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평론]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과 ‘이성과 감성’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을 잇달아 읽었다. 그녀의 작품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은 ‘오만과 편견’을 먼저 읽고 막 ‘이성과 감성’을 마쳤다.

한 작가의 작품을 뭉뚱그려 읽으면 여러모로 흥미롭다. 한 작품만으로 이해되지 않던 사유의 방식이나 작풍(作風) 등을 눈치 채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그녀의 작품은 대부분 사랑과 결혼을 주제로 한지라 대중성도 띠는데, 이 점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면 상당히 재미있는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흔히 사랑은 사회와 제도에서 독립한, 말하자면 낭만적인 그 무엇의 순수한 증류라 여기기 쉽다. 이 부분이야말로 가장 개인적이고 내밀한 영역이라 여겨서 그럴 터이다. 이런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는 데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읽는 묘미가 있다.

‘이성과 감성’에서 배다른 오빠는 두 여동생의 결혼 대상을 언급할 때마다 남자의 경제 형편을 지겹도록 뇌까린다. 이 인물뿐만 아니다. 두 여주인공을 빼놓고는 강박적으로 결혼이 낭만적 사랑의 결과이기보다는 재산 보호나 증식의 수단으로 여기는 내용이 가득하다. 어느 정도냐면, 읽는 이가 짜증이 날 정도라 보면 된다.

이유가 뭘까. 한마디로 돈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 근대 체제의 사랑은 어쩔 수 없이 속물성을 보여준다고 그녀는 말한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영국의 경제사를 탐구했기에 맑스의 ‘자본’이 나왔다면, 바로 그 영국의 청춘들이 벌이는 사랑의 행각을 그녀가 면밀히 관찰하고 기록했기에 근대적 사랑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근대적 사랑의 한 특징으로 낭만적 사랑에 대한 묘사 또한 그녀의 작품에 잘 나온다. 상대의 매력을 느낄 때 사랑이 싹튼다는 설정은, 가문끼리 결혼을 결정했던 구시대와 큰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치가 무도회다. ‘이성과 감성’에서는 무도회의 규모가 작은데, ‘오만과 편견’에서는 상당히 커진다.

춤을 매개로 서로 맞춤한 이성을 찾는다는 설정은 근대초기의 연애소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도 두 사람이 영국식 춤을 함께 추며 연정을 품는 장면이 나온다.

이른바, 자유연애도 알고 보면 체제의 산물이니, 구시대의 억압에 맞서야했다. 베르터는 자살해야했고, 춘향이는 옥에 갇혀야했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둘 다 죽었다. 지금은 당연한 것이 그때는 쟁취해야할 그 무엇이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또 다른 지적 즐거움이다.

제인 오스틴 작품의 매력은 보편적 사랑의 방정식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 내용은 작품 제목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다.

‘오만과 편견’은 사회적 지위와 부가 우위에 있는 남성이 보이는 오만한 태도와 이에 대해 여성이 느낀 편견을 다룬다. 이 길항작용이 풀려 사랑의 감정이 싹트는 것은 바로 오만이 자긍심으로, 편견이 이해로 바뀔 때다. 아마도 지금 열애하는 청춘이라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금세 이해할 듯하다.

‘이성과 감성’ 역시 제목에 그녀가 발견한 사랑의 방정식이 녹아 있다. 사랑을 대하는 태도에는 이성적인 것이 우월한 것과 감성적인 것이 우선인 경우가 있을 터다. 그녀는 두 자매의 성격과 사랑해나가는 장면에서 이 점을 두드러지게 대비한다.

무엇이 나을까? 이 작품은 반전이 거듭되는지라, 앞부분에서 어느 정도 결정했더라도 뒤에서는 판단이 바뀔 수도 있다. 전반적인 작품 흐름으로 보면 실연한 두 자매 가운데 이성적인 특징이 강한 언니가 원했던 결혼을 마침내 이뤄내는 거로 보면, 작가는 이성에 더 방점을 찍은 듯하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읽으며 어느 작품이 고전의 반열에 오르나 다시 확인했다. 그 시대의 특수성을 예리한 감수성으로 채굴해내되, 시대를 넘어서는 인간 감정의 보편적 특성을 드러내는 것. 기실, 이런 작품을 쓴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거꾸로 이런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가. 소재의 특수성이나 당대의 문제 상황을 다루었다 해서 화제가 되는 오늘과 크게 대조된다.

이제, 책상에는 ‘에마’와 ‘설득’이 놓여있다. 그녀가 두 작품으로 나에게 무엇을 설득하려할까? 즐거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긴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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