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평론]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지음 |박규태 옮김 |문예출판사 | 2017.6.29.

결국 책읽기의 종착점은 고전이다. 비유하자면 가야산이나 북한산에 올랐다 하더라도 지리산이나 설악산에 올라 느낀 흥취에는 못 미친다. 재미있고 쉽게 풀어쓴 책이 필요 없다거나 가치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 책을 단계별로 읽어왔다면 마땅히 도전해야할 영역이 있는 법이다. 마치 가야산이나 북한산을 타면 지리산이나 설악산에 오르고 싶듯 말이다. 한 분야의 남상인 고전을 읽으면, 마치 지리산이나 설악산에 올라 보는 풍경만큼이나 인식의 지평이 확장되게 마련이다. 그러니, 읽을 수밖에, 그 어렵다는 고전을 말이다.

고전을 읽으면서 부딪치는 난감함 가운데 하나는 독자 스스로 중요 부분이 뜻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고, 한발 더 나아가 비판적으로 읽어야한다는 요구다. 특히 뒷부분의 요구를 충족하기는 일반 독자 처지에서 보자면 난망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충실한 각주다. 물론, 어떤 때는 각주가 본문을 읽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전체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제한된 부분에 집중하게 하거나, 지나치게 장황한 설명이 이해를 방해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충실하고 친절한 각주는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논쟁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게 한다. 이른바 비판적 독서에 상당히 큰 도움을 준다는 뜻이다.

최근 각주 읽기의 즐거움을 새삼 깨우쳐 준 책이 있으니, 박규태가 옮긴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다. 먼저 제목에 얽힌 주석을 보자. 본디 지은이가 생각한 제목은 ‘우리와 일본’. 출판사 측이 제안한 제목은 ‘연꽃과 칼’. 이 의견을 참고해 지은이는 ‘국화와 칼’로 제목을 정했다.

그러다 보니 지은이는 ‘국화와 칼’에 관한 글을 새로 써야 했고, 그게 이 책의 1장과 12장이란다. 책 제목의 상징성에 대해 많은 이는, 국화는 탐미적이고 섬세한 심미주의를, 칼은 군국주의적이고 공격적인 무력숭배를 뜻한다고 여긴다. 1장에서는 그런 의미가 강하다. 그런데 12장에서 국화는 자신의 정신적 자유를 스스로 제약하는 작위적인 의지를, 칼은 자기행위에 책임질 줄 아는 이상적 인간을 상징한다. 상징하는 바가 바뀌었는데도 이를 눈치 채지 못하고 관행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는 각주인 셈이다.

각 장의 첫 번째 각주는 그 장의 내용을 요약해놓았다. 책을 읽고도 정리되지 않은 독자는 이 부분을 제대로 읽으면 금세 윤곽을 잡을 수 있다. 내용이 복잡한 대목은 옮긴이가 각주에서 요약해줘 이해를 높여주기도 한다. 10장의 마지막 각주는 ‘일본적 덕의 딜레마’에 해당하는 주요 내용을 일곱 가지로 요약했다. 그 일부만 보자면 이렇다. (1) 일본인의 덕의 체계는 절대적 원리나 원칙에 입각한 것이 아니므로 일관성이 없다. (2) 일본인은 모순을 모순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3) 일본인은 상황윤리에 지배받는 경향이 많다,

지은이의 관점을 비판하는 각주도 흥미롭다. 베네딕트는 ‘온’을 기본적으로 변제 의무가 수반되는 빚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온 개념에는 자신이 누군가에게서 받은 온을 그 직접적 당사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돌려준다는 관념도 있다. 또한 베푸는 온, 받는 온, 온을 아는 것, 온을 갚는 것 등의 개념도 있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듯 지은이는 하나의 의무로서만 온 개념을 강조하는 우를 범했다. 일본인의 성윤리를 다룬 대목에서도 한계가 드러난다. 지은이는 일본인의 성에 대한 향락주의적 경향과 메이지 이후 권력이 국민에게 부과한 성윤리 규범을 살펴보면서 후자가 일본인의 국민성이라 말했다. 하나, 그것은 근대에 들어와 만들어진 전근대적 규범이라는 점은 인식하지 못했단다.

서양의 고전 번역 수준을 말하면서 각주의 학문적 가치를 말하고는 한다. 남이 해놓은 것을 칭찬하는 것이야 좋은 일이지만, 실제로 우리의 고전 번역이 그 지점에 이르렀는지는 반성해보아야 한다. 굳이 학문적 업적이 아니더라도 독자의 지적 수준을 높이는 각주의 필요성만이라도 공유했으면 좋겠다. 독자는 옮긴이가 각주에 쏟은 열과 성에 박수를 보내주었으면 한다. 그것이 있기에 우리가 그 고전을 제대로, 그리고 비판적으로 읽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높은 산에 오르려면 유능한 셀파가 있어야한다는 점을 기억해두자.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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