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철 객원논설위원

구본무 회장 타계로 LG그룹 가계도가 화제다.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으로부터 4세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정도 경영’의 전통이 지켜지고 있다고 한다. 정도 경영은 편법이나 불법을 하지 않는 경영을 말한다. 경영권을 승계할 구광모 상무의 상속세는 최대 1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구 상무도 이러한 가족의 전통을 지켜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와 반대로 또 다른 가족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막내딸인 조현아의 광고대행사 직원 물벼락 갑질로 촉발한 대한항공 수사는 밀수ㆍ탈세 의혹으로 번져나갔다. 게다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500억원대 상속세 탈루 혐의로 검찰에 고발돼 한진그룹 등이 압수수색 당했고, 부인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은 가정부ㆍ경비원 등 갑질 폭행으로 불구속 입건돼 곧 경찰에 출석할 예정이다. 4년 전 ‘땅콩회항’으로 물의를 일으킨 조현아는 이번엔 필리핀 가사도우미 불법 고용으로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 출석했다.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은 인하대 부정 편입학 문제로 시민단체와 동문들로부터 특혜 의혹을 받고 있다. 가족 전체가 범죄자가 될 형편이다. 이 정도면 범죄자 소굴이라 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이 있다. 자식들은 부모에게 보고 배운 대로 행동한다. 한진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은 아들인 조양호 회장에게 어떤 전통을 유산으로 물려줬을까? 일반 사람과 다르다는 특권과 특혜 의식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요즘 말로 하면 ‘갑질’이다. 갑질이 전통인 한진 오너 일가와 유사한 사례가 최순실의 가계도가 아닌가 싶다. 최순실의 아버지는 영생교 교주인 최태민이다. 최태민 목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종교적 관계의 영향력으로 부와 권력을 쌓았다. 이것을 보고 배운 최순실 또한 대통령의 눈과 귀를 장악해 전횡을 일삼았다. 그리고 딸 정유라를 이화여대에 부정 입학시켰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은 지난 1998년 인하대 경영학과에 3학년으로 편입학했다. 그 과정은 편법이었다. 당시 인하대교수회 등의 고발로 이를 조사한 교육부는 조원태의 외국 대학 학점 등이 편입학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음을 확인하고 당사자와 학교 관계자를 징계하라고 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힘없는 직원들만 문책당하고 고발한 교수회 의장은 해고됐다. 그리고 조원태는 2003년에 졸업했다. 대한항공 측은 여전히 거짓 해명으로 일관하고 있고, 인하대는 자료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교육부는 침묵하고 있다.

인하대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정석인하학원의 이사회는 15명으로 구성돼있다. 이중 조양호 이사장과 조원태 이사를 비롯해 한진 관계자가 13명이다. 학교법인 또한 족벌경영체제다. 가장 높은 도덕성을 갖춰야할 교육기관이 가장 부도덕한 재벌 일가에 소유당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인천지역 시민단체들과 인하대 교수회, 동문, 학생들이 ‘한진그룹의 족벌갑질경영 청산과 인하대 정상화를 위한 대책위원회(준)’를 결성했다. 이들은 오는 31일에 ‘공영형 사립대’를 주제로 강연회를 연다. ‘공영형 사립대’ 정책은 문재인 대통령이 사립대에 만연해있는 족벌경영을 막고 대학을 정상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한 공약이다. 인하대 구성원들과 지역 시민사회는 교육부에 특별 감사를 요청하고 범시민 서명운동을 전개해 조양호이사장 일가의 퇴진을 요구할 예정이란다.

이제 세상이 많이 변했다. 촛불혁명은 재벌들의 부정부패와 특혜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었다. 부정부패의 말로는 비극적이다. 조원태 사장은 정유라의 뒤를 밟지 않길 바란다. 모든 잘못에 용서를 구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길 바란다. 그리고 인하대를 공영형 사립대로 전환하는 것이 그나마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는 길임을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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