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미투(Me too) 열기가 한창이던 때, 한 인권단체에서 기획한 강좌를 들으러 갔다. 성폭력과 관련한 책을 출간한 기념으로 열리는 북토크 형식의 강의였다. 200여석의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강의실을 가득 채운 청중의 열기는 뜨거웠다. 나도 설레는 마음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책을 보며 강의 전 흥분을 가라앉힐 생각이었다. 그런데 도무지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조금 전 내 앞자리에 앉은 두 사람이 내 시선을 완전히 빼앗아버렸기 때문이다.

한 명은 짧은 단발머리에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머리카락을 제외하고 그가 입은 티셔츠부터 바지, 가방, 필통, 손목시계의 줄까지 모든 것이 분홍색이었다. 그 사람의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검은색 망사천이 발목까지 덧대어진, 일명 ‘샤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키 175센티미터 이상의 건장한 체격, 떡 벌어진 어깨, 마디가 굵은 손가락과 목둘레, 그리고 굵은 목소리까지. 아무리 봐도 그들은 완벽한 ‘남성’이었다.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대학교 행사에서 ‘여장 남자’를 보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웃음이나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행사용 콘셉트이었다. 일상에서 여장한 ‘상남자’들을 바로 눈앞에서 마주한 건 난생 처음이었다. 어쩌면 보고도 그냥 지나쳤을지 모르지만 내가 그들을 특별하게 인식한 적은 없었다. 혹시 잘못 본 게 아닐까. 보고도 믿기지 않아 몇 번이나 보고 또 봤다.

강의를 시작했다. ‘핫하다’는 페미니스트들이 줄줄이 나와 뜨거운 논쟁을 펼쳤다. 새로운 시선과 지식을 잔뜩 마주한 덕에, 머릿속이 과부하에 걸린 듯했지만 기분은 짜릿했다. 두 시간 동안 차를 타고 서울까지 간 보람을 느끼며 흐뭇해했다.

그런데 세 번째 강의에서 머리가 더욱 복잡해졌다. 강사는 “여성과 남성을 가를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지극히 평범한 질문을 던졌다. “성기 유무로 성별을 가를 수 있나요?” 나는 ‘당연히 그럴 수 없지.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성과 성적 지향이 있는데’ 하는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심코 내 앞자리에 앉은 두 ‘남성’을 바라보았다. 뭔가 깨달은 듯, 충격을 받아 온 몸에 힘이 들어갔다. ‘아,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부끄러움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성소수자. 나는 그들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아니면 트랜스젠더였다. 트랜스젠더는 태어날 때 가지고 있던 성별을 바꾸기 위해 호르몬주사를 맞고 성전환수술을 한 사람이거나 수술할 계획이 있는 사람이다. 세상엔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함께 갖고 태어난 사람도 있고, 둘 다 없는 사람도 있다. 여성의 성기를 가졌지만 수염이 나거나 근육이 발달할 수도 있고 반대로 남성의 성기를 가졌지만 유방이 나오고 수염이 전혀 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그들의 존재가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이들이 차별받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알고 보면 내게도 양성애적 성향이 있을지 모르지만 여성인 나는 이미 남성과 결혼을 했기에 굳이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전, 나는 앞자리의 사람들을 겉모습만으로 내 마음대로 남성이라 규정했다. 그들이 ‘여성스런’ 복장을 한 것을 두고 별나라에서 온 외계인 바라보듯 신기해했다. 그동안 분홍색은 여성의 색이 아니라 그냥 하나의 색일 뿐이라고, 한 사람의 개성을 여성스럽거나 남성적인 것이라 규정하면 안 된다고 얼마나 침 튀겨가며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던가. 대충 아는 것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 죄 없는 사람들에게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시선을 던져왔다고 생각하니 답답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성소수자에 대해 주워들은 이야긴 많아도 제대로 알기 위해 노력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이번에도 역시 책에서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내가 사는 지역의 도서관에선 차를 타고 멀리 가더라도 원하는 책을 대부분 찾을 수 없었다.

서점에서 책들을 살펴본 나는, 내 무지를 깨닫고 많이 놀랐다.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하는 심정으로 한 권 한 권 읽어나갔다. 7월 14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는 퀴어문화축제를 앞두고, 성소수자와 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입문서 세 권을 소개한다.

무지개 성 상담소
| 동성애자인권연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한국성소수자문화인권센터 지음 | 양철북 펴냄

‘무지개 성 상담소’는 20여년 동안 청소년 성적소수자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 친구, 선생님 등 많은 주변인을 만나 상담해온 이들이 함께 썼다. 동성애와 ‘동성연애’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커밍아웃(=성소수자가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일), 아웃팅(=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이란 용어가 낯선 이들이라면, 성소수자를 이해하는 첫 발을 내딛는 데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된다.

흔히 갖기 쉬운 편견들, 예를 들어 ‘남자아이를 여자아이처럼 키우거나 혹은 그 반대로 키우면 동성애자가 된다’ ‘동성애는 선천적이며 유전된다’ ‘동성결혼을 허용하면 가족이 붕괴된다’ ‘동성애를 하면 에이즈에 걸린다’ ‘청소년기 동성애는 일시적 현상으로 성인이 되면 없어진다’는 말들이 거짓이라는 것을 많은 근거를 들어 밝힌다.

