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만 되면 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 벌써 넉 달째다. 소리를 멈추는 유일한 방법은 먹을 걸 넣어주는 것. 어쩔 수 없이 야식으로 뱃속을 잠재운다. 먹는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밤늦게 먹고 나면 치우기가 몹시 귀찮다는 점이다. 며칠 전엔 시장에서 사 온 찐만두를 먹고 나서 다음날 아침에 치운다는 것이 그만 꼬박 이틀을 넘기고야 말았다. 그 사이 간장을 덜어 놓은 그릇엔 네모난 소금 결정이 생겼다. 뚜껑을 덮어 놓지 않아 간장의 물이 증발해, 물속에 숨어 있던 소금이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어지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물질을 이루는 분자들은 저마다 고유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서로 들러붙는다. 원자들 사이의 당기는 힘 때문이다. 분자나 원자들이 모여 일정한 공간적 배열을 이룬 것을 결정이라 부른다. 소금 결정은 깍두기처럼 정육면체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소금 결정은 ‘분자’들의 집합이 아니다. 소금은 분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소금분자란 엄밀히 말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우선 분자에 앞서, 물질을 이루는 기본 입자는 원자다. 원자는 크게 원자핵과 전자로 나뉜다. 원자핵은 아주 무거워서 원자 무게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원자핵에 비해 아주 작고 가벼운 전자는 원자핵의 바깥에 퍼져서 원자핵 주위를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원자핵은 +극을, 전자는 -극을 띠는데 모든 원자의 양성자와 전자의 수는 언제나 똑같다. 그래서 원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을 띠며, 이 상태에서 가장 안정하다.

그런데 어떤 원소들은 -를 띤 전자들이 자주 바깥으로 외출을 시도한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게 나트륨(Na)이다. 나트륨은 전자 ‘한 개’가 자꾸 떨어져나가 다른 원자에 들러붙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를 아무 원자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원소 중에는 전자를 주기보다 받기만을 원하는 것들도 있는데 그 중에서 염소(Cl)는 딱 한 개의 전자를 받고 싶어 한다. 이런 천생연분이 또 있을까. -를 띤 전자를 염소에게 주고 나면 중성이었던 나트륨은 +를 띠어 Na+가 되고, 중성이었던 염소는 -가 하나 늘어 Cl-가 된다. 준 쪽이 +가 되고 얻은 쪽이 -가 되는, 참 신기한 일이다. 이렇게 전자들의 이끌림으로 나트륨과 염소가 만나면 염화나트륨(NaCl)이 된다. 염화나트륨은 소금의 주성분이다.

이제 분자로 넘어갈 차례다. 분자는 원자들이 모여 이뤄진 입자로 자연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순수한 물체의 최소 단위다. 수소원자와 산소원자가 모여 물 분자를 만드는 식이다. 분자는 고체, 액체, 기체 상태로 상태변화가 가능하며 분자를 쪼개면 다시 원자로 되돌아간다. 분자의 가장 큰 특징은 독립적이라는 것이다.

소금을 분자라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금을 물에 녹이면 염화나트륨은 바로 나트륨(Na+)과 염소(Cl-)로 분리된다. 물속에서 소금은 ‘소금’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음식에 넣는 소금은 독립적인 ‘염화나트륨(NaCl)’들의 집합이 아니라 수많은 Na+와 Cl-가 촘촘히 쌓이고 붙어 만들어진 것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웬만해선 원소 상태로 돌아가기 어려운 대부분의 분자들과 달리 느슨한 상태로 붙어 있다가 언제든 떨어질 수 있는 소금은 특이하고 특별하다. 소금의 나트륨은 우리 몸에서 신경이 신호를 전달하게 하고 근육을 잘 움직이게 하며 영양의 흡수를 돕고 수분 량을 적당하게 유지시키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완벽하게 결합돼있다면 우리 몸은 이를 떼어내는 데 많은 에너지를 써야할 테지만 소금의 자유분방한 성질 덕분에 별 수고 없이 나트륨을 이용할 수 있다. 완벽한 것, 탄탄한 것 사이에서 날라리처럼 슬쩍 느슨한 소금의 유별난 결합이야말로 ‘세상의 소금’과 같은 것 아닐까.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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