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함과 환경오염, 하루라도 빨리 선택해야

1950년생 전쟁둥이인 이입분(69)씨는 두레박으로 퍼 올린 우물물부터 프랑스 산 ‘에비앙’생수까지 모두 맛본 세대다. 그가 온몸으로 통과한 현대생활사를 물건을 통해 되짚어보려 한다. 이입분씨는 내 엄마다. <기자 말>

얼마 전 며칠 동안 비닐 분리수거가 안 됐을 때, 그제야 내가 비닐봉지에 둘러 싸여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어찌된 일인지 내가 뭔가를 먹거나 물건을 살 때마다 비닐이 나왔다. 간단히 음식이라도 해먹을라치면 채소를 비롯해 여러 재료를 담았던 용기와 비닐들이 수북이 쌓였다. 잠시 내 손에 쥐어졌던 그 비닐들은 금세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한 달에 하나 쓸까 말까하던 20리터짜리 종량제 봉투가 일주일도 안 돼 비닐로 가득 찼다.

그동안 분리수거한 비닐은 당연히 재활용되는 줄 알았기에 버리면서 죄책감도 없었다. 이물질로 오염된 비닐은 재활용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몰랐다. 그렇다고 현재로선 비닐 없는 삶을 상상하긴 어렵다. 생각할수록 답답했다. 썩지도 않는 이 비닐, 너희는 대체 어디서 온 거니?
엄마의 기억 속 최초의 비닐은 ‘누가’라고 부르는 말랑말랑한 사탕이 싸여 있던 얇고 투명한 포장지다.

“딱딱한 사탕은 그냥 통에 담겨 있었는데 ‘누가’는 얇은 비닐에 한 번 싼 다음에 종이로 다시 한 번 포장했어. 먼지가 묻거나 녹을까봐 그렇게 한 것 같아”

어느 날 그 작은 비닐이 커다란 검은색 비닐봉지가 돼 나타났다.

“스무 살 무렵인 것 같아. 친척이 뭘 사왔는데 까맣고 아주 얇은 봉투에 담겨 있더라고. 찢어질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잔뜩 담아도 이게 안 찢어지는 거야. 요즘 비닐보다 더 질겼던 것 같아” 비닐봉지가 없을 땐 물건을 어디에 담았는지 물었다.

“종이로 된 푸대가 있었는데 그걸로 봉투를 접은 게 있었어. 센베이과자(생과자) 같은 건 그 종이봉투에 담아줬고, 시장에서 뭘 살 땐 집에서 보자기를 가져갔지. 지금처럼 반들반들한 보자기가 아니라 이불 속싸개 하고 남은 천이나 헌 앞치마가 있으면 그걸 보자기로 쓴 거야”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하던 엄마는 이제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채소는 농사지어서 먹었으니까 살 일이 거의 없었고, 콩나물 살 땐 주로 집에서 바가지를 가져갔어. 두부도 그렇고. 생선은 짚으로 엮어서 팔았지. 없을 땐 없는 대로 그냥 살았어. 그런데 비닐이 나오기 시작하니까 순식간에 쫙 퍼져버리더라고”

다양한 비닐봉지 활용법

비닐봉지.

1954년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문 : 일본에서 들어오는 고무책보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입니까? 답 : 고무책보가 아니라 비니루 보자기입니다. 비니루란 아세찌렝(아세틸렌)에서 직접 만들어지는 합성수지의 총칭으로 종류가 많습니다. (중략) 염화비니루계의 인조섬유로서 레인코트, 핸드백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경향신문 1954.4.11.)

아세틸렌은 석탄에서 나오는 카바이드로 만든 것으로 합성섬유와 플라스틱을 만드는 재료로 쓰였다. 1954년은 이제 막 비닐을 생산하는 공장이 들어서던 때다. 인조섬유로 만든 책보자기가 신기했던 이는 그것이 고무로 만든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1950년대까지 비닐은 몇몇 상품 포장이나 우비, 농업용으로 많이 쓰였다. 공산품을 비닐로 포장해 물건을 사고팔 때 비닐봉지까지 주고받은 건 196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다.

‘시장에 갔다 오면 비닐봉지가 몇 개씩 생긴다. 물건을 종이에 싸주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 에는 비닐봉지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큰 것은 무엇에 쓰려고 남겨두겠지만 적은 것들을 그냥 버리기 쉽다. (중략) 썩는 냄새가 지독히 나는 요즘, 찌꺼기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담지 말고 이 비닐봉지에 넣어 주둥이를 꼭꼭 묶은 다음 쓰레기통에 담아보자. 냄새도 덜 날뿐더러 파리도 들끓는 일이 없어진다’(동아일보 1961.8.7.)

