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선미 인천여성회 회장

홍선미 인천여성회 회장

‘여성혐오는 공기와 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화됐을 때만 우리는 공기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안다’ 여성학자 정희진이 한 말이다. 여성혐오를 공기처럼 일상에서 늘 마주한다는 얘기다.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주변 상가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살해당했다. 범행 대상을 기다리던 범인은 남자 6명을 보내고 그 다음에 온 여성을 살해했다. 범행 이유는 “여자들이 자기를 무시했다”였다.

당시 일부 언론은 ‘조현병에 의한 살인사건’이라고 전문가들을 불러놓고 떠들어댔다. 많은 여성이 분노했다. 억울한 죽음을 추모하며 강남역 10번 출구로 모였고, ‘여성혐오를 멈추라’고 외쳤다. 여성혐오가 공론화됐고, 논쟁도 거세졌다. 그리고 수많은 여성의 미투(#Me Too) 운동으로 이어졌다. 아프지만 말하고 소리쳐 성평등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행동이다.

지난 17일 ‘강남역 살인사건’ 2주기를 맞아 전국 각지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성차별ㆍ성폭력 끝장’ 집회가 열렸다. 인천에서도 ‘517분 이어말하기 인천행동’이 구월동 로데오거리에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피해자를 추모하고 #미투 말하기를 진행했다.

아울러 지난 1월 발생한 ‘부평역 인근 화장실 폭행사건’의 피해자를 돕기 위한 모금과 ‘젠더폭력 방지와 피해자 지원 조례’ 제정 서명운동도 펼쳤다. 부평역 인근 화장실 폭행사건 또한 여성혐오 폭행사건이다. 부평역 인근 편의점에서 일하던 아르바이트 여성을 화장실까지 쫓아가 폭행했고, 범행 이유는 “자신을 경멸하듯 쳐다봤다”였다.

성차별과 성폭력은 여성들 대부분의 경험이며, 나 역시 당사자다. 아직도 집에 갈 때 지름길을 놔두고 먼 길을 돌아서 간다. 20대 때 술 취한 낯선 남자가 골목길에서 나를 잡아챘고, 미친 듯이 소리쳐 겨우 상황을 모면해 살아남았다. 한동안 엄마가 데리러 나와야만 집에 갈 수 있었다. 중ㆍ고교생 시절엔 버스 안에서 치한을 만나기 일쑤였고, 심지어 대낮에도 길을 걷다 마주한 노인한테 성희롱을 당하기도 했다.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그 노인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뚜렷하다. 그때는 잘 몰랐다. 나만 겪는 일, 내가 잘 못한 일, 재수 없게 걸린 일로 여겼다.

그러나 이제 깨달았고, 꾹꾹 참고 묻어온 것들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우연히’ 살아남아 성차별 반대, 여성혐오 반대를 외칠 수 있어 다행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대를 이어 내려온 뿌리 깊은 성차별 의식, ‘82년생 김지영’을 보면서 만연해있는 남존여비의 실체를 공감했다. 사회적 소수자 차별과 배제는 혐오 표현으로 더욱 공고해진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혐오 표현은 역사적으로 부적절한 처우와 관련이 있거나 현재의 사회적 불이익과 관련 있는 특성이 있어, 차별을 받는 소수자(집단)에게 가해진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수자에게는 특정 발언이 기분 나쁠 수 있지만, 남성혐오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혐오뿐 아니라, 여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혐오, 그리고 여성혐오 속에 가해지는 자기혐오까지, 여성혐오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평등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행동하는 것이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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