“이성에게 정서적, 육체적, 감정적으로 끌리는 이성애가 정신적 문제가 아니듯 동성에게 끌리는 동성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심리검사를 해도, 정신과 상담을 받거나 기계적인 검사를 통해서도 동성애자를 가려낼 수는 없습니다. 동성애자인지 아닌지 분명히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으며,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해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고 관찰해야 알 수 있습니다”(53쪽)

책의 절반은 성적소수자인 청소년이 상담을 요청했을 때 대응할 방안을 제시하는 데 할애했다. 동성 친구를 좋아하게 돼 혼란스러워하고 자신을 싫다고 말하는 청소년에게 ‘동성 친구에 대한 감정을 소중히 여기도록 격려’하고 ‘성정체성 탐색을 독려하며 동성애에 대한 편견 없는 정보’를 나누는 것이 좋다고 제안하면서 실제로 해줘야 하는 말과 피해야하는 말까지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놓는 식이다. 다양한 질문과 답변이 나와 있어 청소년 상담사나 상담교사들이 참고하기 좋은 것은 물론, 우리 안에 있는 궁금증과 오해를 짚어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커밍아웃 스토리
| 성소수자부모모임 지음 | 한티재 펴냄

역지사지만큼 이해를 돕는 게 또 있을까. 어느 날 내 자식이 게이나 레즈비언이라고 커밍아웃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또는 트랜스젠더라고 고백을 한다면? ‘커밍아웃 스토리’는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와 당사자들이, 서로 커밍아웃을 주고받은 순간이나 그에 대해 고민해온 과정을 쓴 책이다.

책에 나온 열두 부모들 중 기쁘거나 기꺼운 마음으로 자녀의 커밍아웃을 마주한 부모는 없었다. 자녀의 상황을 받아들이기까지 대부분 당혹스럽고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커밍아웃을 받은 부모들은 대개 충격, 부정(거부), 죄책감, 감정표출, 결단, 참된 용인, 이렇게 여섯 단계를 거치게 된다고 한다. 충격과 부정 단계에서 자녀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한다.

“나는 아들에게 아직 어려서 성 정체성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 남자아이들과 친하고 싶은 마음에 동성애자로 착각한 것 같다고 말도 안 되는 말을 늘어놓았다. 아이 친구 탓을 하기도 하고, 어릴 때 얼마나 씩씩했는지 사진도 보여주고, 그래도 확신을 하는 아들에게 결국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말까지 하게 되었다. 나는 그것이 곧 아들 자신을 혐오하는 말로 들릴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75쪽)

그나마 책에 나온 부모들은 ‘성소수자부모모임’에 참여하면서 힘을 얻고 용기를 낸 이들이 대부분이라 이들의 어려웠던 상황과 자녀를 수용하는 과정을 읽으며 공감과 감동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성소수자 당사자들의 이야기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아직 부모에게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밝히지 못하기도 하고, 커밍아웃을 했다가 잔인한 말을 들은 뒤 거리를 둔 채 살고 있기도 한다. 이들은 부모의 어려움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하나같이 언젠가 부모가 자신을 이해해주길 기다리고 있다.

“성소수자들이 자기 정체성을 받아들이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렸듯이 부모와 가족에게도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성소수자들처럼 성소수자의 가족들에게도 자기 고민을 털어놓을 지지자가 필요하다는 것, 부모도 상처받는 존재이고 완전하지 않다는 것. 이런 걸 생각하게 되니 가족들을 이해하기가 좀 쉬워졌다”(221쪽)

모든 사례에 절절한 아픔과 고민과 사랑이 담뿍 담겨 있다. 옴니버스 영화를 보는 것처럼 한 편 한 편 읽는 사이 성소수자와 가족의 입장을 깊이 이해하게 된다.

LGBT+ 첫걸음
| 애슐리 마델 지음, 팀 이르다 옮김 | 봄알람 펴냄

‘젠더퀴어’ ‘에이젠더’ ‘팬로맨틱’ ‘시스젠더’ ‘바이젠더’ ‘에이섹슈얼’…. ‘커밍아웃 스토리’에 나오는 이 단어들을 이해하기 어려워서 ‘LGBT+ 첫걸음’을 몇 번이나 들춰봤는지 모른다.

이 책에 따르면, 젠더퀴어는 ‘본인의 젠더(=성별이나 여성성, 남성성 같은 사회적 관념)가 사회의 이분법적 개념에서 벗어나 있거나, 이를 넘어선 사람’을, 에이젠더는 ‘젠더가 없거나 자신의 젠더 개념을 거부하는 사람’을, 팬로맨틱은 ‘어느 젠더에게든 끌림을 느낄 수 있거나, 모든 젠더에게 끌림을 느낄 수 있는 것’을 뜻한다.

이 책은 여성과 남성이라는 젠더 이분법에 익숙한 사회에서 재현되지 못하거나 잘못 재현되는 LGBTQIA+ 정체성과 용어 입문서다. 비슷하면서 다르고 복잡해보이기만 한 용어들 사이에서 길을 잃을까 걱정되다가도 실제 사례와 쉽고 친절한 해설 덕분에 이해하는 데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용어를 단박에 이해한다면, 당신은 천재! 책을 읽은 후 지금 우리가 자신과 타인을 규정하고 있는 생각 대부분이 편견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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