당시로선 비닐봉지는 신문물이었다. 살림을 담당했던 주부들은 물건을 살 때마다 따라오는 비닐포장지를 그냥 버리기 아까워 활용방안을 서로 공유하기도 했다.

‘요즈음 과자, 사탕 봉지는 물론 옷과 신발의 포장까지 폴리에치렌(폴리에틸렌) 주머니가 등장하고 있다. (중략) 빨래할 때, 변소 소제할 때, 물 뿌릴 때 주머니를 양말 위에 신고 꼭 고무줄을 졸라매면 양말이 젖지를 않는다. 비오는 날 장화 속에 덧신는 것도 마찬가지. (중략) 고무신이 들었던 홀쭉한 폴리에칠렌 주머니 같은 것은 두었다가 토란을 깎을 때 쓸 수 있다. (중략) 시장에 갈 때도 몇 개 준비해가면 비린내 나는 생선 토막을 넣을 수 있고 장바구니가 젖지 않는다’(경향신문 1962.6.12.)

생활의 일부분을 조금씩 차지해가던 비닐이 뒤통수를 친 사건도 일어났다. 포장지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된 것이다.

‘시중에서 식료품 포장지로 대용되고 있는 신문지, 폐지와 일부 비닐포장지에 과망간산칼륨 등 많은 유해물질이 함유되어 있음이 23일 서울시 검사로 밝혀졌다. (중략) 신문지와 폐지는 73.7%가, 어포를 포장한 비닐봉지는 55%가, 기타 비닐포장지는 24%가 식료품 포장지로 적당치 못하며(중략) 서울시보건당국은 이러한 불순물로 식료품이 변질되거나 인체에 직접 해를 끼칠 염려가 있다고 경고, 시민들에게 이를 사용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매일경제 1970.7.23.)

이후로도 시민들 사이에서 비닐에서 유해성분이 나올 수 있다는 불안감은 계속 됐다. 그러나 비닐만큼 값싸고 가볍고 편리한 재료는 찾기 어려웠다. 비닐의 유용함은 독성에 대한 불안과 썩지 않는 물질에 대한 거부감을 누를 만큼 강력했다.

환경오염이 주부 손에 달렸다?

비닐은 서민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기보다, 상품을 만들고 생산하는 이들이 상품의 손상이나 오염을 막고 돋보이게 하기 위해 비닐을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누가’ 사탕의 포장처럼 말이다. 비닐은 공산품의 증가와 함께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비닐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지 불과 20년이 지난 1980년대부터 이 ‘썩지 않는 쓰레기’가 사회 문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문제를 풀어야하는 대상으로 비닐을 생산하고 사용하는 쪽이 아니라 소비하는 쪽, 그 중에서도 주부들이 흔하게 지목됐다.

‘한 가정에서 버리는 쓰레기, 오물, 고물 등을 살펴보면 그 집 식구들이 어느 정도 알뜰하고 헤픈가를 금방 알 수 있다. (중략) 우선 쓰레기가 많이 나오지 않게 생활을 한다. 쓰레기 중에는 썩거나 삭아서 자연에 환원되는 것들도 있지만 각종 플라스틱이나 비닐봉지 등은 썩지도 쓰지도 않아 자연을 파괴하고 농사에 피해를 준다. (중략) 따라서 식품의 경우 각종 야채는 물론 생선육류 등 버리는 부분이 적은 것을 선택하여 조리할 때는 폐기부분이 가장 적게 조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면 무잎, 미나리잎, 당근잎 등을 버리지 말고 볶아 먹든가 국을 끓이면 훌륭한 영양식이 된다. 또 선물은 물론 자기 집에서 쓰는 물건도 부피에 비해 과대포장된 것은 사지 않도록 한다’(매일경제 1982.1.14.)

비닐봉지로 방석을 만드는 등, 온갖 재활용 방법이 신문에 심심찮게 등장했고 심지어 대회까지 열어 상을 줬다. 기발한 아이디어라 칭찬하며 이 ‘알뜰하고 현명한’ 주부들의 생활 모습이 신문과 방송에 나오기도 했다. 급기야 주부들은 반공해운동에까지 앞장섰다.

