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철 객원논설위원

신규철 객원논설위원

부평구 삼산동 주민들이 촛불을 들었다. 지난 11일에 이어 21일에도 촛불집회를 열었다. 주민 1000여명이 ‘특고압선 설치 반대’ 피켓과 촛불을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한전은 2000년대에 삼산택지지구 지하에 15만 4000V의 고압선을 매설했다. 이를 위해 인천시 허가를 받아 지하 8m 깊이에 전력구 터널을 설치하는 공사를 했다. 이때는 주민들이 입주하지 않았기에, 주민들은 최근까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지금은 이곳에 3000여 세대가 거주하는 아파트단지와 학생 2000여명이 다니는 초등학교와 유치원이 있다.

그런데 한전은 2015년부터 34만 5000V의 특고압선을 추가 매설하는 ‘수도권 서부지역 전력구 공사’를 소리 소문 없이 추진했다. 이는 서울ㆍ경기북부지역 정전 시 전력 확충을 위한 것이다.

이 문제가 이슈가 된 것은, 다른 구간은 지하 36~70m 깊이로 새로운 전력구 터널을 설치하는데 삼산동 구간은 기존 8m 터널을 이용하는 것으로 계획됐기 때문이다. 전자파 피해를 우려한 삼산동 주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간 이유다.

게다가 인천시는 이 전력구 공사 허가권이 산업통상자원부에 있다며 손놓고, 부평구는 기존 관로를 이용하는 것이기에 구의 도로점유 허가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침묵했다. 한전은 환경영향평가 대상이 아니기에 주민공청회 개최 의무가 없다며 밀어붙였다. 환경영향평가 대상 사업은 길이 10km이상, 34만 5000V 이상 지상송전선로와 76만 5000V 이상 옥외변전소로 규정돼있다. 지중화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부천지역 주민들의 투쟁소식을 뒤늦게 접한 삼산동 주민들은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한전은 전자파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고, 전자파 법적 기준인 833밀리가우스(mG)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출연기관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고압송전선로 전자파에 대한 노출범위 설정 방안’ 연구보고서를 보면, ‘15만 4000V 고압송전선로로부터 주거지에 미칠 수 있는 자기장 노출영향 범위는 30~55m, 34만 5000V 고압송전선로는 70~90m로 예측’됐다. 또한 여러 역학적 연구에 의해 4mG 이상의 자기장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소아백혈병 등과 같은 암 질병이 발병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국제암연구위원회는 지난 2002년 자계의 발암 등급기준을 적용, 고압송전선로 자기장은 잠재적으로 인체에 암을 일으킬 수 있는 매개체로 분류했다. 세계보건기구는 ‘전자파가 무해하다는 증거가 있을 때까지 예방적 접근방법을 중간정책 수단으로 채택’하기를 권고하고, 국가별로 전자계 저감을 위한 적합한 예방적 조치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한전의 주장은 일방적인 것이다.

삼산동 주민들이 더욱 분노하는 것은 기존에 매설된 15만 4000V 송배전선로가 아파트와 1m밖에 떨어지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34만 5000V 송배전선로를 추가로 매설하겠다니 불안감은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삼산동 주민들은 특고압선을 다른 구간처럼 지하 30m 이상으로 매설하거나 우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추가 공사비 문제가 핵심인 만큼 정부와 한전의 결단이 필요하다. 또한 시민건강권이 달려 있는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박남춘 인천시장 당선인이다. 적극 나서야 한다.

아울러 고압송전선로 지중화 사업도 주민공청회 대상이 되게 환경영향평가 기준을 바꿔야한다. 관련법 개정을 위해 지역 국회의원들이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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