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당갈(Dangal)

인도의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란 마하비르 싱 포갓(아미르 칸)은 전직 레슬링 선수다. 전국 챔피언까지 거머쥐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금메달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레슬링을 포기한다. 아들을 통해 꿈을 이루려하지만, 딸만 내리 넷을 낳아 마하비르의 꿈은 좌절되나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첫째 딸 기타(파티마 사나 셰이크)와 둘째 딸 바비타(산야 말호트라)가 또래 남자아이들과 싸우고 집에 들어온다. 그냥 싸운 게 아니라 남자아이들을 흠씬 두들겨 패주었단다. 오호, 두 딸에게 아빠의 피가 흐르고 있던 건가. 마하비르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아들이 없어 포기했던 금메달의 꿈을 이제 두 딸을 통해 이루기로 결심하고, 두 딸에게 레슬링 특훈을 시작한다.

보수적이기로 치면 전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인도 시골마을의 이슬람 문화에서 여자가 레슬링을 하다니. 이웃들은 마하비르가 미쳤다고 대놓고 비웃고, 기타와 바비타 역시 친구들의 놀림을 당한다. 따가운 시선과 조롱에도 불구하고 기타와 바비타는 아버지의 지도 아래 레슬링 기술을 익히고 동네 레슬링대회부터 전국대회까지 차례차례 석권한다. 결국 국가대표 레슬링 선수가 된 기타와 바비타는 아버지의 꿈이었던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을까?

영화 당갈의 한 장면.

‘당갈’은 2년 전 개봉해 세계적으로 흥행 돌풍을 일으킨 인도 영화다. 영화 제목 ‘당갈’은 힌디어로 인도 현지의 레슬링대회를 뜻한다. 한국에선 이제야 개봉했는데,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스크린 점령으로 많은 관객을 만나지는 못했다. 그래도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내 귀에까지 들어왔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좀처럼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 자체를 좋아하지 않고, 스포츠영화라면 어김없이 나오기 마련인 과잉된 애국심도 질색하고, 역경과 고난을 딛고 결국 성공하는 성공신화에는 좀처럼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나 같은 관객에게, 영화 ‘당갈’은 매력 없는 종합선물세트나 다름없었다.

보수적인 이슬람 가부장사회에서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은 영역이었던 레슬링에 소녀들이 진출해 끝내 성공하고야 마는 이야기가 주는 쾌감은 물론 있다. 실제 인도에서 이 영화가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여성 레슬러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 일조했다고 하니 그 의미를 폄하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꽤나 구태의연하다. 영화의 서사를 끌어가는 힘은 기타와 바비타의 도전과 성공보다는 마하비르의 애국심과 부성이다. ‘여자라고 못할 일은 없다’는 해방의 메시지 역시 아버지 마하비르의 목소리로 ‘들려’진다. 가부장을 통과해야 나올 수 있는 목소리라면 이걸 해방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몰입했다. 마음을 열지 못한 영화에 이토록 몰입하다니. 이상하지만 그랬다. 지금껏 어떤 영화에서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여성의 몸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레슬링이라는 경기 특성상 보일 수밖에 없는 역동적으로 꿈틀거리는 근육, 유연하게 꺾이는 관절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예전엔 미처 몰랐다. 여성의 몸이 보이는 대상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주체일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아름답고 눈부시고 황홀했다. 2시간 40분이라는 어마어마하게 긴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기타와 다비타가 보여준 여성의 몸이야말로 이 영화가 주는 해방의 메시지였다.

여성스포츠를 다룬 영화는 한국에도 꽤 있었지만 몸을 쓰는 스포츠가 소재임에도 여성의 몸이 제대로 구현된 적은 없었다. 혹여 다음에 또 여성스포츠 영화를 만들 생각이 있는 감독이 있다면, 이 영화 ‘당갈’을 참고해주길 감히 부탁한다. 여성 감독이 연출한다면 금상첨화고.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