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가 만 원에 여덟 개~ 만두 사세요~”

며칠 전, 낯선 동네에서 늦은 밤까지 회의를 했다. 누군가 야식을 먹자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가 배달음식은 싫다고 했다. 사다리타기를 해서 걸린 사람이 근처 마트에서 먹을 걸 사오기로 했다. 아이쿠야, 내가 걸렸다.

마트 식품매장 쪽으로 내려갔을 때 만두를 사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만두라면 사족을 못 쓰는 터라, 나도 모르게 이끌리듯 매대 앞으로 갔다. 고기와 채소를 다져 넣은 소에 새우 한 마리를 통째로 넣고 삼각형 모양으로 납작하게 만든 만두가 보였다. 이렇게 생긴 만두를 예전 전주 한옥마을에 갔을 때 맛있게 먹은 적이 있다. 마트 안쪽으로 들어갈 것도 없이 이걸 사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두 팩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만두 맛있어요.” 시원시원한 목소리에 괜히 기분이 좋았다. 만두를 받아들고 돈을 건네면서 그제야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심혜진.

어라! 이 사람, 내가 아는 사람이다. 꼭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누군지 얼른 생각이 안 났다. “어~ 저기 뭐더라… 맞다! 저 그 영화 봤어요! 두 번 봤거든요”

바로 옆에서 등을 지고 앉아 있던 마트 계산원이 그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는 내 입에서 영화 제목이 나오길 기다리는 눈치다.

“아, 기억났어요. 공동정범”

‘공동정범’은 올해 초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2009년 1월 20일, 용산 재개발에 반대하던 철거민이 남일당 건물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며 경찰과 대치하던 중 화재로 철거민 다섯 명, 경찰 한 명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 옥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재판에서 공동정범으로 몰려 수감되었다가 출소했다. 그들이 영화 ‘공동정범’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서 만두를 건네는 사람도 그 중 한 명이다.

영화 속에서 그는 외모와 상황이 가장 많이 바뀐 인물이었다. 그는 사고 당일 옥상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등 큰 부상을 당했다. 몇 년 후엔 사고 직후보다 살도 많이 빠지고 표정도 훨씬 좋아졌다. 하지만 부상 후유증과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사고 트라우마로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었다. 영화가 끝난 후,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고 걱정도 되었다. 그렇게 큰 사건의 중심인물을, 이렇게 일상에서 마주치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신문 기사로, 방송 뉴스로, 영화 스크린으로 멀찍이 접해온 무수한 일들이 실제론 나의 일상과 아주 가까울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영화를 두 번 봤어요?” 그가 반가운 듯 말했다. 이어서 “감독님 아픈 거 알아요?”라고 물었다. 영화를 만든 김일란 감독은 지금 암 투병 중이다. “너무 말라서…” 그가 감독을 걱정했다. 사무실에 돌아와 만두 팩을 열어보니, 여덟 개 만 원이라던 만두가 아홉 개 들어 있었다.

며칠 뒤 다른 일로 그 마트에 갔다. 그는 만두를 빚고 있었다. 사고를 겪은 몸으로 그렇게 서서 일하는 게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평생 장사만 하고 살아 다른 건 할 수가 없다던 그. 어쩌면 몸보다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마음이 더 힘들지 모른다. 많은 걸 물어보고 싶지만, 아직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용산참사의 진상은 밝혀졌나? 과잉진압 한 것, 누가 책임졌나? 김석기 전 경찰청장은 발 뻗고 잘 살려나? 이걸 먼저 궁금해 하기로 했다. 그리고 응원하기로 했다. 다음 번 만두를 사러 갈 땐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이라고 작게 외쳐볼까 싶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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