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지난달 26일 아일랜드에서 낙태 금지 헌법 조항을 두고 국민투표가 진행됐다. 그 결과 66%라는 높은 찬성률을 기록하며 해당 조항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이 개헌으로 아일랜드에서는 임신 12주 이내 중절 수술에 대해선 제한 없이, 임신 12~24주 기간엔 태아의 기형 또는 임신부의 건강 여부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새로 마련할 예정이라고 한다.

임신중절권은 한국에선 이른바 ‘낙태죄’라 불린다. 분만기 이전에 태아를 인위적으로 모체 밖으로 배출하거나 모체 안에서 살해했을 때 처벌이 성립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최근 낙태죄 폐지 여부가 다시 헌법재판소 심판대에 올랐다. 낙태죄 폐지 요구가 어제 오늘 일이 아닌 상황에서 이는 매우 주목할 만한 사안이다.

논의 과정에서 낙태죄 유지를 주장하는 법무부 의견 중 한 표현이 문제가 됐다. 법무부는 낙태를 원하는 여성에 대해 “성교는 하되 그 결과인 임신과 출산은 원치 않는다”라고 몰아세웠다. 그러나 성교란 반드시 임신을 목적하는 절차가 아니다. 그렇기에 피임교육, 피임기구, 각종 피임시술이 존재하는 것이다. 게다가 여러 피임방법이 100% 피임을 보장하지 않는 한 문제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임신과 출산이 단지 ‘아이를 갖고 아이를 낳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인 이상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국가 입장에서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임신과 출산이란 단지 ‘인구 증가’의 의미만 지니는 것은 아니다. 국가 차원에서는 사회 구성원의 임신과 출산으로 태어난 아이 역시 사회와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성장할 것을 전제하고 ‘임신과 출산’을 장려한다.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고 해서 저절로 그러한 인간으로 성장하지는 않는다. 아이가 큰 문제없이 성장하게 돕기 위해 그에 따른 복지 혜택과 경제적 지원이 뒷받침돼야한다.

즉 총체적 의미에서 ‘임신과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국가적 지원이 수반돼야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국가는 이러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주지 못하거니와, 이것을 해결해줄 수 있다고 해서 낙태죄를 묻고 여성의 신체를 통제하는 것에 신빙성이 생긴다고 말할 수도 없다.

미셸 푸코는 성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 통치의 한 방법으로 인구 통제와 성을 관리하는 방식이 수행돼왔다고 본다. 국가가 시민들의 성 생활과 습관을 통제하는 것은 ‘본래적’인 것이 아니라, 어떠한 목표에 의해 ‘발생’된 규범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발생된 규범은 언제든 수정되거나 폐기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낙태죄의 목적이 여성의 육체를 통제함으로써 ‘여성의 자유’(정희진이 ‘내 몸은 나의 것이 아니라 나’라고 했던 말을 떠올려본다)를 빼앗는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그러한 헌법 통제가 ‘여성 육체의 통제’라는 인식적 파급 효과를 낳을 가능성은 적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기억하자. 누군가를 통제하는 상황에서 어떤 권력이 발생했다면 언제나 그 권력은 저항을 함께 수반한다는 것을. 낙태죄 폐지 역시 필수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었던 저항은 아닌가.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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