡은 어획물을 남한에 유통시키면 되는데, 이 경우 서해 5도 어민이 구성한 조합과 지자체가 제3섹터 방식의 사회적평화기업을 설립해 해상파시를 운영하면 된다”고 말했다.

3단계는 전면적인 남북 평화수역인데, 이는 남북 간 해상 경계선을 도출할 수 있는 군사적 합의가 수반돼야한다. 남한과 북한은 연평도와 백령도 구간에서 해상 경계선에 차이를 보인다. 남한은 NLL을 경계선으로 주장하지만, 북한은 이 구간에서 더 아래를 주장한다. 남북 간 군사회담으로 경계선이 확정되면, 서해 전역에서 전면적인 조업과 교역이 가능할 전망이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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