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을 자주 마신다. 책상이나 침대 머리맡엔 언제나 물이 가득 담긴 컵이 있어야 마음이 놓이고, 외출할 때도 물병을 챙긴다. 몸이 필요로 하는 건지, 습관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유독 컵에 욕심이 많다. 컵은 살짝 툭 쳤을 때 쓰러지지 않을 만큼 묵직해야한다. 컵이 작으면 자주 물을 뜨러 가야해 번거롭고, 너무 큰면 마실 때 무거워 불편하다. 답례품으로 많이 사용하는 보통 크기의 머그컵은 안정감이 있어 좋지만 불투명해서 커피 이외의 음료를 담았을 때 그리 예쁘지 않다. 나는 내 맘에 쏙 드는 컵을 구하기 위해 마트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다.

지난해 드디어 ‘인생 컵’을 찾았다. 외국 가구제조 회사가 만든 것인데 묵직한 컵이 한 개에 900원밖에 하지 않았다. 게다가 강화유리로 만들어 웬만큼 뜨겁거나 찬 것을 부어도 끄떡없었다. 투명해서 물이나 맥주, 주스를 담기에도 좋았다. 똑같은 컵 네 개를 사놓고는 거의 매일 이 컵을 사용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컵 때문에 떠들썩해졌다. 아무도 건드린 사람이 없는데 멀쩡한 컵이 스스로 폭발한 것이다. 컵만이 아니다. 같은 회사에서 만든 유리선반도 순식간에 산산이 부서졌다. 이 장면은 CCTV 영상에서도 또렷이 나왔다. 역시 선반을 건드린 사람은 없었다. 귀신이 지나가기라도 한 걸까.

유리의 주된 성분은 산소와 규소로 된 이산화규소다. 돌이 풍화된 모래 속에는 이산화규소의 결정형인 석영이 한가득 들어있다. 재료가 풍부하니 이를 잘 가공하는 법만 익히면 얼마든지 필요한 물건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이산화규소는 희한한 특징이 있었다. 물은 온도에 따라 고체와 액체, 기채로 변신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산화규소는 일단 한 번 녹으면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지 못한다. 결정을 이루지 못하고 그냥 굳은 상태, 이것이 유리다. 옛 로마인들은 이산화규소를 녹여 만든 투명한 유리잔에 와인을 담아 마셨다. 이전까진 맛과 향으로 와인을 마셨지만 이때부턴 와인의 색과 투명도도 중요해졌다. 하지만 이때의 유리는 기포가 많아 쉽게 깨어졌다. 일부 부유한 사람만 사용하던 유리잔은, 1840년대 유리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돼 값이 싸지면서 대중화됐다.

이 회사에서 판매하는 컵과 선반의 재료는 강화유리다. 강화유리는 일반 유리를 용도에 맞게 절단해 섭씨 700도 가까운 열로 가열한 뒤 압축한 차가운 바람을 유리 표면에 쐬어 급랭해 만든다. 유리 겉면은 차갑게 식어 바짝 수축하는 반면, 안쪽은 뜨거운 열기로 여전히 팽창하려는 힘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안쪽도 천천히 식는다. 겉면 유리는 더욱 수축하고 안쪽 유리도 서로 밀착해 조밀한 상태로 굳는다. 이 강화유리는 일반 유리에 비해 강도가 5배에서 10배나 세고, 고온과 저온을 미리 경험한 터라 내열성도 좋다.

일반 유리는 한쪽 면에 충격이 가해지면 충격을 받은 면에는 휘어져 줄어들려는 힘이, 뒷면은 늘어나려는 힘이 생겨 균열이 생긴다. 하지만 강화유리는 모든 표면에 똑같이 쪼그라들려는 힘이 있어 쉽게 깨어지지 않는다. 강화유리의 ‘깨어지지 않는 아름다움’은 여기서 나온다.

하지만 강화유리의 가장 큰 결점도 여기서 나온다. 어느 한 군데라도 상처가 생기면 전체 균형이 깨지면서 산산조각 나는 것이다. 질이 좋지 않은 유리를 사용했거나 기포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면 쉽게 깨어질 수 있다. 예고도 없고 징조도 없다. 한번 ‘퍽’하면 형태도 없이 부서져버리고 만다.

컵이 깨어졌다는 뉴스를 여러 번 돌려봤다. 몇 번이나 버릴까 망설였지만 내 책상엔 여전히 이 컵이 놓여 있다. 내 컵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크지만, 물을 마실 때마다 찜찜한 건 사실이다. 버려? 말아? 인생 최대의 고민을 만났다. 인생 컵이 요물로 추락하고 있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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