‘수은중독, 수질오염 등 공해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자 주부들이 생활 속의 반공해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중략) 132가구 주부들이 참여한 <수은건전지 수거운동>은 수은건전지를 땅속에 그대로 묻거나 쓰레기와 함께 태울 경우 토양과 대기를 오염시기케 돼 이를 사전에 방지하자는 운동이다. (중략) 2년 전부터 집안에서 합성세제 안 쓰기를 실천하고 있는 이정숙씨는 그릇을 씻을 때 쌀뜨물이나 밀가루를 푼 물로 씻고 빨래는 꼭 빨래비누로 한다는 것. (중략) 심순옥씨는 이웃주부 7,8명과 함께 가루비누 안 쓰기, 샴푸 안 쓰기, 비닐 안 쓰기 등을 실천하고 있다’(경향신문 1988.8.10.)

1991년 경상북도 구미시 두산전자에서 30톤의 페놀 원액이 상수원인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간 사건이 발생하자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은 더욱 커졌다. 사건이 발생하고 며칠 뒤 <동아일보>에 ‘환경보전 주부 손에 달렸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합성세제 안 쓰기, 샴푸 덜 쓰기, 폐기름으로 세탁비누 만들기 같은 내용을 소개했다.

‘비닐 덜 쓰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전국주부교실중앙회는 장바구니 되쓰기, 종이봉지 쓰기 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젖은 것도 넣을 수 있도록 코팅된 헝겊주머니를 제작, 배포하고 있다’(동아일보 1991.3.27.)

물론 ‘의식 있는 주부’들이 물건을 사지 않고 안 쓰면 쓰레기는 분명 적어질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환경오염이 줄었다’고 표현하는 대신 ‘경기불황’이라 말한다. 경기가 살아나기 위해선 상품을 많이 소비해야하는데 물건을 사면 살수록 쓰레기가 늘어난다. 물건은 사되 쓰레기는 발생하지 않게 하라는, 불가능에 가까운 이중메시지는 국가와 사회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동시에 주부들에게 떠넘기는 교묘한 수단이었다. 작가 공지영씨도 답답함을 호소했다.

‘각종 매체에서는 주부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환경을 지키는 파수꾼 어쩌구 하면서 추켜세우기도 한다. 마치 주부들의 손에 이 나라의 땅과 미래가 전적으로 달려 있는 것처럼 말이다. (중략) 주부들은 할 만큼 하고 있다. 신문지도 모으고 우유팩까지 설거지하고 말리고 오려가면서 말이다. 그러니 이제 공은 정부나 기업 쪽으로 넘겨져야 한다’(한겨례 1994.9.18.)

없으면 없는 대로 산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환경오염 문제가 내 건강을 해치고 삶의 토대를 흔들 만큼 심각하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를 시범 운영하기 시작했고, 기업은 역시 발 빠르게 움직여 환경, 안전, 신소재 등을 강조한 ‘녹색’ 광고를 쏟아냈다. 1994년부터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됐고, 일정 면적 이상의 상점에서 물건 담는 비닐봉투를 유상 판매하는 법이 만들어졌다. 백화점에선 비닐쇼핑백을 재생 종이봉투로 바꿨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2003년 연간 125억개 수준이던 비닐봉투 생산량은 2015년 216억개로 늘었다. 1인당 연간 420개 정도를 쓰는 셈이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2010년 기준 유럽의 일회용 비닐봉투 연간 평균 소비량은 1인당 176개였다. 폴란드가 460개로 가장 많고, 그리스 250개, 스페인 120개, 프랑스 80개, 독일 70개 수준이다. 일찌감치 장바구니 사용 정책을 폈던 북유럽의 아일랜드(20개)와 핀란드ㆍ덴마크(4개)는 이미 거의 사용하지 않는 수준까지 왔다.(경향신문 2017.10.5.)

넘어야할 산이 많다. 플라스틱 업체들의 반발과 은밀한 로비도 그중 높은 산에 속한다. 우리 생활도 물론 비닐봉지를 마구 사용할 때에 비하면 신경 쓸 것이 많아지고 불편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썩지 않는 비닐과 플라스틱 무덤으로 변해가는 바다를 마주하는 불편함도 만만치 않다. 불편함도 습관이 되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어떤 불편함을 선택할 것인가. 망설이기엔 이미 늦었다. 하루라도 빨리 국가와 사회가 결단을 내려야한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았다’던 엄마의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진리인 것 같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